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크게 터지기 바로 직전인 2019년 말, 나는 시간 부자인 백수였기 때문에 조금 길게 중남미 여행을 갔었다. 그전에는 유럽과 동남아 여행만 가봤었기 때문에 '남미에서는 영어가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그곳에서는 영어를 아예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한국인이라면 간단한 영어는 대부분 조금씩은 할 줄 알기 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들도 대부분 그럴 것이라고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었던 것 같다.
심지어 그 당시 나는 "올라 Hola(안녕)"라는 그 유명한 인사말조차도 모르고 갔다. 하지만 2주쯤 콜롬비아, 쿠바, 멕시코를 여행하다 보니 우노 Uno, 도스 Dos, 뜨레스 Tres... (하나, 둘, 셋...) 숫자 세는 법과 그라시아스 Gracias(고마워요),로 씨엔또 Lo siento(미안해요), 데 나다 De nada(천만에요), 꾸안또 에스¿Cuánto es?(얼마예요?) 정도의 간단한 말들은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학연수를 하는 한국인들을 여러 명 만나게 되면서 '스페인어가 대략 20여 개 국가에서 사용되는 언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고 2차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스페인어'라는 몰랐던 세계를 맛보게 되었다. 그 이후 나중에 다시 또 남미 여행을 가보고 싶기도 했고, 왠지 영어 이외의 새로운 외국어를 배워보고 싶기도 했고, 기왕이면 전 세계에서 많이 쓰이는 스페인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때 여행에서 만났던 한국인 중에 스페인어를 잘하던 사람과 동행했던 적이 있다. 스페인어에 능숙한 그분 덕분에 여행이 꽤 편했으며, 외국인과 스페인어로 대화하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 그리고 그 부러움은 또 자연스럽게 "한국에 돌아가면 나도 스페인어 공부를 해야지!"라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나는 새해마다 매번 똑같은 다짐을 했다. "내년에는 꼭 스페인어를 공부해야지!!", "내년에는.... 내년에는... 해야지... 해야지..."에서, "해야 되는데... 언제 하지...? 할 수 있을까...? 하고 싶은데...."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금세 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직장 생활과 여러 가지 일들에 치여 '스페인어 공부하기'는 자꾸 우선순위에서 미뤄졌다. 스페인어가 필요한 직업도 아니고, 스페인어를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 명확한 이유도 없고, 스페인어 시험 점수가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스페인어를 공부하지 않아도 내 일상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므로, 계속 미루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시작만 안 하고 있었을 뿐이지 그동안 계속 스페인어 공부 방법에 기웃기웃하고 있었다. '스페인어 독학 책을 사볼까? 스페인어 학원을 다녀볼까? 스페인어 인강을 들어볼까?' 하면서 고민하고 있던 중, 잠깐 알아보기만 하고 말았던 O원스쿨에서 스페인어 종합 패키지 인강 특가 프로모션 문자가 왔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광고 문자 타이밍이 아주 기가 막혔다. 그 시기에 나는 내 인생이 발전이 없는 것 같다고 우울해하고 있을 무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하니 그 광고 문자를 보고 머릿속에 든 생각은 '지금이다!!!'였다.
수십만 원짜리의 스페인어 인강 패키지를 결제했다. 역시 돈을 지르고 나니 어떻게든 하게 되는 것 같았다. 돈을 썼으니 내가 쓴 돈이 아깝지 않으려면 열심히 해야 했다. 몇 달 동안 조금이라도 시간이 날 때마다 계속 인강을 봤다. 주말에는 혼자 교재를 읽고, 발음하고, 문장 연습을 했다. 처음 학습 방법은 초등학교 때 처음 영어 배우는 과정과 비슷했다. 영어와 비슷한 단어도 있지만 다른 단어들이 훨씬 많아 외우는 것도 시간이 오래 걸렸고, 문법은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그보다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영어 이외의 외국어가 너무 신기해서 마냥 재미있었다.
인강을 거의 다 듣고 몇 개는 복습 겸 한 번 더 듣고 나니 좀 더 발전을 하고 싶었다. 그즈음 '사이버외대 스페인어 학과 진학'과 '스페인어 시험인 DELE 시험'도 알아봤다. 나는 전문적으로 스페인어를 어디 써먹고 싶어서 배우는 것이 아니므로 최대한 '재밌게' 배우고 싶었다. 한국에서 정규교육과정의 영어 배우듯이 문법 위주로 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문법도 공부해야 하긴 하겠지만, 무엇보다 스페인어로 말을 하는데에 중점을 두고 싶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스페인어 학과 진학이나, DELE 시험 준비는 하지 않기로 했다. 일단 '스페인어로 소통하기'에 초점을 두고 공부하다 보면, 시험 점수나 학위 같은 것은 필요할 때 하면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