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키우며 가족을 배운다.
식물을 사랑한다. 그것도 크고 잘 자란 식물보다 작은 포트에 담겨서, 내 손으로 물을 주고 영양제를 제때 챙기고 햇빛을 잘 받을 수 있게 보살펴 주는 일이 즐겁기 때문이다.
두 해 전, 잎이 작고 줄기도 연약한 포트 올리브나무를 하나 구입했다. 식물을 새로 들일 때마다 남편과 아이들과 전쟁을 치른다. 나는 “소원이야, 소원이야”를 외치며 읍소를 해야 겨우 하나를 들일 수 있다. 커서도 아니고 비싸서도 아니다. 무엇이 되었든 화분에 심고 보는 내 성격 때문일 것이다.
파프리카를 손질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저 많은 씨앗이 너무 아깝고 안타깝다는 것. 그래서 씨앗을 화분에 심었는데, 싹을 틔우고 자라서 꽃을 피우더니 열매까지 맺혔었다. 그 열매가 얼마나 작고 귀엽고 예뻤는지 지금도 생각만 하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때부터 우리 집 화분들은 늘 ‘조금 과한 마음’의 증거가 됐다.
하지만 같은 파프리카여도, 같은 토마토여도 집에서 키운 건 못 먹는 것이라는 아이들의 생각 때문에 먹어볼 용기조차 못 내고 마음속에만 열매를 간직한 채 버려지기 일쑤다. 집에서 나오는 씨앗은 뭐든 한 번씩 심어 보지만, 번번이 비슷한 결과를 맞는다. 그래도 꽃을 피우거나 열매를 맺으면 같이 기뻐해주고 신기하게 여겨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정도니, 가족들은 늘 내게 유난스럽다고 말한다. 아이들에게는 늘 뭔가 일을 벌인다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은 것 같다.
그래서 식물을 들일 때마다 반대부터 시작된다. 남편은 늘 “뱀 나오겠어”라고 하고, 딸은 “절대로 드실 생각은 하지도 마세요”라고 한다. 아들은 실수로 식물이 꺾일 때마다 “아유, 드디어 하나 보냈네”를 외친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고 싶은 식물이 생기면 아들의 응원을 구해보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은근히 내 식물 사랑을 곁에서 지켜준다.
올리브나무를 살 때도 똑같은 반응이었다. 작은 화단이 열대 우림의 정글이라도 되는 듯 말이다. 원래 크게 손이 안 가도 잘 자라는 나무라서 그런지, 올리브는 두 해를 잘 버텨내고 잘 자라 주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뿌듯하다.
그런데 문제는 햇빛이다. 햇빛을 많이 보아야 하는 나무인데 유리창을 통해서만 빛을 흡수하다 보니, 나뭇가지가 위로 자라지 않고 옆으로 자라고 있다. 아직은 큰 나무가 아니니 그렇다 해도, 다음 해에는 어떻게 해줘야 할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벽걸이를 해서 화분을 눕혀 놔야 할 것 같은 모양새다. 그렇게 하면 다시 반듯하게 설 수 있을까. 속으로 웃어 보며 누워 자라는 화분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본다. 올리브 가지가 옆으로 누워가는 걸 볼 때마다, 내 마음도 같이 기울었다.
가족의 일도 어쩐지 비슷한 것 같다. 아이의 아픈 곳을 쓰다듬고 어루만져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골고루 사랑을 쏟아 준다면 어떤 환경에서도 잘 버텨내는 사람으로 자라지 않을까. 식물을 키우며 자유롭게 자라게 두되, 한쪽으로 몰리면 다른 쪽으로 살짝 기울여 곧게 자라게 해 주는 마음을 배웠던 것 같다.
“뱀 나오겠어.”
그 말을 들으며 웃다가, 나는 올리브를 한 번 더 바라본다. 우리 집 정글은 오늘도 무사히, 조용히 자라는 중이다.
그래서 오늘도 올리브 화분을 살짝 돌려놓는다.
햇빛이 드는 쪽으로, 아주 조금만.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은 대단한 게 아니라 이런 작은 각도라는 걸, 올리브가 가르쳐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