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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만났습니다_ 억새

Feast your eyes on silver grass!

by w t skywalker

이제야 만나봅니다. 민둥산과 억새!

신문지상과 인터넷으로만 겨우 눈팅이나 조금씩 하면서 살펴보며 흠모하던, 꿈에 그리던 억새의 은빛 물결과 민둥산의 정상 표지석을 말입니다.


드디어 민둥산 정상입니다.

산 아래 아니 발아래 펼쳐지는 풍광은 답답한 이 내 가슴을 뻥 뚫어주는 신속 소화제이자, 급속 청량제입니다.


억새는 산등성이에서 은빛으로 물결쳐 억새라고 부르며, 갈대는 강가에서 갈색으로 피어나기에 갈대라고 부릅니다.

기억하기가 너무 쉽죠~잉!

강가, 갈색, 갈대.

억새, 은빛.

기억하시겠죠. 믿습니다.

귀신 씻나락 까먹듯이 까먹으면 앙 돼!

소도 키우고, 농사도 지어야 항께! 알았제!




민둥산 표지석에 갑자기 줄이 길게 늘어선다.

전부 다 셀카네, 단독 풀 샷이네, 단체사진이네 하고 찰칵, 찰칵 현금 계수기 돌아가는 소리 마냥 셔터 소리만이 바람결에 묻혀 저 멀리 날아간다.


그럼, 나도

먼지가 되어. 날아가야지.

바람에 날려 당신 곁으로.

뚜뚜루두 뚜뚜루두 뚜뚜루두 뚜바.


단체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 걸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단체 촬영을 도와주기로 맘먹었다. 부부끼리, 친척끼리, 선후배끼리, 동호회원끼리 등 참으로 다양한 군상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나란히 나란히 반듯이 줄 서있다. 훌륭해. 줄 서기도 잘하고.


전속 사진사들의 전매 특허인 짓궂은 생각에 '야구장 키스타임'을 크게 외쳐댄다. 남편은 큐 싸인에 따라 적극적으로 호응하려는 순간, 여편이 남편의 주둥이를 막고 '가족끼리 이러는 거 아냐!'

라면서 완강히 거절한다. '가족끼리 그렇게 하는 거예요' 하고 대꾸도 해봤으나, 돌이키기엔 이미 늦었다. 별 수 없이 그냥 찍어주고, 다음 팀 촬영을 계속 진행해 나갔다. 민둥산 전속 고용 촬영기사가 따로 없네.

그런데, 웬 걸. 잠시 후에 옆으로 시선을 돌려 쓰윽 바라보니, 좀 전에 가족사진에 찍히던 그 두 작자, 사진 촬영 전용 공간으로 마련된 하트 장식물 밑에서 남편과 여편이 서로 입을 맞추려고 폼을 잡는 게 아닌가? 기가 막힌다. 둘이서만 은밀히 밀회를 즐기려고 쓰윽 발을 뺀 거구먼. 하여간, 응큼하기는! 그들이 거사에 성공했는지 아니했는지는 난 잘 모르겠다. 더 이상 관심을 두고 싶지도 말하고 싶지도 않다.


촬영자 시점의 포토 타임을 잠깐 즐기고 나서, 나도 사진 촬영 모델로 즉석 데뷔해 본다. 민둥산을 연인인 듯 내 품 가득히 껴안고서. 흐흐흐!


민둥산 표지석 옆에 노두 산악회에서 별도로 세운 조그마한 표지석이 앙증맞기도 하면서 귀엽고, 소박하기까지 하다.

작고 조그마한 민둥산 표지석과 키 높이를 맞추려고, 늘씬한 학다리를 굽혀 앉은키로 표지석과 높이를 맞추어준다.

좀 전에는 서서 키를 맞추어 보고,

이번에는 앉아서 키를 맞추어 보는,

아주 이색적인 경험을 동시패션으로 해 본다.

어느 산 정상에 표지석이 2개씩이나 있겠는가?

내 상식으로는 처음이다.




정상 근처 올라가는 길에 SUV 차량이 주차되어 있다. 오호, 통재라! 증상까지 살 빠지게 힘들게 걸어서 올라오지 않고, 차로 올라왔어도 되는 거잖아. 허탈감에 휩싸이고 만다. 근데. 알고 보니 억새 축제기간에는 관계자 차량만 이곳까지 임도를 이용한 차량 진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평상시에는 차량으로 오르는 오르막길이 닫힌단다.




나이키에서 나이에 맞는 브랜뉴 신상 신발을 봄맞이로 할인 판매하길래, 일말의 고민도 없이 냉큼 구매한 트레일화를 정든 등산화 대신 오늘 등반용으로 대체해 개시했다.

새 신을 신고 뛰어 봤다. 팔짝.


억새 사이로 트레일화 신고,

달리는 기분 상쾌도 하다.

하늘 열려서 높이 견주니,

흥겨워서 소리 높여 메아리치자.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그의 인자하심을 내게서 거두지도 아니하셨도다."(시 6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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