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전하는 봄

코끝에 남은 계절의 냄새

by 멈춤의 일기장

아침 기운이 미묘하게 달라졌음을 느낀다.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해 괜히 우울해 보이고, 비는 오지 않는데 공기는 축축하다.
빈속에 커피부터 몇 모금 마시고 나니, 마음속에 내려앉았던 우울함이 잠시 옅어진다.


요 며칠 어깨가 으슬으슬했다.
집 거실도, 카페 실내도 갑자기 왜 이렇게 춥지 싶어 외투를 어깨에 걸치곤 했는데, 오늘 문득 그 이유를 깨달았다.
이미 입춘이 지나 있었던 것이다.


차가운 바람 끝에 묻어나는 봄기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설명하기 어려운 봄의 냄새.
그래서 실내가 그렇게 낯설게 느껴졌던 걸까.


나뭇가지 끝에 달린 봉우리들에는 물이 오르고 있고,
아파트 고층임에도 어느 구석엔가 거미가 집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정리 욕구가 솟아올랐다.


우선 빨래를 돌리고, 냉장고 속 묵은 것들을 정리해 버렸다.
집 안 환기를 위해 창문을 활짝 열었다.
묵은 때가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바람은 아직 겨울을 완전히 놓지 못한 듯했다.
금세 추워져 창문을 다시 닫는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지만, 바람은 아직 확연한 봄은 아니라는 말을 남기고 지나간다.
그러면서도 왜 봄 내음을 풍기고 가는 걸까.


봄이 오면 할 일들을 미리 정리해 두어야겠다.
꽃이 피는 순서대로 마음속 일정표를 만들어 두었다가, 시간이 날 때마다 꽃구경을 가야겠다.


작년 봄, 가장 마음에 남았던 꽃은 경주 불국사 앞마당의 겹벚꽃이었다.
그 분홍빛이 너무도 아름다워, 감동의 눈물마저 분홍색으로 흐르는 것 같았다.
눈이 분홍빛으로 짓물렀던 기억.
다시 간다면 그 황홀함을 또다시 느낄 수 있을까.
그러길 바라본다.


요즘 아들은 꽃게와 사랑에 빠졌다.
비린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아이였는데,
이제는 아이라고 부르기엔 어색한 나이가 되었나 보다.
라면에도 꽃게, 된장찌개에도 꽃게, 이제는 꽃게탕 이야기를 한다.


새우와 모시조개, 미나리와 쑥갓을 사다가 꽃게탕을 끓여 줘야겠다.
냉이나 쑥이 있으면 그것도 함께 넣어 볼까.
얼마 전 마트에서 본 달래가 문득 떠올라, 달래간장을 만들어 밥에 슥슥 비벼 먹고 싶은 마음도 든다.


나는 한 살을 더 먹고 새 봄을 맞이하지만, 달라진 일상은 없다.
세월은 그런 건가 보다.


그저 살아가는 것,

눈을 뜨고 새 아침을 맞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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