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으로 살아가기
2014년, 첫째를 키우며 만삭 때까지 일했는데 무리해서인지 양수가 새서 감염 위험으로 유도분만을 72시간 내에 해야 한다고 했다. 검진 당시 둘째는 진통 걸리면 금방 나오기 때문에 집에 가지 말고 입원하라는 담당 과장님. 그리고 진통 오면 새벽에라도 아이 받으러 나올 테니 걱정 말라고 하셨다.
첫째는 무통주사 없이 3시간 진통했는데, 둘째는 무통주사 없이 15분 진통했다. 출산 전날 가족분만실에서 자고 아침에 짐볼을 타며 아침드라마 보다 아파서 베드에 누웠는데 15분 뒤에 아이가 나왔으니.. 순산했지만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통증이었다. 무통 주사 없이 맨 정신에 산통을 두 번이나 겪은 나도 보통이 아닌 건 맞는 거 같다. 남들은 '산모님~ 힘주세요'라고 하는데 두 번의 출산 모두 힘주지 말라는 얘기를 했다. 과장님 오기 전에 애 낳으면 큰일 나니까 제발 힘주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힘이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걸 어떻게 하라는 건지 힘을 빼는 게 오히려 더 힘들었다. 출산조차도 평범하지 않았다.
첫째 때는 조리원에 들어갔지만 둘째 때는 출산 후 2박 3일 만에 퇴원했다. 첫째가 너무 어려서 산후조리원에 들어갈 수가 없었고 조리원 대신 산후도우미를 쓰고 이후엔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셔서 산후조리를 도와주셨다. 그렇게 18개월 연년생 육아가 시작되었다.
둘째가 막 한 달이 되었을 무렵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사실 공부가 너무 재밌어서 대학원을 가고 싶었지만 육아로 접어야 했고 졸업 후에 교수법 관련된 공부를 많이 했다.
나는 대전-서울을 오가며 자격증을 땄는데 당시 4학년이던 X는 이미 학교에서 어린 아빠로 유명했다. 지도 교수님들이 많이 배려해 주시고 신경 써주셔서 X가 공부하고 싶은 분야의 회사에 인턴으로 연결해 주셨다.
시어머니는 시댁에 들어와 살면서 돈 모으라고 하셨지만 나는 여러 가지 정부 지원 제도를 검색했다. 그때 발견한 Lh신혼부부전세임대 제도. 나라에서 1억 2천만 원 전세금을 지원해 주면 5프로의 보증금만 부담하고 2%의 이자를 월세로 납부하는 방식. 혼인신고 기간과 자녀 수에 따라 가점이 달라진다. 우리는 신혼부부 3년 이내, 자녀 2명으로 1순위였다.
운이 좋게도 신혼부부 전세임대제도에 당첨되어 인턴 지원과 동시에 나는 대전-인천을 오가며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원하는 조건에 맞는 집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당시 전세 7000만 원의 구옥 투룸 빌라를 얻었다. 그리고 두 돌 된 첫째와 200일 된 둘째를 데리고 이사를 했다.
그렇게 인천에 다시 정착하면서
첫째도 둘째도 같은 어린이집을 보내고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인천에 아무런 연고가 없고 지방대 출신이지만 다행히 집 근처 학원 파트타임 일을 하고 개인레슨도 하고 주말엔 교회 반주를 했다. X는 인천에서 서울로 출퇴근을 했고 1년 가까이의 인턴생활을 했다.
나는 어떻게든 아등바등 살았다. 하지만 계속되는 도박으로 매번 싸웠고 싸우면 회피했다. 갈등이 심할 때마다 X는 집을 나갔고 핸드폰을 껐다. 나는 대화를 해서 해결책을 찾고 말을 해야 하는 스타일인데 X는 갈등이 생기면 입을 닫고 회피했다. 돈 문제 이전에는 큰 갈등이 없었기에 어떤 스타일인지 몰랐는데 그제야 알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서서히 마음의 문이 닫혔다. 도저히 얘기해도 사람은 바뀌지 않았고 내겐 18개월 첫째와 이제 막 태어난 둘째가 있었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과 어떻게 해도 바뀌지 않을 거라는 사실에 무기력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