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겨울, 붉은색 온기
황금빛 들판이 텅 비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종점 상회 마당에는 또 다른 산이 생겼다. 바로 '배추 산'이었다.
장수동의 김장은 전쟁이었다. 백 포기, 아니 이백 포기였던가. 절인 배추가 마당 가득 산처럼 쌓여 있고, 커다란 빨간 고무 대야에는 붉은 양념이 용암처럼 넘실거렸다.
"야, 비켜라! 걸리적거린다!"
마당은 아수라장이었다. 할머니는 김장 총사령관이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빨간 고무장갑을 낀 채, 고춧가루가 더 들어가네 마네, 젓갈이 짜네 싱겁네 하며 현장을 지휘하셨다. 둘째 숙모는 (버스 안내양 시절의 체력을 살려) 배추를 나르고 버무리느라 허리 펼 새가 없었고, 동네 아주머니들까지 품앗이로 와서 수다를 떨며 손을 놀렸다.
나와 똥장군은 그 틈바구니에서 눈치껏 서성거렸다. 우리의 목표는 단 하나, 부엌 가마솥에서 펄펄 끓고 있는 '돼지고기'였다.
"할머니, 고기 언제 익어요?" "요 녀석들아, 일도 안 한 놈들이 고기 타령은. 저 가서 무나 좀 날라라."
할머니의 호통에 우리는 시늉으로 무 몇 개를 나르는 척했다. 공기 중에는 매운 고춧가루 냄새와 알싸한 마늘 냄새가 진동해서, 숨만 쉬어도 재채기가 나왔다. "에취! 야, 똥장군. 너 코 나왔어." "너도 나왔거든. 에취!"
드디어 기다리던 순간이 왔다. "자, 새참 먹고 하자!"
할머니의 외침과 함께 가마솥뚜껑이 열렸다. 하얀 김이 폭발하듯 솟아오르고, 구수한 고기 냄새가 마늘 냄새를 덮어버렸다. 잘 삶아진 돼지고기 수육이 도마 위에서 숭덩숭덩 썰렸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비계와 살코기의 완벽한 조화.
우리는 평상 귀퉁이에 제비 새끼처럼 입을 벌리고 앉았다. 할머니는 노란 배추 속잎(고갱이)을 하나 뜯어, 그 위에 돼지고기 한 점을 올리고 붉은 김치 속을 듬뿍 얹으셨다.
"아, 해라."
할머니의 손이 내 입으로 들어왔다. 입을 찢어져라 벌리고 받아먹었다.
'아삭.' 달큰하고 고소한 배추가 씹히자마자, 매콤한 양념 맛이 입안을 강타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부드러운 비계의 기름진 맛이 혀를 감쌌다. 뜨겁고, 맵고, 시원하고, 고소한 맛. 씹을 틈도 없이 목구멍으로 꿀떡 넘어갔다.
"음! 맛있다!" 내가 엄지를 치켜세우자, 옆에 있던 똥장군도 참새처럼 입을 벌렸다. "할머니, 저도요! 저도요!" "오냐, 많이들 먹어라. 똥장군 입 찢어지겠다."
우리는 배가 터지도록 고기를 받아먹었다. 입 주변은 고춧가루 범벅이 되어 붉게 물들었고, 매운맛에 "하아, 하아" 입김을 불면서도 젓가락을 놓을 수 없었다.
"이게 바로 보약이다, 보약." 셋째 삼촌도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켜고 수육을 입에 넣으며 행복해했다. 마당 가득한 빨간 대야들, 하얀 배추, 그리고 웃음소리.
김장이 끝날 무렵, 마당 한구석에는 땅을 파고 묻은 장독대들이 줄을 지었다. 그 독 안에는 장수동의 겨울을 책임질 붉은 보물들이 가득 채워졌다.
"아, 배불러서 못 걷겠다." 나와 똥장군은 배를 두드리며 마루에 벌러덩 누웠다. 하늘은 높고 파랬다. 코끝에는 여전히 매운 고춧가루 냄새가 남아 있었지만, 배 속 가득한 고기 냄새 덕분에 세상 그 무엇도 부럽지 않은 오후였다.
* 이미지 출처 : Created by 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