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캔디에서 맞이한 첫 아침, 앞으로 한 달간 하숙하게 된 마히네 집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마당 한편에 자리한 텃밭에는 지난밤 성난 속을 달래준 라임 나무가 평온하게 서 있었다. 그 옆에 초록 대문은 마치 새 손님을 환대하듯 활짝 열려 있었고, 등교하는 동네 아이들의 떠들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나라의 말이 자연스럽게 들리는 걸 보니 그간 한국에서 스리랑카 이주민을 꾸준히 만나며 통번역 봉사를 한 것이 결코 헛된 일은 아니었나 보다.
이 집의 큰 아들인 마히는 나의 제자였다. 그리고 그는 지적장애인이다. 2016년, 17살 마히는 캔디의 장애인 학교에서 직업 훈련을 받고 있었고, 나는 그가 속한 전기반 학생들에게 컴퓨터 기초 능력을 가르쳤다. 마히는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 학습 능력에 어려움이 있지만,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다. 마히의 밝은 미소와 상냥한 말투에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 특별한 힘이 있다. 장애는 그의 일부일 뿐이고, 그에게는 그보다 더 큰 선량함이 있다.
마히네 집은 민박처럼 현지인을 위한 숙박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나는 예전에도 이곳에서 몇 차례 객식구로 지낸 적이 있다. 마히네 가족은 모두 다섯 명이다. 부모님, 첫째 아들 마히, 회사를 다니는 둘째 아들 말리떠,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막내딸 아세니. 마히의 부모님은 내게도 친부모나 마찬가지인데, 그들은 나를 '로꾸 두워(큰 딸)'라고 부르며 친딸처럼 보살펴준다. 그리고 동생들은 나를 '아까(누나,언니)'라고 부른다.
본채와 별채를 포함하여 총 아홉 개의 방이 있다. 방마다 화장실이 딸려 있고, 개별 주방은 없다. 마히네 가족과 손님들은 본채 응접실에 있는 12인용 식탁을 공유한다. 새로운 하숙인이 왔다는 소문을 듣고 식탁으로 숙박객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첫 외국인의 합류 때문인지 기존 이웃들은 약간의 흥분과 설렘으로 들떠 보였다. 나처럼 이곳에서 하숙하는 사람이 넷이나 더 있다. 이제 나를 포함해 모두 열 명이 식탁을 공유한다.
본채 1층이 하숙집 주인 마히네 가족의 집이고, 그 아래 지하 1~3호실이 있는데, 지하 1호실을 내가 쓰기로 했다. 지하방의 출입문은 본채 건물 밖에 따로 있어 마히네 집 실내를 거치지 않아도 출입이 가능한데, 비탈진 언덕 아래 있어 지상에서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바깥에서 하숙집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 지하방은 보이지 않고, 마히네 집을 돌아내려가야 지하 출입문이 보인다. 관점에 따라 지상이면서 지하이기도 한 독특한 구조다. 지하 특유의 습기와 꿉꿉한 냄새 때문에 나는 이곳을 지하라고 정의했다.
본채 바로 옆에 있는 별채 1층에는 60대 여성 닐루 씨와 그녀의 아들 마두랑거가 산다. 마두랑거는 자폐증이 있는 20대 청년이다. 지난해, 닐루 씨의 남편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이별이었다. 그 후, 마두랑거가 아빠의 부재에 충격을 받고 집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해 어쩔 수 없이 이곳에서 몇 개월째 숙식을 해결하는 중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닐루 씨를 닐루 이모라고 불렀다. 그녀의 눈가에서 오랜 슬픔이 느껴졌는데, 그녀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장기 투숙객은 별채 2층에 사는 60대 부부 니만띠 부인과 남편 세너커 씨다. 세너커 씨는 신장병을 앓고 있고, 니만띠 부인이 그를 간호하고 있다. 세너커 씨는 통원 치료를 받고 있는데, 다니는 병원에서 가까운 숙소를 찾다가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고 했다. 니만띠 부인은 마히가 다니던 초등학교의 특수교사였다. 남편의 병간호 때문에 조기 은퇴했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계속 공경하는 마음으로 교직에서 불리던 마담(여교사의 존칭)이라는 호칭으로 불렀다.
하숙집 식구들은 모두 저마다의 깊은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스리랑카에 온 이유를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의 차례가 되었다.
"저는 미누리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왔어요."
미누리는 나의 스리랑카 이름이다. '희귀한 보석'이라는 뜻이다. 미누리라는 이름과 함께 스리랑카도, 캔디도, 하숙집도 나의 일상이 될 것이다. 이곳에서의 하루하루가 보석처럼 반짝이는 순간으로 채워지길 소망한다.
서로 다른 이름과 언어, 사랑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열 명의 사람이 '장애'라는 연결고리로 이어졌다. 스리랑카가 아니었다면 결코 닿지 못할 세계일지도 모른다. 이제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조금은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이 섬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보석 같은 사람들을 찾으러 온 게 아닐까.
"스리랑카에 왜 왔냐고요? 여러분을 만나기 위해서요. 만나서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