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잡는 사랑 대신, 방향을 내주는 사랑을 생각한다
오늘 아침 눈을 뜨자마자,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곳에 다녀왔습니다. 눈치 빠르신 분들은 예상되시지요. 바로 치과입니다. 분명 치료를 받고 있는데도, 인조인간이라도 된 느낌을 받는 곳.
치과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코끝을 찔렀습니다.
“윙—” 하는 기계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손끝에 괜히 힘이 들어가더라고요.
입을 크게 벌린 채로 누워 있으니, 내가 잠깐 ‘멈춰진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두 해 전부터 어딘지 모르게 물만 마셔도 불편해서 찾아간 그곳. 원인은 사랑니라네요. 온갖 상상을 하며 아픈 곳을 설명했지만, 백 프로 빗나갔습니다. 딱 하나 조그맣게 나 있던 사랑니가 옆자리에 있는 녀석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바짝 붙어 있었고… 그 자리가 썩어버렸답니다. 덕분에 사랑니에 더해서 옆자리 녀석까지 함께 저 세상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서로의 숨통을 꽉 붙잡고 놓지 못하는 일이 되면, 내 조그만 입속의 사랑니처럼 함께 쓰러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요. 사랑에도 개인을 존중해 주는 거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함께 사는 가족이라면 더더 욱요. 가까울수록 예의를 지켜야 오래오래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랑니의 모양이 여러 가지이듯, 사람들의 사랑하는 모습도 다양하겠지요. 이 녀석에게는 분리불안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옆자리 녀석을 붙잡고 놓지 못한 걸 보면요. 지금이라도 제 사랑을 돌아봐야겠습니다.
그 생각이 나를 입속에서, 관계로, 그리고 내가 걸어온 길로 데려갔습니다.
지금까지의 길이 진흙탕길이었다면, 먼지는 풀풀 날리더라도 조금은 마른 푹신한 흙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속도가 빠른 고속도로 말고, 강이나 호수가 보이는 길. 길가에 잔디가 아니어도 잡초가 많아 그 위에 앉으면 엉덩이가 아프지 않고 살짝 푹신한 그런 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끔은 흙 묻은 엉덩이를 서로 털어 줄 수 있도록요.
사랑니를 옆의 짝꿍과 함께 보내면서 생각이 옆으로 많이 흘렀네요.
그러면서 사랑니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한 번 더 배워봤습니다.
사랑은 붙잡는 힘이 아니라, 숨 쉴 자리를 남겨주는 힘일지도 모릅니다.
숨 쉴 자리만큼, 혼자 설 자리도 남겨두는 연습을 해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