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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어버려서 미안.

10월 3주, 화요일

by thera 테라

상담실 문 앞쪽으로 작은 그림자 하나가 휙~ 하고 지나가더니

문 앞 장식걸이에 반으로 접힌 종이 하나가 꽂혀있습니다.


살그머니 접힌 선을 펼쳐보니 알록달록 꽃과 나비, 구름. 하트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이 그림으로 재탄생하여 총동원된 듯한 세계가 담겨있습니다.

삐뚤빼뚤해 보이지만, 꾹꾹 눌러쓴 짧은 글 '사랑해요'에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한동안 그 행복에 젖어 있다 편지를 두고 간 친구를 찾아 나섭니다.


자신을 찾아와 준 그 발걸음이 반가워 함박웃음으로 인사를 건네고 있는 아이와 시선이 마주칩니다.

"00야, 고마워. 선생님 문 앞에 깜짝 선물을 두고 갔네~"

아이는 자신의 그림과 글씨를 알아봐 준 마음이 고마운지,

연신 빙그레 웃다가 따스한 포옹을 한참이나 나누고는

곧 친구와의 놀이에 합류하느라 저만치 멀어져 갑니다.


자리로 돌아와, 아이의 그림을 다시 한번 바라봅니다.

평소 말수가 많지 않았던 아이의 그림편지는 꼭꼭 눌러쓴 글씨만큼이나 내 마음에 꼭꼭 새겨집니다.


가만히 편지를 바라보자니 문득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아이들의 소중히 그리고 쓴 편지들에 화답은 '고맙다'라는 말만 반복했다는 것을요.

아이들이 오가는 곳에 한동안 편지를 전시해 두는 것이,

정성스레 건넨 아이들의 마음에 답하는 일이라 생각했었습니다.



아이의 소중한 그 마음에 건넸던 '고맙다'는 말과

편지를 곱게 펴서 전시해 둔 나의 행동은 진심이었지만,

건네는 그 사랑스러운 마음을 언제나 받기만 했던 것이 아니었는지...

아이들을 향한 그 마음을,

그 진심을 더 잘 표현할 방법이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나는 아이들에게 답장을 쓰려합니다.

그동안 받았던 모든 편지들에 답장을 한 번에 전해줄 수 없겠지만

하얀 종이, 작은 그림으로 표현한 나의 마음도 살그머니 전달해 보려 합니다.


너희들의 따스한 마음에,

너무 늦어버려서 미안.




아이들은 매일 마음을 건넵니다.

짧은 글, 삐뚤빼뚤한 그림, 조용한 눈빛 속에 그들의 사랑과 응원이 담겨있습니다.

그 표현은 서툴어 보이지만, 그 진심은 누구보다 깊고 단단합니다.

이는 단순한 감정의 전달을 넘어,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선생님이 그 마음에 어떻게 응답하느냐입니다.


마음의 교류는 일방향이 아니라 쌍방향이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아이의 표현에 진심으로 반응할 때,

아이들은 내 마음이 소중하다는 것을 배웁니다.

이 경험은 아이의 자존감을 키우고, 정서적 안정과 자기 표현력에 큰 영향을 줍니다.


짧은 답장일지라도

그 속에 담긴 말 한마디, 그림 하나가

아이에게는 '나를 알아주는 어른'의 증거가 됩니다.

그 작은 응답이 아이의 세계를 넓히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용기를 심어줍니다.


우리는 종종 바쁘다는 이유로, 어른이라는 이유로

아이가 보내는 그 따스한 마음을 받는데 익숙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진짜 교육은 그 놓쳐버린 순간들 속에 숨어 있습니다.


선생님의 작지만 따스한 응답 한 번이,

아이에게는 평생 간직될 소중하고 따스한 기억이 될 것입니다.


교육이란 정해져 있는 프로그램의 진도와 성과를 의미하는 것보다

아이의 마음에 응답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 마음을 알아보고, 늦었더라도 진심으로 답하는 것.

그것이 선생님으로서 우리가 걸어가야 할 가장 따스한 길입니다.





함께 생각해 볼까요?


ㅣ 아이들이 건넨 편지와 그림 속 마음을, 나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ㅣ 아이들이 건넨 마음들에 응답해 본 적이 있나요?

그런 기회가 많지 않았다면

오늘, 아이의 그 마음에 응답해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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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instagram.com/picturebook_th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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