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ver grass!
은퇴자의 색감과 어감에 딱 들어맞는 풀은
바로 억새!
Silver grass 이다.
그 억새의 장관을 이 가을에
이제야 만나러 민둥산으로 갑니다.
두 팔 벌려(open arms) 맞이해 보자.
민둥민둥! 빈둥빈둥거리면서도
먼둥먼둥!
멀뚱멀뚱 쳐다보자꾸나.
은퇴자의 머리를 닮았나? Silver grass!
나름 유명한 산의 허리 능선에서 한 몸 되어 은퇴자의 빛나는 명예와 훈장처럼 은빛으로 출렁이는 물결의 장관,
보고 있노라니 감탄만 나온다.
은퇴자의 성품을 닮았나? Silver grass!
백전불굴! 산전, 수전, 공중전, 화생방전(조혜련 왈)까지 온몸으로 다 겪어낸 그 깡!
억세게 가장 센 깡으로 일생을 존버로 일관한, 억새와 같이 모진 바람과 풍파를 온몸으로 받아내고서도 초자연적인 인내력으로 살아남은 은퇴자들의 고유한 내적인 성품.
존버에 그저 머리만 꾸벅!
억새를 억세게도 닮았구나.
초입부터 남다르게 다가온다. 팀원들과의 약속시간에 맞춰 서둘러 나오느라, 그만 아이더 등산화를 그냥 차에 두고서 대열에 합류했다. 등산 스틱은 번거로울 것 같아 내려놓고서. 그런데, 등산로 초입에 간이 철 스틱 지팡이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노인들을 위한 배려심도 만땅, 아직 노인네는 아니지만, 그래도 감격은 만땅!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철 스틱 자팡이 한 개를 집어 들고서 친구로 깐부로 의지하면서
드뎌 민둥산 등산 start!
초입에 들어서자 민둥민둥, 밍숭밍숭. 맹숭맹숭. 등산로 초입은 여느 산이랑 마찬가지로 특이한 점이나 색다를 바가 없다.
걍, 산이다. 올라가 보자.
거친 숨을 몰아쉬는 등반 도중, 깜짝 놀랐다. 이국적인 노랑머리! 그 색 바랜 노란 색깔이 내 눈 옆에서 순간 나타난 것이다. 나를 보자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반가운 마음에 만나서 얼떨결에 '반갑습니다.'
몇 마디 주고받다 보니, 앳된 독일 처녀다.
이름은 Janin. 이름도 이쁜데. 이름에 뜻이 있냐고 물으니, 성경의 요한에서 따왔다고 한다.
다 그렇지 뭐, 서양 애들 수준이.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게 되어 알아낸 정보이다.
기특하지 않은가?
초등학교 교사이고, 동독에서 살았다고 한다.
더 이야기가 진전되면서, 예의상, 아니다. 진짜로 독일 여성인데, 영어가 상당히 능숙하다고 칭찬을 해주자, 아니라고 겸양을 떨기도 한다.
그 포인트가 마냥 귀엽다!
아버지가 딸을 보는 것 마냥.
자기 고향
라이프치히(Leipzig, 동독 대표 도시이자 바흐와 멘델스존이 활동한 음악의 도시) 가 러시아에 가까워 영어보다는 러시아를 배웠다고 한다. 내 영어 실력도 보통 이상이라고 품앗이로다가 칭찬도 해줄 줄 안다. 제법이군. 사회생활도 할 줄 아네.
에고, 브런치 집필에 몰두하다 보니 어느새 수서다.
도곡에서 내렸어야 하는데, 낭패다. 그만 세 군데 역을 지나쳐 버렸다. 이제 거꾸로 도곡까지 돌아가야 한다. 으이구!
유턴 후, 걍 계속 써 내려가 본다. 탄력 받았을 때 써야 한다. 영감이 떠올랐을 때 놓치면 큰일이다.
평소에 궁금했던 독일 남녀 혼탕 문화에 대해서 물어본다. 이 처녀, 질색에 팔색을 한다.
어, 이상한데. 이게 아닌데. 아, 그렇지!
이 처녀는
made by & grown by east Germany.
Exactly 동독 처녀지. 이해가 간다. 마구 간다.
노인네와 대화하느라 땀 뻘뻘 흘리는 중이군!
정상 아래에서 다정하게 한 컷! 단, 오해마시라,
한 때 젊었을 때는 서양 여성과 자연스럽게 어깨 동무로 사진도 찍고 그랬는데 이제 나이를 먹으니 perfect 한 순수함, 그 자체로 변했다.
아, 세월이 야속하구나! 돌리도 내 청춘!
젊음의 상실이 너무나도 커, 더 이상 펜을 붓처럼 들고서 집필을 이어갈 수가 없다.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니 양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의 나이대가 저와 연배일 것이니.
무한 공감과 동감에 sympathy 마저 느낄 것이니!
속편에서 나머지 민둥산 등반을 이어가기로 하자.
민둥민둥하면서
들멍, 산멍, 억새멍, 하늘멍, 처녀멍!
온갖 멍이란 멍에 기분은 마냥 하늘을 난다.
다행히 여러 다양한 멍에도 불구하고, 진짜로 멍들지는 않는다. 휴~ 다행이다.
다, 조타!
가는 세월마저도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창 11:9)
인간이라는 것들이
피조물에 불과한 것들이
깝쭉대다가
그만 언어가 나뉘었잖아!
언어도 돌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