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4. 하얀 세상과 토끼몰이 대작전

제3부: 겨울, 붉은색 온기

by Napolia

장수동의 겨울 아침은 소리 없이 밝았다. 문을 열자마자 눈이 시려서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밤새 내린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논두렁도, 밭두렁도, 버스 종점의 흙바닥도 모두 사라지고, 오로지 순백의 솜이불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버스조차 끊긴 고요한 아침, 그 적막을 깨는 건 똥장군의 목소리였다.
"야! 설(서울)뜨기! 나와라!"
마당으로 나가보니 녀석의 행색이 가관이었다. 바지 위에 비료 포대를 잘라 만든 각반을 차고, 털모자를 눈썹까지 눌러쓴 모습이 영락없는 산적이었다.
"눈 왔다. 토끼 잡으러 가자."
그때 안채에서 셋째 삼촌이 장화를 신고 나왔다. 삼촌의 손에는 굵직한 몽둥이가, 어깨에는 낡은 공기총(혹은 그냥 폼으로 멘 빈총)이 들려 있었다. "조카들, 준비됐냐? 오늘 저녁은 토끼탕이다!"
우리의 사냥 파트너는 동네 똥개 '백구'와 '누렁이'였다. 녀석들도 신이 났는지 눈밭을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꼬리를 흔들었다.

우리는 삼촌을 대장으로 삼아 뒷산으로 향했다. 눈이 무릎까지 푹푹 빠졌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뽀드득, 뽀드득' 하는 기분 좋은 소리가 났다. 차가운 눈이 장화 속으로 들어올 때마다 "으악, 차가워!" 하고 비명을 질렀지만, 입가에는 하얀 입김과 함께 웃음이 번졌다.
"쉿. 조용히 해라. 토끼란 놈은 귀가 밝아서."
삼촌이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댔다. 우리는 숨소리를 죽이고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을 찾았다. Y자 모양의 발자국. 앞발 두 개가 뒤에 찍히고, 뒷발 두 개가 앞에 찍힌 토끼 발자국이었다.
"찾았다! 저기다!"
똥장군이 소리친 곳을 보니, 덤불 숲 사이로 회색 털 뭉치가 튀어 나갔다. 산토끼였다. "몰아! 위쪽으로 몰지 말고 아래쪽으로 몰아!" 삼촌이 고함을 질렀다. "토끼는 앞다리가 짧아서 오르막은 잘 타도 내리막은 쥐약이야! 아래로 몰아!"
우리는 "와아아!" 함성을 지르며 토끼를 쫓았다. 백구와 누렁이가 컹컹 짖으며 선두에 섰고, 그 뒤를 똥장군과 내가 굴러가듯 뛰었다. 토끼는 깡충깡충 잘도 도망갔다. 하얀 눈밭 위에서 회색 토끼는 마치 튕겨 나가는 고무공 같았다.
"거기 서! 잡히면 죽는다!"
나는 의욕이 앞서 덤불을 뛰어넘으려다 발이 꼬여 눈밭에 철퍼덕 엎어졌다. 차가운 눈이 콧구멍과 입안으로 훅 들어왔다. 일어나려는데 옆에서 똥장군도 "으악!" 하며 내 위로 겹쳐 넘어졌다.
우리는 눈사람처럼 뒤엉켜 비탈길을 데굴데굴 굴렀다. 하늘이 빙글빙글 돌고, 눈가루가 폭죽처럼 흩날렸다. 굴러떨어진 곳은 눈이 수북이 쌓인 골짜기였다.
"아, 춥다, 추워!" 우리는 눈투성이가 된 서로의 꼴을 보며 배를 잡고 깔깔거렸다. 토끼는 이미 저 멀리 도망가 버린 뒤였다.

"이 녀석들, 토끼 잡으랬더니 눈사람이 됐네."
뒤따라온 셋째 삼촌이 혀를 차며 손을 내밀었다. 삼촌의 손은 크고 따뜻했다. 비록 토끼는 놓쳤지만, 삼촌의 주머니에서 나온 군고구마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산 중턱 바위에 걸터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구마를 반으로 갈랐다. 눈 덮인 장수동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하얀 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풍경은 마치 동화책 그림 같았다.
"야, 토끼는 못 잡았어도 고구마가 더 맛있다." 똥장군이 입가에 검댕을 묻히며 말했다. "그래, 내년엔 꼭 잡자."
우리는 뜨거운 고구마를 호호 불며 붉어진 볼을 식혔다. 멀리서 버스가 헛바퀴를 돌며 힘겹게 종점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눈 내린 장수동의 하루가, 아이들의 빨간 볼처럼 발그레하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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