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고모의 콧구멍이 먼저 깨어났다

by 루달


새벽 다섯 시,
강남 아파트 신발장 앞에서
여시 막내고모의 콧구멍이 먼저 깨어났다.

야매 쌍꺼풀은 십 년이 지나도 진하게 자리 잡은 채
아직도 촉을 세우고 있었다.
후각 검열을 마친 고모는 그제야 우리를 집 안으로 들였다.


남자는 거실 소파 끝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면접 대기자처럼 앉아 있었다.


나는 숨도 안 돌리고
납치 전말을 요약 브리핑하듯 쏟아냈다.
어디서 어떻게 꼬였고,
어떻게 빠져나왔고,
이 남자가 새벽에 마중 나왔다는 데까지
압축해서 보고했다.


고모는 내 말을 끊지 않았다.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긴 했는데
공감이라기보다
머릿속에서 사건 일지를 정리하는 형사 같았다.


고모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남자에게 말을 붙였다.

아까까지는 콧구멍으로 검열하더니
이제는 입으로 최종 심사에 들어간 것이다.


“흠흠!! 새벽에 델다주러 와줘 고마워요.
지금 하시는 일은?”
“네, IT 사업합니다.”
“어디서?”
“아, 지금 고려대 산학관에 있습니다.”

고모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고모는 고아로 자라 상고 졸업 후에도 뒤늦게
박사까지 딴 사람이었다.

공부, 성실함 얘기만 나오면
표정이 자동으로 풀리는
교육열 과다 보유자였다.


“아이고, 그래요?”

고모는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고향은?”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지금은?”
“서울 잠실 이모댁에 삽니다.”

그리고 결정타처럼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종교는요?”
남자는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없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교회 열심히 다니려 합니다!"
고모는 감출 수 없는 전원주 웃음소리를 뿜어냈다.

보신각 종소리 때려잡는 소리였다.


“우화화 으허허으허허—”


우리 고모는 절실한 모태신앙으로 자랐다.
그런 고모 귀에
'종교는 없지만 앞으로 열심히 다니겠습니다'는
거의 빈 땅에 교회 세우겠다는 소리처럼 들렸을 것이다.


방금 전까지 남정네를 판독하던 얼굴은
어느새 전도 성공 직전 권사 표정으로 빛이 났다.


"형제는 어떻게 됩니까?”
“여동생은 시집갔고요.
남동생은 고대 대학원 다닙니다.”
고모 표정은 또 나사가 풀렸다.

남자는 멈칫거리더니 덧붙였다.


“그리고 전…
아직 집 장만할 돈은 없습니다.”
그러자 고모는
망설임도 없이 바닥을 툭 쳐가며 웃었다.


“하하하, 그런 게 뭐가 중요해요!”
진심이었다.


지금의 고모부는
교회 노총각 지휘자였는데
고모가 먼저 들이데서 결혼했다.
게다가 고모부도
몸만 왔다.
그러니
집 없다는 남정네의 고백은
고모에겐 흠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 합격 사유였을 것이다.

고모는 인성을 최우선으로 여겼다.


고모의 호구조사가 끝나자
방 안에서는 다음 순번들이 줄줄이 밀려 나왔다.


“안녕하세요~~”

잠시 뒤, 큰딸이 나왔다.
키가 먼저 나왔고
그다음 얼굴이 따라 나왔다.
잠결인데도 김태희 계열이었다.
남자 눈빛에 꿀이 뚝 떨어졌다.

곧 둘째도 나왔다.

머리는 더 길었고

이빨엔 교정기가 반짝였다.

김연아 닮은 미소로 웃을 때마다

애교가 먼저 문밖으로 새어 나왔다.

“안녕하세요~~ 용”

남자의 동공은

조용히 고모네 유전자에 감탄 중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토마토주스 든 우유병이 걸어 나왔다.

아니, 셋째였다.

청년부인 줄 알았던 집안이

순식간에 유아부로 갈아탔다.

왜소한 네 살짜리가 여자 아이가

안넝하떼요~까르르 ”


끝난 줄 알았더니
이번엔 바닥부터
스멀스멀 막내 여자아이가 기어 나왔다.
보송한 팔뚝과 볼살은
저 집 막내 자산 같아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스무 해쯤 뒤엔 아이돌도 하고
유튜브로 용돈도 드리는 효녀가 됐지만.



막내고모부가 신문을 한 장 든 채 나왔다.
얼굴은 핸썸한데
분위기는 무슨 새벽 가정법원 부장판사 같았다.
신문까지 들고 나오는 폼이
집안사람이라기보다
새벽 여론조사 진행자 향기다.


고모네 각본 없이 새벽에 왔다가
남자는 가족이 한 명씩 나올 때마다
소파 끝으로
조금씩 더 몰렸다.


나는 고모를 주방으로 끌고 가
이를 악물고 속삭였다.
“고모!!
몇 번 안 만났는데
왜 결혼 면접 보듯 꼬치꼬치 캐물어.
나 창피해 죽겠어.”
고모는 콧방귀도 안 뀌고 말했다.
“야!!
네가 여태 사고 친 거 생각해 봐.
저렇게 반듯한 남자가 좋다 할 때
밀어붙여야지!”
맞는 말이라 더 열받았다.


사실 고모와 나는 비밀 없이 자라 왔다.
내가 사고 친 일들은 고모 입장에선
생활기록부가 아니라 전 과목 종합평가서였다.



다음 회엔
고모 말대로
제가 여태 사고 친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잊고 싶었던 것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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