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 타임슬립
<이 글은 조선 3대 왕 태종실록에 터 잡아 작가의 상상을 글로 피력한 것이므로 일부는 역사적인 사실과는 다른 허구임을 미리 밝혀 둡니다>
-Episode 1 타임슬립-
2025년 화창한 여름날
한국고전번역원 조선왕조실록 번역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주인공 이나영(27세)의 취미는 패러글라이딩이다.
500여 회가 넘는 비행 경력을 가진 중급 파일럿 (Intermediate pilot) 나영은 내일의 비행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오른다.
토요일 아침 8시 상쾌한 남한강변을 달려 양평(용문산) 스쿨로 달린다.
오늘은 푸른 하늘에 뭉게구름이 몽실몽실 패러 하기엔 너무 좋은 날이다.
나영이 사무실에 도착하니 팀장님이 반갑게 손을 들어주신다.
먼저 온 동료들은 자신의 비행기구를 챙기며 건성건성 안부를 묻는다.
나영이도 장비를 챙겨 동료들과 함께 스쿨 패러전용 화물차에 올라 구불구불 용문산길을 올라간다.
정상 이륙장에는 먼저 온 다른 스쿨의 팀원들이 비행을 시작하고 있다.
패러글라이딩은 여타 스포츠에 비해 위험한 스포츠로 분류되어 활공장 규칙과 예의는 남다르고, 팀장의 권위도 상당하다.
스쿨 강사의 지시에 따라 자신의 순번에 맞춰 비행을 시작하면 지상 팀장의 지시가 무전으로 바로 꽂힌다.
수십대의 기체가 떠 있는 손톱만 한 기체를 지상에서 용하게 누군지 알아보고 지시하는 무전에 처음에는 많이 당황했었다.
팀장 : 나영 씨 그리 가면 고압선이 있어 위험하니 우측으로 회전하세요
나영 : 네 네 알겠습니다 팀장님
지상에선 나의 모든 동작을 육안으로 스켄하고 있다.
대부분의 팀장들은 대한패러글라이딩협회 (KPA)와 대한항공스포츠협회(KASA)에서 활동하던 국가대표 선수 출신들이다.
간혹 친구들이 묻는다.
친구 : 너는 왜 위험하다는 패러글라이딩을 하니 그것도 여자가?"
하긴 패러를 하는 여자수가 적은 건 사실이다. 우리 스쿨에도 여자는 나 포함 2명뿐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위험하다는 익스트림 스포츠(Extreme Sports)는 고도의 긴장감에서 분비되는 아드레날린으로 짜릿한 쾌감을 맛보게 된다.
특히 패러글라이딩은 중력으로부터의 해방감까지 맛보게 하니 그 뽕맛을 떨쳐 내긴 싶지 않다.
아무런 동력원 없이 오로지 바람의 힘을 빌어 하늘을 난다는 것, 더욱이 나영을 미치게 하는 것은 상승기류라고 말하는 "써멀" (thermal)이다.
활공장에서 이륙 후, 비행하다 보면 가슴에 차고 있던 바리오메타 (Variometer)에서 짧고 빠른 삐-삐-삐 비프소리가 들린다. 비행 중인 써멀(상승기류) 속에 들어왔다는 신호이다.
써멀에서 벗어나지 않게 원형 열기둥 안에서 서둘러 양손의 조정줄을 잡고 회전해야 한다.
제법 규모가 큰 써멀은 1초에 수 미터씩 기체를 상승시킨다.
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듯 나영을 구름 가까이로 당겨 올리지만 사실 본인은 별 다른 느낌도 없다.
이런 반복적인 행동으로 3-4시간씩 혹은 그 이상 하늘에서 자전거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로 비행하며 준비해 간 도시락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음악도 듣는다.
심지어 소변도 보며 비행하게 되는 데 여성의 경우는 이륙한 이륙장으로 하강하여 볼일 보고 다시 이륙하는 방법으로 비행을 즐긴다. 이 얼마나 멋진 스포츠인가?
얼마 전 중국에서 패러글라이딩 시험 비행 중 클라우드 석(cloud suck)’ 현상으로 고도 약 8,598m까지 올라갔다가 생환해 화재가 된 사실도 있다.
(중국의 펭 위장이라는 패러글라이더의 GPS 기록 로그에는 약 33.13 km 비행, 최대 고도 8,589m까지 상승된 기록이 있었다고 보고됨)
나영은 용문산에서 이륙한 동료들과 소백산을 다녀오기로 했다.
기체 4대가 100여 미터의 간격을 두고 비행 중이다.
비행하다가 셔멀(상승기류)을 못 찾으면 그곳이 어디든 하강해야 한다.
그리되면 몸고생 맘고생으로 그날의 비행을 망치게 된다.
따라서 패러글라이더들은 써멀을 찾는 것에 전력을 다한다.
지상에서 보면 패러글라이더가 한 곳에 모여 비행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곳에 써멀이 있기 때문이다.
나영이 비행 중 바리오메타에서 빠른 비프음이 울린다.
나영은 서둘러 회전을 시작하고 곧이어 구름 위로 솟아오른다.
그런데 비프음이 날카롭고 빠르다 삐삐 삑~~~ 처음 들어보는 소리다.
순식간에 구름 위로 솟구치는 나영은 돌풍에서 벗어나려고 조정줄을 이리저리 당겨보지만 돌풍은 나영의 기체 산 줄마저 꼬아버린다.
산 줄이 엉키면 조정이 불가능하게 되고 이런 긴급상황에는 보조 낙하산을 꺼내야 하는데 산줄이 엉켜 있으면 보조 낙하산 역시 제대로 펼쳐지지 않을 확률이 높아 대부분 큰 사고로 이어진다.
얼마나 빨려 올라갔는지 나영은 현기증을 일으키며 정신을 잃는다.
나영은 클라우드 석(cloud suck : 구름 밑에서 상상 이상으로 세게 위로 빨아올리는 상승기류)으로 사고가 난 것이다.
동료들은 따르던 나영이 보이지 않자 무전으로 연신 나영을 호출하지만 나영은 대답이 없다.
사고다!!! 스쿨 팀장에게도 무전으로 이 사실을 알린다.
스쿨 팀장은 즉시 119에 신고하고 모두 나서서 나영을 찾느라 분주하지만 실종 2시간 넘어도 나영이의 행방은 묘연하다. 이러한 사고는 대부분 좋지 않은 결론으로 이어지기에 다들 숙연해진다.
나영이 사라진 인근 산을 군 병력까지 동원해 하루 온종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나영은 2025년 7월 6일 대한민국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1404년 초여름 어느 날 조선
소란스러운 소리에 정신을 차린 나영, 나영은 소나무 가지에 걸려 대롱 거리고 있었고 아래에는 사극 촬영장으로 엑스트라들이 몰려 수근 거리며 나영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영은 모여 있는 사람들이 사극 엑스트라인데 너무 리얼해서 감독이 누구 인지 유명한 감독이려니 생각하며 소리친다.
나영 : 나 좀 내려주세요
잠시 후 사다리를 걸치고 엑스트라 중 한 분 이 올라오셔서 나영을 조심스레 내려주셨다.
나영 : 저기 미안한데요 기체가 손상되지 않게 조심스럽게 내려 주세요. 죄송해요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다.
나영이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여긴 영화 세트장이 아닌 듯하다.
나영 : 모지??
나영은 너무 리얼하다고 생각하며 찬찬히 주위 사람들을 살펴본다.
나영은 자신이 패러글라이딩 중 돌풍에 휘말려 빠져나오려고 애를 쓰다가 결국 정신을 잃은 것까지 생각해 낸다.
나영 : 영화 세트장이 아니면 그럼 이곳은 어디인가?
순간 모골이 송연해진다.
마음을 다잡고 나영은 물 한 모금을 얻어 마시면서 다시 물었다.
나영 : 저기요 혹시 지금이 몇 년이고 임금님이 누구신가요?
관원 복색을 한 사내가 실성한 여인을 대하듯 눈을 흘기며 퉁명스레 내뱉는다
관원 : 태종 3년 6월 임신년이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영의 머리칼이 쭈빗선다
이곳이 영화 세트장도 아니고, 어디 체험마을도 아니고 진짜 조선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이건 필시 꿈인가? 아니면 사고로 죽은 뒤의 세계인가?
그런데 왜 이렇게 생생하지… 그것도 칼라로 또렷하게?
꿈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면… 정말로 태종 3년이라는 거야?’
그럼 내가 타임슬립(비자발적 시간 이동)으로 2025년 6월에서 1403년 6월로 타임슬립한 것이라고?
무려 622년 전으로?
나영은 혼미해진 정신을 수습하면서 모여든 주민들을 향해 최대한 얌전하게 목례로 인사를 했다.
같은 날 조선왕조실록에는 태백성(금성)이 낮에 나타났다(태종실록 5권, 태종 3년 6월 26일을 해)는 기록이 그대로 남아있다.
많은 사람들이 나영이의 패러글라이더와 보조낙하산이 햇살을 받으며 추락하는 장면을 보고 마침 낮에 나타난 태백성에서 내려온 화신쯤으로 착각하고 있는 듯했다.
잠시 후 어디선가 포졸들이 나타나 나영이를 포박한다.
나영은 생각한다.
"아 큰일이다"
당시 조선에서 명나라, 청나라 같은 사대국 사람이 조선에 표류하면 그의 뜻에 따라 다시 보내주기도 하였지만, 네덜란드인 박연이나 하멜 같은 표류자는 대체로 감시 상태에서 보호 또는 억류되지만, 밀입국자나 첩자는 엄한 처벌 내지 참수형으로 다스린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나영이다.
왜국(일본)의 첩자로 몰려 끝내 물고를 내지 아니하면, 죽는 날까지 국문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부모님 얼굴이 떠올라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뚝 흘렀다.
나영은 앞으로 자신에게 닥쳐올 불안한 시간을 떠올리며 "그래 죽을 때 죽더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내가 아는 태종실록과 실제는 어떻게 다른지 조선 3대 왕 태종 이방원을 만나 사실대로 고하고 살길을 찾아보리라" 다짐한다.
episode 1 타임슬립
-Episode 2 "휴대폰을 켜다"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