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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에게만 좋은 곳

by 미누리

동이 트지 않은 이른 아침이었다. 부엌에서 피어오른 장작불 연기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콜록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에 가봤더니 재봉 선생님이 아침밥을 짓고 계셨다. 불을 지피면 집 내부에 장작불 연기가 금세 가득 차 시야가 뿌예진다. 그리고 머리카락과 옷에 배인 불내는 쉽게 빠지지 않는다. 학교 관사는 통근이 어려운 직원들이 방값을 내지 않고 묵는 곳이라 일반 주택에 비하면 편의성이 부족하다. 선생님은 이곳을 떠나고 싶지만, 아이들 학비 마련을 위해 정년까지 버텨볼 생각이라고 했다.


아침밥을 먹고 학교를 한 바퀴 돌았다. 많은 것이 변했다. 함께했던 아이들은 졸업했고, 정들었던 요리사와 경비원은 퇴직했고, 내 또래였던 선생님은 급여가 적다며 호주로 떠났다. 원래 있던 강아지는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새로운 열여섯 마리가 왔다. 갈 곳 없는 녀석들이 하나둘 모이더니, 새끼를 낳아 늘어났다고 했다. 이들은 경비견이나 마찬가지다. 학교 사람들에게 낯선 이가 접근하면 사납게 짖는다. 신기하게도 나를 보곤 꼬리를 흔들며 반긴다. 내가 이곳의 일원이었던 걸 알아본 걸까.


걸음을 옮기며 함께했던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운 장면이 한 장씩 펼쳐졌고,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침마다 외우는 불경 소리, 티타임을 알리는 종소리, 강당에서 틀어놓은 음악 소리, 운동장에서 치는 크리켓 소리, 정신없이 돌아가는 미싱 소리, 기숙사에서 울리는 웃음소리, 농인의 손짓이 빚는 소리, 부엌에서 밥 짓는 소리, 마당에서 낙엽 쓰는 소리, 그리고 내 이름을 부르는 다정한 목소리. 그 모든 소리가 아직도 이곳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회상에 잠긴 채 야자나무를 바라보았다. 사시사철 푸른 야자수는 여전히 무성했다. 그 아래에는 바람에 꺾인 나뭇잎이 뭉쳐있었다. 그리고 바닥을 쓸고 있는 미화원 아주머니를 마주쳤다. 생각지 못한 우연한 만남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아주머니는 우리 엄마보다 연세가 훨씬 많으시지만, 언제나 엄마처럼 푸근한 미소로 우리 학교를 깔끔하게 청소해 주시는 게 감사해서 삐리시두 암마(깨끗한 엄마)라고 불렀다. 삐리시두 암마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습으로 낙엽을 쓸고 계셨다.


삐리시두 암마는 퇴직하셨다가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 다시 돈을 벌러 돌아오셨다고 말씀하셨다. 오랜만에 이런저런 안부를 주고받은 후, 건강히 지내시라는 인사를 남기고 관사로 돌아왔다. 삼십 분 정도 지났을까. 밖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삐리시두 암마였다. 나를 위해 학교 밖에서 파리뿌 와데(렌틸콩 튀김) 사 왔다며 손에 쥐여 주셨다. 어려운 형편에도 간식을 사다 주는 따뜻한 인품에 감동해 코끝이 찡했다. 다음에는 직접 음식을 만들어 줄 테니 오기 전에 미리 연락하라고 전화번호까지 알려주셨다.


아쉽게도 캔디 하숙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됐다. 버스는 삼십 분에 한 대씩 오는데, 그게 내가 타야 하는 캔디행 버스인지는 버스가 와야지만 알 수 있다. 속절없이 캔디행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누렁이 한 마리가 다가오더니 곁을 지켜주었다. 혹시 노니(예전에 있던 강아지)의 환생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다 멀리서 버스 오는 소리가 들렸다. 캔디행이었다. 내려놨던 배낭을 메고 학교에 작별 인사를 전했다. 예전에는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고 떠났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하숙집으로 돌아온 나는 식탁에서 장애인 학교에 다녀온 소회를 털어놓았다. 마히도 우리 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기숙한 적이 있다. 주말에는 가족 면회가 가능했는데, 종종 마히의 부모님도 와서 마히를 보고 갔다. 엄마가 돌아가려고 하면 마히는 자기도 집에 가고 싶다며 통곡했다. 그를 달래다가 나도 덩달아 운 적이 한 번 있다. 엄마가 그때 아들 한 명 달래는 것도 벅찬데, 옆에서 외국인도 같이 울어 두 명을 달래느라 난감했다고 이제야 털어놨다.


그날의 눈물을 아직도 기억한다. 학교에서 누구보다 씩씩하게 나를 챙겨주었던 마히가 부모와의 이별 앞에선 어린아이처럼 엉엉 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항상 괜찮은 척했지만 사실은 많이 외로웠을 마히를 생각하니 눈물 나게 슬펐다. 마히는 학교 생활이 많이 힘들었는지 다음 학기에는 입소하지 않았다.


마히에게 그때 왜 그렇게 울었냐고 물었다. 그곳에서의 시간이 어땠는지 직접 듣고 싶었다. 마히는 지적장애가 있지만,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을 구분할 수 있고,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표현할 줄 안다. 마히는 학교생활이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기숙사에서 지적장애인 학생들은 일부 학생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고, 기숙사는 단수와 정전이 잦았고, 급식도 부실해서 견디기 힘들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한 번도 집을 떠나본 적이 없던 17살 마히는 엄마의 따뜻한 품이 가장 그리웠을 것이다.


그 말을 듣고 깨달았다. 나에게 좋다고 남에게도 좋은 건 아니라는 것을.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곳이 누군가에게는 잊고 싶은 곳일 수도 있고, 내가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곳이 누군가에게는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곳일 수도 있고, 내가 마음을 바쳐 사랑한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일터에 불과할 수도 있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다른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저마다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학교는 나에게만 좋은 곳이었는지도 모른다. 설령 누군가에겐 힘든 공간이었더라도, 우리가 함께한 순간만큼은 따뜻한 시간으로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은 미화되기 마련이고, 결국에는 아름다운 장면들이 선명하게 남는다. 좋은 기억이 하나둘 모이면 나쁜 기억을 덮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낌없이 다정하게 살아보려고 한다. 사랑할 수 있을 때 충분히 사랑하려고 한다. 언젠가 스리랑카 사람들이 나를 떠올릴 때, 다시 보고 싶은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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