엄마는 수행비서
한 학년의 마지막이자 가장 이벤트가 많은 학기는 여름학기이다. 학년말 연극무대에서 아이의 대사가 길어지는 걸 보며 우리 아이가 한 살씩 한 학년씩 성장해 감을 느낀다.
3년마다 아이의 학교에서는 전 학년이 하나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경험을 한다. 우열을 메기는 게 아닌 모두가 역할을 맡아 완성했음을 축하한다. 영국의 공연 에티켓이 까다로운 걸 아는지라 고민을 하다가 큰 아이의 특별한 공연을 놓칠 수 없어 막내까지 예쁜 드레스를 입혀 데려갔다. 공연 매너가 너무 좋다고 아이를 사랑스럽게 봐주는 영국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아이들에게 관대한 영국에서도 조금은 부산스러웠을 아이를 데려왔다고 눈치를 주는 사람들의 눈빛도 느껴졌다.
영국의 초등 교육은 다양하게 경험해 보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부모는 아이들의 여정을 계속해서 도와주어야 한다. 우리 아이는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과외 활동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었겠지만 학교에서 가을 학기에 축구, 봄학기에 하키, 그리고 여름 학기에 크리켓을 주축으로 중간중간 다른 스포츠에도 조금씩 노출되며 탐색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정규 수업에도 PE라고 불리는 체육 시간이 있고 games라는 팀플레이 시간이 있다. 스포츠데이에도 적절히 개인 운동능력을 보여주는 활동과 팀으로 함께하는 걸 배우는 활동으로 적절히 나눠져 있었다. 그리고 운동을 잘하는 아이들은 물론이지만 선생님 또는 심판을 보던 상급생들이 스포츠맨십을 보인 아이에게도 스티커상을 준다.
우리 아이가 첫 스포츠데이에서 계주 도중 넘어지는 사건이 있었다. 아프기도 속상하기도 했던 아이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어버리자 교장 선생님이 달려가 아이 손을 잡고 끝까지 같이 뛰어주셨다. 학부모들과 친구들 모두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응원해 주었고 아이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결승선을 통과하여 스티커 상을 받았다. 스포츠데이가 끝날 때쯤 보니 모든 아이들이 비슷한 개수의 스티커를 받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운동을 잘하는 아이들만 주인공인 날이 아닌 모두 함께 웃으며 행복한 날이었다.
스포츠데이와 별개로 근처 다른 학교팀들과 축구, 크리켓 등의 매치를 진행하기도 한다. 별생각 없이 아이와 친구들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다른 학교 아이들 얼굴은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선생님들끼리 하는 걸 들었다. 누구도 나에게 직접 얘기하진 않지만 암묵의 룰을 눈치껏 따르는 게 일본과 닮은 점도 보이는 영국 사회다.
날씨 좋은 학기이다 보니 스쿨트립도 있다. 고학년 아이들은 며칠간 근처 유럽의 나라로 떠나기도 하고 저학년 아이들은 당일치기로 가까운 박물관에 걸어가던지 버스로 생태공원 등에 다녀온다. 우리 아이 학교는 작은 편이라 그렇게까지 나눠지진 않는 거 같은데 규모가 큰 사립학교는 스쿨트립도 몇 가지 옵션이 있어 골라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학년당 클래스가 하나밖에 없는 작은 학교라 아이들은 학년이 바뀌는 건 선생님과 교실이 바뀌는 거지 친구들과 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다. 여름 학기 마지막 날, 한 학년의 마지막 날이기도 한 여름 방학식에는 하교시간이 12시여서 친한 엄마들끼리 아이들과 공원에서 피크닉을 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나무를 기어오르고 넓은 잔디밭을 뛰어다니며 샌드위치와 과일 등 싸 온 음식을 나눠먹었다.
그리고 우연히 참여한 이 모임에서 영국에도 바쁜 워킹맘과 아이들을 더 신경 쓰는 엄마들 사이에 묘한 간극이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