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20주년 기념 발행물
나는 캐나다인과 국제결혼을 했다. 때는 바야흐로 2005년. 나는 25살, 남편은 27살이었다.
남편과 나는 참 많이 달랐다. 그는 캐나다에서 대자연을 누비며 자랐고, 나는 도시에서 학교, 학원, 도서관, 가끔 시내구경을 하며 자랐다. 그는 축구와 게임을 좋아했고, 나는 축구와 게임을 전혀 몰랐다. 그는 항상 소설을 읽었고, 나는 항상 비소설을 읽었다. 그는 건포도를 좋아했고, 나는 건포도를 빼내고 먹었다.
가족들도 참 많이 달랐다. 남편은 자유분방함, 모험정신, YOLO (You only live once. 인생은 한 번뿐)로 무장된 가족들 속에서 자랐다. 나는 한국에서도 가장 보수적이라는 영남지역에서 그에 걸맞은 전통과 문화를 지닌 가족들 속에서 자랐다.
우리의 상견례는 한국에서 결혼식 며칠 전에 이루어졌다. 시부모님과 여동생이 결혼식 참석차 한국으로 오셨고, 그때 엄마는 사돈을 처음 만나셨다. 시댁식구들은 남편과 나의 경기도 아파트에 머무르셨고, 엄마는 인사차 대구에서 우리 집으로 올라오셨다. 첫날은 밤이 늦어 대충 잠자리에 들었고, 인사는 다음날 제대로 하기로 했다.
아침이 밝았다. 엄마는 한복을 잘 차려입으시고 사돈을 만나기 위해 거실로 나오셨다. 그리고 엄마의 눈앞에는 잠옷 바람으로 둘러앉아 카드놀이를 하고 있는 사위와 사돈들이 있었다.
한복... 잠옷... 카드놀이...
엄마의 표정에는 당황함과 황당함이 섞여있었다. '동공지진'이 어떤 것인지 나는 내 눈으로 보았다. 그 당시 우리는 포커 같은 카드놀이를 항상 도박과 연관 지었다. 절대 건드리지도 말아야 할 물건이었다.
반면 캐나다에서는 아이들도 카드놀이를 많이 한다. 산수를 카드놀이로 배우고 학교에서도 권장한다. 게임의 종류도 무궁무진하다. 가족모임에서도 흔히들 한다.
남편은 그저 오랜만에 만난 가족이 좋았고, 가족들과 어릴 때부터 하던 것을 했을 뿐이었다. 한국에서 사돈이 얼마나 어려운 관계인지, 첫 만남이 얼마나 격식 있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이런 걸 '컬처쇼크'라고 부르던가...
일단 엄마와 나는 그들 옆에 뻘쭘히 앉아서 구경을 했다. 엄마는 심란해 보였다. 시댁식구들은 눈치를 보는 듯하더니 잠시 후 옷을 갈아입으러 방으로 들어갔다.
나와 남편이 왜 미리 조율하지 않았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우리도 어렸었고 몰랐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엄마가 한복을 입을 지도, 시댁식구들이 한국으로 치면 화투판을 벌이고 있을 지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렇게 남편과 나는 자라온 환경, 문화, 언어, 생각이 많이 달랐지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맞추고, 아끼며 꽤 오랜 세월을 별 탈 없이 잘 살아왔다.
이 연재물은 나의 친애하는 남편에게 헌정하는 '결혼 20주년 기념 발행물'이다. 글을 올리기 전에 읽고 싶은지 물었더니 남편은 '차라리 모르고 싶다'며 그럴 필요는 없단다. 본인 이야기를 안 쓰면 좋겠지만 쓰고 싶다면 말릴 생각은 없다는 입장이다. 남편에게 헌정하는 글을 남편이 읽지 않는다는 아이러니가 생겼지만 허락은 받았으니 그걸로 됐다. 최소한 줄거리는 가르쳐줄 생각이다.
이 공간은 남편과 나의 자잘한 이야기들로 꾸려볼 계획이다. 남편에 대한 '예찬'일 수도 '돌려까기'일 수도 있다. 소소한 즐거움과 깨달음이 있을지 없을지는 써봐야 알 것 같다.
개봉박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