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이 이관되는 이유
본래 ‘핑퐁’은 탁구와 같은 말로, ‘민원 핑퐁’이라고 하면 국가기관 간에 탁구 치듯 민원을 서로 튕겨낸다는 뜻이다. 공무원은 이것을 ‘민원 이관’이라고 말하지만, 자신의 민원이 그 소관부서가 계속 바뀌면서 처리가 지연된다면 민원인은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사실 민원을 타 기관으로 이송하는 것은 공무원에게도 부담이다. 내 경우, 이관 사유를 상세히 써서 이송하기도 했고, 이송할 부서의 담당자에게 미리 전화하기도 했다. 동일 민원이 반복적으로 이관되면 국민권익위에 의해 다부처 민원으로 지정되어 양쪽이 다 해당 민원에 답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민원 이관은 단순히 다른 부서에 일을 떠넘기는 행위가 아니다. 처음부터 민원의 소관 기관이 잘못 지정된 경우여서 재지정을 요청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런데 재지정된 기관이 또다시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민원의 재이관이 일어난다. 이 단계까지 가면 민원을 넣은 사람도, 재이관받은 기관의 담당자도 혈압이 오르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민원 이관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사례 1. 특정 화장품의 과대광고를 참을 수 없었던 A 씨. 판매사이트 url을 30개 가까이 수집하여 식약처로 신고했다. 해당 민원은 30개의 지자체 보건소로 다부처 지정되어 이관되었다. 여러 보건소로 힘들게 민원을 이송하느니 그냥 식약처가 처리하면 안 되나. A 씨는 이렇게 외쳤을지도 모르겠다. “대체 식약처는 뭐 하는 거야?!”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화장품 판매업의 소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 화장품이든 그 용기에 기재된 글씨를 살펴보면 ‘화장품 책임판매업자’라는 단어가 보일 것이다. 이는 화장품 품질관리를 책임지고 화장품을 유통하는 업자로, 지방식약청의 ‘화장품 책임판매업’ 허가받아야 한다. 통신판매업자는 ‘화장품 책임판매업자’로부터 화장품을 공급받아 판매할 수 있으며 별도의 식약처나 보건소의 허가가 필요하지 않다. 편의상 그들을 ‘화장품 단순판매업자’라고 칭한다.
A 씨가 신고한 30개의 판매사이트를 운영하는 판매자들은 모두 ‘화장품 단순판매업자’였고, 이들의 사업자 등록 주소지에 따라 각각의 보건소로 민원이 이관되었다. 같은 화장품 광고임에도 이런 사유로 민원이 이관될 수 있다. 식약처가 민원 이송만 하는 것은 아니다. 화장품 책임판매업자가 직접 운영하는 판매사이트의 광고는 관할 지방식약청에서 조치하며, 해외에서 유입된 사이트처럼 사업자의 국내 주소지가 확인되지 않는 경우는 식약처 본청에서 조치하고 있다.
사례 2. B 씨는 민원 제목에 ‘꼭 식약처 답변을 받고 싶습니다!’라고 쓰면서 보건소 답변은 받고 싶지 않다고 했다. 특정 판매자의 행위가 불법인 것 같은데 법령 해석이 어떻게 되는지 의견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 민원도 보건소로 이관되었다. 아마 민원인 B 씨도, 보건소 담당자도, 같은 생각을 했으리라. “제목을 이렇게까지 써도 이관되는구나.”
민원에 특정 업소에 대한 신고를 포함하면, 식약처에서 관리하는 업소가 아닌 경우 무조건 관할 보건소로 민원이 이관된다. 그러면 보건소에서 해당 업소의 위반 여부를 점검하고 필요시 조치하여 그 결과를 답변한다. 그 과정에서 보건소도 법령 해석에 대해 답변할 수 있다. 그럼에도, B 씨처럼 국가기관의 답변을 꼭 받고 싶다면 객관적으로 자신이 법에 대해 궁금한 사항을 문의하는 게 좋다.
사례 3. 몇 년 전 코로나 시국일 때, C 씨는 ‘코로나 백신 허가를 취소하라’, ‘백신 부작용 보상을 해달라’, ‘백신 패스가 있어야만 신청되는 공공 일자리 부당하다’는 민원을 넣었다. 이 모든 내용이 하나의 민원에 두서없이 섞인 채로 들어가 있어 질병관리청, 식약처와 자치구가 서로 민원을 이관하는 등 대혼란 상태에 빠졌다. C 씨가 쓴 글을 읽어보면 과도한 하소연성 표현으로 인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이 민원은 다부처 민원으로 지정되었고 3개 기관이 각각 답변해야 했다. C 씨는 어느 곳에서도 만족스러운 답변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당시 식약처 담당자로 답변했던 나에게 ‘매우 불만족’ 평가를 주셨으니 말이다. 다부처 민원으로 지정되면 본인 기관의 소관 사항에 대해서만 답변한다. 이 과정에서 어떤 질문들은 그 답이 누락될 수도 있다. 한 가지 민원에는, 너무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쓰지 말고 원하는 바를 명확히 기재해야 기관 간 이관의 늪에 빠지지 않는다.
신고 민원은 대부분 ‘국민신문고’ 홈페이지를 통해 접수되는데, 25년 9월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현재 서비스가 중단되었다. 복구 전까지 민원 신청은 해당 기관으로 직접 전화하거나 대체 창구를 활용할 수 있다. 식약처는 대체 창구로 ‘식의약 국민신문고’를 마련했으며, 각 지자체는 이미 국가기관과 구분된 자체 민원 창구를 가지고 있다. 서울특별시는 120 다산콜센터(02-120), 부산광역시는 바로콜센터(051-120), 경기도는 120 경기도콜센터(031-120)이며 그 외 다른 지자체도 운영하는 민원 창구가 있다.
이렇게 어떤 상황에도 연결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공무원들이 있으니 민원 이관에 너무 노여워하지 마시길. 소관이 다르거나 관할 구역이 달라 어쩔 수 없는 민원 이관도 있음을 양해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