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 휴대폰을 켜다
-Episode 2 휴대폰을 켜다-
나영이 불시착 곳은 수도인 개경 동남쪽에 위치한 송악(松嶽)이고 당시 송악 목사(지금의 시장)는 이문형(李文亨)이다.
송악 관아로 끌려온 나영은 목사 이문형 앞에 끓려 화차를 삶아 먹은 듯한 목소리 이문형의 물음에 당황하여 버벅 거린다.
정신을 가다듬은 나영이 말하기를, 자신은 600년 후에 살던 사람으로 미래에서 온 사람이고 패러글리딩 사고로 이곳에 불시착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아무리 설명하고 또 설명해도 목사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이젠 눈에서 불까지 나온다.
목사 : 네 년이 정녕 장을 처 맞아야 실토를 하겠느냐, 어느 나라에서 온 첩자인지를 불으면 목숨만을 살려줄 것이다.
나영의 말은 무조건 믿어주지 않으려는 목사에게 나영이 나지막이 말한다.
나영 : 존경하는 목사님 그럼 제가 미래에서 왔다는 사실을 입증할 테니 입증하면 저를 다시 미래로 보내주세요.
목사 : 무어라 입증? 그래 어떻게 입증하겠느냐?
기차 화통 같은 목소리가 담뿌트럭 화통 소리로 누구러졌다.
나영 : 오늘이 태종 3년 7월 4일 맞지요?
목사 : 그래 맞다.
나영 : 그럼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제가 맞춰 보겠습니다.
목사 : 무어라? 그래 말해 보거라
나영 : 7월 5일 함주(咸州 함흥 인근)에 서리가 내릴 것입니다.
목사 : 하하 지금이 한여름 7월인데 서리가 내린다니 네가 제대로 실성을 하였구나
오냐 좋다 내일 함주에 서리가 내리지 않으면 너는 치도곤을 면치 못할 것이다.
나영 : 네에
나영이 힘없이 대답한다. 장을 맞고 죽은 사람도 많다던데 속으로 중얼거린다.
설마 실록에 잘못 기록한 것은 아니겠지?
잘못 기록했으면 나는 죽는다.
목사 : 여봐라 이년을 다시 옥에 가두어라
다음날 아침 옥사에서 제공하는 보리밥을 된장국에 말아 단박에 들이키듯 마셨다.
온전히 정신이 들자 허기가 먼저 앞선다.
허리가 개미허리보다 조금 더 가늘어진 느낌이다.
아직 목사의 호출이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초조해지는 나영
나영이 혼자 중얼거려 본다.
함주에 서리가 내렸나? 음력 7월이면 양력으로 8월 한여름 바캉스 시즌에 서리가 내렸다?
내 기억력에 오차는 없어 틀림없어 분명히 함주에 서리가 내렸을 거야!
혼자 중얼거리면서 내내 불안하다.
점심에는 쉰 김치와 소금이 같이 나왔다.
나영 : 죽을 때 죽더라고 일단 먹자 먹고 버티자 ~
살 떨리는 시간이 지나고 신시경(오후 3시~5시) 드디어 목사의 호출이 왔다.
목사 앞으로 끌려온 나영이 숨을 죽이고 초조하게 힐끔힐끔 목사의 눈치를 살핀다.
목사가 그윽하게 말한다.
목사 : 네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봤다는데 사실이냐?
나영 : 네 내려오긴 했는데요...,
나영이 말끝을 흐리자 목사가 재차 묻는다.
목사 : 네 말은, 천으로 만든 커다란 보자기 같은 타고 미래에서 왔다는 것이냐?
나영 : 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모두 사실입니다
목사 : 어제 네가 말한 함주에 서리가 내렸다는 내용은 파발을 띄워 방금 확인했다.
또한 너의 진술을 장계로 올려 의금부에 보고 하였으니 별도의 명이 있을 때까지 불편하겠지만 옥에서 지내거라 네가 원하는 음식은 얼마든지 줄 것이다.
나영 : 네 감사합니다.
당시 양주목사가 의금부에 올린 장계에는 나영이에게 다소 불리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태종 4년 6월 6일 정오에,
하늘 밝은데 태백성이 일중에 나타나고,
그 아래로 괴이한 형체 하나가 높은 공중에서 서서히 내려오니,
그 형체가 마치 사람 같기도 하고 새 같기도 하여
보는 자마다 크게 두려워 엎드려 감히 바라보지 못하였다.
혹은 이르되, 이는 천이 보낸 신령이라 하고,
혹은 말하되, 장차 나라에 재변이 있으리라 하며,
혹은 무당을 불러 고하기를, “하늘이 크게 노하였으니
속히 기도를 올리지 아니하면 온 마을이 화를 입겠다” 하였고
마침 소나무 가지에 걸려 있던 새의 옷을 입은 여인을 이곳으로 압송하여
취조하였는데, 말은 대부분 통하나 그 뜻은 알지 못하니 이는 하늘의 징조로
반드시 근심할 만한 일이 있으리라 판단되므로 속히 금부로 압송하시어 소상한 전모를
밝히셔야 할 듯합니다. -송악 목사 이원형-
그렇게 나영은 다시 옥사로 돌아오니 그제야 외동딸 실종으로 식음을 전폐하고 계실 부모님 생각에 애가 끓는다. 어떻게든 돌아가야지 자식이라고는 나 하나뿐인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나는 반드시 살아 돌아가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한편,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조선왕조실록을 번역하는 일에 전념했던 자신을 곰곰이 생각하며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처지에서도 무시무시한 태종을 만나면 살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벌렁거린다.
태종을 만나 사실직고 하고 미래를 잘 설명해 주면 살아 돌아갈 수도 있을 거야,라고 혼자 중얼거리는데 밖에 옥졸이 '제가 드디어 미쳐가는구나'라는 측은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다음날 조반을 마치고 나자 목사의 호출이다.
이번에는 동헌 대청마루에 탁자에 앉아 목사가 권하는 녹차(綠茶)를 한 모금 마신다.
며칠 전 연구소 사무실에서 마시던 티백 녹차와 그 맛이 같다.
목사 : 어떠냐 녹차 맛이 괜찮으냐?
나영 : 네 제가 여기 오기 전에 미래에서 마시던 녹차와 그 맛이 너무나 같아 놀랐습니다.
목사 : 무어라 그럼 이 녹차를 600년 후에도 녹차를 마시더란 말이야?
목사가 신기하다는 듯 연신 나영을 살핀다.
목사 : 내 아직은 너를 온전히 믿지 못한다. 다만 어제 네가 말한 함주에 서리가 내린다는 이야기가 그대로 일치하니 무턱대고 아니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해서 네가 의금부로 호송되기 전에 너와 많은 대화를 나누어 보고 싶은데 괜찮겠느냐?
목사의 표정이 아이같이 진지하다.
나영 : 궁금하신 것 무엇이든 하문하세요. 아는 대로 전부 말씀해 드릴게요.
나영이 역시 조금은 여유 있는 표정으로 답한다.
잠시 뜸을 들인 목사가 말한다.
목사 : 그렇다면 수 일후에 일어나는 일도 미리 알 수 있겠느냐?
잠시 생각하던 나영이 별거 아니라는 듯 쉽게 술술 이야기한다.
나영 : 칠월 칠일날과 십 이렛날에는 태백성이 주야를 끊지 아니하고 사흘 동안이나 대낮에 뚜렷이 드러나 보이게 될 것이옵니다.”
목사 : 너의 그 말은 내 차마 믿기 어렵도다.
내 일찍이 태백성이 낮에 사흘이나 나타난다 함은 이날 평생 듣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칠일과 십일에 잇달아 사흘동안 대낮에 나타난다니 실로 황당한 일이라 하겠다.
다만 네가 칠월에 서리가 내릴 것을 이미 맞혔으니 이번 또한 두고 볼 일이지만 이번에는 네가 틀린 듯싶구나 허허.
태종실록 6권, 태종 3년 7월 7일 임오 2번째 기사 1403년 명 영락(永樂) 1년
태백성이 3일 동안 낮에 보이다.
태종실록 6권, 태종 3년 7월 11일 병술 1번째 기사 1403년 명 영락(永樂) 1년
태백성이 3일 동안 낮에 보이다.
나영이가 예고한 말이 어느 것 하나 틀리지 않자 나영이에 대한 믿음이 굳어져 가는 목사가 말하기를
목사 : 내 너를 알지 못하여 거칠게 대한 점 미안하다.
오늘부터는 따로 방을 내어 줄 테니 그곳에서 기거하거라 또한 시중들 하녀도 한 명 딸려주마.
그 대신 한양으로 가기 전까지는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면 좋겠다.
나영 : 네 목사님 그리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영이는 목사와의 담소를 마치고 이미 와 있던 하녀의 안내로 처소로 와 보니 정갈하고 깨끗한 방이다.
하녀의 이름은 옥순이라 했고 어릴 적 아비가 역적으로 몰려 죽고 자신은 관노비가 되어 현재에 이르렀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옥순의 도움으로 오랜만에 비누대신 잿물로 치약대신 소금으로 시원하게 샤워도 했다.
모두 올가닉(organic)이다. 아 시원해 이제 좀 살 것 같다.
긴장이 풀리니 그제야 외동딸 실종으로 식음을 전폐하고 계실 부모님 생각에 가슴이 메인다.
그때 갑자기 하네스 포켓에 넣어 두었던 휴대폰 생각이 난다.
폰에 저장해 둔 부모님과 친구들 사진이 보고 싶어 금방 눈시울이 붉어진다.
나영은 옥순에게 목사님께 청이 있으니 잠시 뵐 수 있는지 여쭈어 보고 오라고 부탁했다.
쪼르륵 다녀온 옥순이는 반식경(약 한 시간) 후에 동헌으로 오라고 하셨단다.
잠시 후 다시 동헌에서 목사님과 마주한 나영이가 정중하게 부탁한다.
나영 : 목사님 부탁드릴 일이 있는데요 꼭 들어주셔야 합니다.
목사 : 그래 말해 보거라
나영 : 다름이 아니오라 제가 타고 온 천으로 만든 날개와 배낭을 제게 돌려주실 수 있나요?
목사 : 그리 해주고 싶지만 아직은 아니 된다. 하지만 의금부에서 조사를 마치면 가능할 것이다.
나영 : 네에 그럼 배낭에서 꺼낼 물건이 하나 있는데 제가 자주 사용하는 것이니 허락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목사 : 그것이 무엇이나?
나영 : 휴대폰이라는 것인데 여기서 사용은 안 되겠지만 그 속에 보관해 둔 정보는 볼 수 있으니 목사님께도 600년 후에 모습을 보여 드릴수도 있습니다.
고개를 까우뚱 하던 목사는 사령을 불러 함께 가서 찾아보라 하신다.
커다란 광 문이 열리고 안에 들어가 보니 찢어진 캐노피와 하네스가 그대로 보관 중이다.
나영은 하네스 지퍼를 열고 그 안에 있던 휴대폰을 꺼냈다.
전원이 켜져 있었고 배터리는 32% 남았다. 깜박하고 책상 위에 풀 충전해 둔 보조 배터리를 챙겨 오지 못한 것이 한스럽니다.
나영은 목사님께 휴대폰 속에 있던 사진을 차례로 보여 드렸다.
놀라시는 목사님의 표정도 한 컷 찍었다.
이 사진 한 컷으로 나영이를 100% 믿게 된 목사님의 배려에 나영의 마음도 점차 안정되어 갔다.
목사 : 어찌 눈 깜짝할 사이에 이렇듯 정교하게 나를 그릴 수 있단 말이냐?
이것이 미래의 신기술이냐?
놀라는 목사님에게 미래를 열심히 설명해 드리고 후일을 위해 28% 남은 휴대폰 전원을 꺼두었다.
-Episode 3 태종 이방원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