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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직, 지방직 둘 다 해보니 어때요

이건 공시생을 위한 레슨

by 이진영

행정부 공무원은 크게 국가직 공무원과 지방직 공무원으로 분류할 수 있다. 국가기관에서 일하느냐, 지방자치단체에서 일하느냐. 공무원을 준비하는 공시생들은 두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이 많을 것이다. 경쟁률을 비교해 보기도 하고, 준비해야 할 시험 과목으로 결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 한 가지를 선택했다가도 또다시 방향을 바꾸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가보지 않은 길에는 항상 미련이 남는 법. 둘 다 해본 전직 국가직, 현직 지방직 공무원으로서 내가 느낀 차이점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약사보다는 그저 공무원의 시선으로 정리해 보았다.

오송 기차역.jpg 오송역 플랫폼(2021년 9월), 세종시에서 근무하는 국가직 공무원이 서울로 갈 때는 오송역에서 KTX를 탄다.

첫째, 업무 범위가 확연하게 다르다. 국가직 공무원에게는 ‘관할 법령’이 중요하다. 정부 부처마다 각자 지정하고 관리하는 법령이 있는데, 식약처를 예로 들면 약사법 일부(일부는 보건복지부), 마약류 관리법, 식품위생법 등이 있다. 코로나 시국 초기, 의약외품인 보건용 마스크 품절 대란이 일어났을 때 약사법 적용을 받는 의약외품을 관리해야 하는 식약처에 비상이 걸렸다. 식약처 전 부서 직원들이 전국에 있는 모든 마스크 제조업체로 투입되어 생산과 유통과정을 점검하였다.


지방직 공무원에게는 ‘관할 구역’이 중요하다. 지역 축제 행사에 안전요원 또는 의료 지원 인력으로 차출되기도 하고 각종 선거가 있을 때도 투표소로 파견된다. 어느 지역의 학원가에서 마약 음료를 나눠준 사건이 발생했을 때, 우리 보건소에서는 우리 지역 모든 학교 근처를 점검했다. 민원인이 찾아와도, 제일 첫 질문은 어느 지역 어떤 업소에 대한 민원인지를 물었다. 관할 구역 밖의 업소를 점검하는 것은 월권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둘째, 업무 성격이 확연하게 다르다. 업무에도 MBTI가 있다면 국가직 업무는 사실과 원칙 중심의 사고형(T)이고 지방직 업무는 공감과 조화 중심의 감정형(F)이라고 생각한다. 국가직은 법령 중심으로 돌아가고, 지방직은 지역민 중심으로 돌아가니 업무에서도 요구되는 기대 반응이 다르다. 식약처에서 근무할 때 전화로 하소연하는 민원인 얘기를 곰곰이 들어주다가 그 건은 경찰서 소관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처음부터 정확하게 말해주지 않았다고 원망을 들은 적이 있었다. 보건소에서는 민원인에게 단호하게 말했다가 원망을 듣고 난 이후로는 ‘그러셨군요.’, ‘속상하셨겠어요.’를 달고 살았다. 물론, 어디서 일하든지 이성과 감정의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셋째, 업무강도는 비교하기 어렵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므로 어느 쪽이 더 힘들다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 국가직의 고된 점은 업무 범위에 비해 인력이 너무 적은 것이다. 식약처 공무원 정원은 본청,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6개 지방청을 다 합쳐서 2,003명(25.6.30. 기준)으로, 서울특별시 강남구청 정원 1776명(2024년 기준) 보다 조금 많은 수준이다. (출처: 행정안전부 정부조직관리정보시스템, 서울시 열린 데이터광장)


지방직의 고된 점은 모두 다 알다시피 악성 민원을 꼽을 수 있다. 같은 직렬 동기 중에 4명이 임용된 지 2년이 채 안 되어 사직서를 제출했는데 대부분 모두 악성 민원의 굴레에 사로잡힌 사연이 있었다. 민원 업무로 신상이 공개되고 악성 댓글에 시달린 지방직 9급 공무원이 숨진 사건이 있었다. 당시 그 일은 지방직 공무원 전체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함께 일하는 부서원들이 이구동성으로 ‘남 일 같지 않다.’고 했다. 이후 사무실 앞 부서별 공무원 사진이 제거되었고 자치구 홈페이지 조직도에서 공무원 실명을 삭제하는 등 민원 응대 공무원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번외로, 승진은 고위직 정원이 더 많은 국가직이 유리하다. 직렬별로 승진 속도가 달라 객관적인 비교는 힘들지만 대체로 동일 직렬에서는 국가직이 더 빠르다. 복지는 지방직이 훨씬 낫다. 복지포인트, 연수원 이용, 각종 특별 휴가 정책 등등 모든 면에서 더 앞서있다. 각종 휴직제도는 동일하며 월급 체계도 같다.

식약처 엘리베이터 글.jpg 국가직 공무원으로 마지막으로 근무하고 퇴근하던 날, 엘리베이터에 걸린 액자. 나는 돛의 방향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는데 국가직과 지방직 중에 어느 쪽을 선택할지, 어떤 일이 나에게 잘 맞을지 모르겠다면,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공무원 생활을 양쪽에서 다 해보니, ‘무엇을’ 하는가 보다 ‘어떻게’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어느 쪽이든 공직은, 일을 하면서 성장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고 그 공적 결실로 보람을 얻을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일보다는 함께하는 사람-상사, 동료, 동기들이 제일 중요하다. 일이 아무리 어렵고 힘에 부쳐도 결국 함께하는 사람들로 인해 위기를 넘긴 적이 많았다. 공무원이 된다면 서로에게 그러한 사람들이 되어 주길 당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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