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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활 받지 않는 너에게

전직 국가직 공무원이 알려주는, 국가직 공무원과 통화하는 팁

by 이진영

식약처에서 근무할 때 종종 보건소 공무원의 전화를 받았는데, 보건소 공무원이 되어 식약처로 전화해 보니 예전에는 알 수 없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원래 그 안에 있을 때는 볼 수 없었던 것을 떠나고 나서야 깨닫는 법이다. 지방직 공무원이 되고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왜 그만두셨어요?" 보다 "식약처 하고는 왜 이렇게 통화하기 어려워요?”였다.


식약처 여러 부서와 근무했었는데, 내선 전화로도 도무지 통화가 어려운 부서가 있음을 인정한다. 담당자가 회의 중, 출장 중 또는 다른 통화를 이미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나마 조직 내부에서는 통화가 안 되면 내부망을 이용한 메신저나 내부 메일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외부 사람들은 그마저 어려우니 더욱 답답할 것이다. 그런데, 보건소에서 일하면서 내가 느끼기로는 식약처보다 보건복지부가 더 통화하기 힘들었다.

그나마 다른 누군가라도 받아서 담당자가 부재중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은 고마울 지경이다. 전화선이 나가버렸는지 어떤 기관의 한 사무실 전체가 한동안 통화 불가 상태였던 적도 있었다. 담당자와 겨우 통화가 되었는데 옆 팀 전화를 당겨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었다.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받아서 제 담당 업무가 아니어서 답변할 수 없다고 말하면 오히려 욕을 먹거든요.”


담당자가 자리를 비워서 답변할 수 없다는 대답, 누구나 한 번은 들어봤을 것이다. 대한민국 공무원이라면 모두 그 말을 듣기도 하고 말하기도 하는 입장 모두에 다 서보았을 것이다. 어쩌면, 공무원이 아니더라도 조직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랬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왜 옆 사람의 일을 대신 답변해 주지 않는 것인지 답을 드리자면, 공무원의 답변에는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내 소관이 아닌 일에 섣불리 답변했다가는 실제 업무 담당자가 더 곤란해지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대체로 보건소를 포함하여 지자체 소속의 지방직 공무원들은 통화가 쉬운 편이고, 국가직에 해당하는 정부기관은 통화가 어려운 편이다. 그 이유는 조직 구조에서 알 수 있다. 의약품을 예로 들어보면, 식약처 소관의 의약품 정책과 법령을 담당하는 본청은 단 하나, 의약품 제조수입업을 허가하고 관리하는 지방식약청은 6곳이 있다. 특별시·광역시·도로 구성된 광역자치단체는 17곳이며, 지자체 시·군·구 산하 보건소는 전국에 260여 개소가 있다. 보건소 담당자 한 명씩만 식약처 본청으로 문의 전화를 걸어도 통화는 260건이다. 묻는 이는 여럿인데 답을 할 수 있는 담당자는 단 한 명이다.


그렇다고 모르는 상황으로는 일할 수는 없는 노릇. 식약처 홈페이지에 게시된 업무별 공무원 지침서, 민원인 안내서를 참고해서 업무에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웹 검색 결과나 뉴스는 잘못된 정보를 확대 재생산하기도 하고, 최근 챗GPT 등 생성형 AI가 틀린 답을 주기도 하니 반드시 공식자료를 확인한다. 다른 지자체 보건소 동일 업무 담당자에게 물어보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쉬울 때도 있었다. 보건소에서 근무하면서 전국 다양한 지역의 보건소 직원과 통화를 했는데, 묻기도 했고 알려드리기도 했다.


모호한 법령에 대한 해설 문의 등으로 식약처와 같은 국가기관 담당자와 꼭 통화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전직 국가직 공무원으로서 팁을 드리겠다. 먼저 조직도를 검색해서 소관 업무를 잘 읽어보고 적절한 담당자 ‘주무관’, ‘실무관’을 찾아 전화를 건다. 혹여 ‘과장’, ‘사무관’에게 전화를 걸면 회의 중이라 전화를 못 받을 수도 있고 통화가 되더라도 ‘담당자에게 메모를 남기겠다.’에서 끝날 수 있다. 간혹 사무관님이 법령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시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두 번째, 담당자와 통화가 된 순간 미사여구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야 한다. “바쁘신데 죄송하지만”은 불필요하며 OOO 관련하여 문의 사항이 있다고 목적을 밝힌다. 상대방이 과와 이름을 말했다면 똑같이 OOO보건소 OOO 이라고만 자신을 소개하면 된다. 담당자가 좀 더 검토가 필요하다고 하면, 민원을 처리해야 하니 막연히 기다릴 수 없음을 알리면서 적절한 선에서 데드라인을 협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집중근무 시간제’를 운영하는 부서도 있다. 주로 심사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시행하는 제도로, 이 시간대는 부서 대표전화만 운영된다. 쏟아지는 전화를 받느라 업무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자 직원 보호를 위해 시행된 조치이므로, 이때는 좀 답답하더라도 통화를 피하는 것이 좋다. 이 경우 담당자와 통화가 되었을 때 메일 주소를 받아서 추후 메일로 소통하겠다고 하는 것이 좋다.

식약처 산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에서 운영하는 집중근무 시간제 안내문

식약처와 보건소를 모두 근무하고 나서야 나는 이제 어느 쪽이든 각자의 힘든 점이 있음을 이해한다. 식약처 생활을 돌아봤을 때 지금 내가 가장 후회하는 것은 그 OO 앞에서 울지 말고 부당하다고 따질 걸, 그만두기 전에 저축해 놓은 연가 다 쓸 걸 이런 거 보다 '통화할 때 상대방에게 좀 더 친절할 걸'이다.


비욘 나티코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에는 이런 글이 있다.

만나는 사람마다 네가 모르는 전투를 치르고 있다.
친절하라, 그 어느 때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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