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서 남기기

박제되는 시간

by 도씨


내가 만약 죽는다면 브런치의 이 글들을 모두 나의 유산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글쓰기를 좋아했는지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처음은 이렇다.


예닐곱즈음부터 일기 쓰기가 좋았다.

그래서 길을 걸을 때도 머릿 속에선 문장을 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것 같진 않았다.

내 글은 항상 장려상만을 받는 장려상급 글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무언갈 쓰고 기록 해 남기는 일은 무엇보다 소중했고

그 글이 기특한 내 새끼처럼 느껴졌다.

아이였지만 그 느낌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몇 년동안은 글을 쳐다보지도 않은 시절이 있었다.

일기조차 한 줄 쓰지 않는...


아마도 장려상급 글을 계속 남겨봤자 한낱 종이 쓰레기의 무늬란 생각이 들어서였던 것 같다.

그만큼 마음의 병이 깊기도 했다. 한줄의 글 쓰는 것조차 펜이 무겁다 느껴질 만큼..


하지만 요즘들어 브런치에 글을 남기면서 살아있다는 감각이 새로워 재미가 붙었다.


나에겐 이것저것 욕설도 쓰고, 잡념도 쓰고, 국거리처럼 글거리를 쓰는 노트가 하나 있다.

충동적으로 써서 갈겨대다보면 하나씩 소재를 낚을 수 있다.


지난 것들을 모두 잊었다고 생각해도 그 노트를 펴면 모든 글들이 내가 살아왔음을 보여주고 읽게한다.


그것들 모두 이미 죽은 일상들과 상념들이지만 , 살아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박제된 시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죽었지만, 죽지 않은 나의 시간들, 나의 생각들.


내 글을 쓰고, 그래서 누군가가 읽어주고, 라이킷을 받는 그 모든 과정이 행복하다.

행복에 무딘 내가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은 일생의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속물인 부분은, 언젠가는 '팔리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다.

아마도 내 글은 앞으로도 잘 팔리는 글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가 죽으면 유산이 되고, 내가 살아가면 기록이 되는 이 행위자체가 너무나도 행복하다.

유명 천재 작가로 태어나진 못했지만, 야망을 품은 속물 작가는 될 수 있을것이다.


어느새 브런치에 쓴 글도 20편을 넘어섰다.

싫증을 잘 내고 의지도 없는 나에겐 기적같은 일이다.


좋아서 하는 일은 이토록 삶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고 가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고 싶어서 누워만 있던 내가 노트북을 켜고 고쳐앉는다.

글을 쓰고 싶어서 브런치를 들락인다.

글을 쓰고 싶어서 책을 읽는다.

글을 쓰고 싶어서 드라마와 영화를 본다..


어쩌면 브런치 작가 승인은 받은 후부터 생명력을 얻은 것 같다.

삶의 원동력이란 이런 것일까


써서 남기며 느낀다.

이 것이 내가 앞으로 갈 길이라고.


살아왔다는 증거와 내 감정이 오롯이 새겨진 노트를 보면서도 느낀다.

아 이렇게 써서 남기려고 살아왔구나.


누군가 읽고 라이킷이 하나라도 생기면, 기쁨의 휘파람도 불곤 한다.


나의 유산이 될 모든 글을 사랑한다.

내가 살아왔고, 결국 죽지않고 살아냈다는 증거.

불태우지 않는 이상 살아있을 증거.


마치 밥짓는 일과 같다.

쌀을 씻어내고 뜸을 들이고 흰 쌀밥을 지어내는 것.

그리고 누구보다 내가 제일 먼저 맛을 본다.


나는 매번 내 글을 첫번째 독자가 된다.


내 영혼을 굶기지 않기 위해 오늘도 글을 쓴다.


아. 오늘도 한끼 잘 지어 먹고 간다.




노트.jpg 반짝이는 나의 노트






브런치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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