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은 아이보다 한 걸음 뒤에서 온다.
누구라도 좋았다.
단 5분이라도 사람의 말을 하고 싶었던 어느날.
자기야.
무슨일 있으면 꼭 연락해.
찰떡이 분유 먹이고 기저귀 갈아줘야 해.
잊지마!!
아침부터 혼자 하는 외출에 요란스럽다.
특별한 외출같지만,
내 요란스런 발걸음의 행선지는 병원이다.
임신전부터 호전되기 시작한 갑상선 질환은
출산과 함께 완치 판정을 받았다.
담당 선생님께 복덩이라는 축하 인사도 받고
몸무게도 출산 전으로 거의 돌아와서
옷 입는 재미도 돌아왔다.
그때,
애 엄마의 레이더에만 포착되는 대상이 눈에 들어왔다.
아기다.
아빠의 품에 안긴 아기를 본 순간
전과의 내가 아닌 또 다른 내가 발을 내딛는다.
안녕하세요?
어머. 귀여워라.
아기 몇 개월이예요?
저도 8개월 아기가 있어요.
우리 아기랑 비슷하네요.
어디서 나온 낯선 용기였을까?
정신을 차렸을땐
인사까지 마치고 뒤돌아선 후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경쾌했다.
자기야~
내가 찰떡이 친구 만들어줬어~~~
옆동 아기인데 개월수도 비슷해.
잘된 것 같아.
아빠가 아닌 엄마였다면
망설임 없이 전화번호를 물었을
나의 용기가 이루어낸 큰 쾌거였다.
찰떡이 친구?
아니면 나?
서툰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다 우연히 마주친
그 아기, 그 엄마.
내 얼굴을 보는 듯,
육아의 무게에 짓눌려 지쳐 보이던 그 엄마가
나 같아서 짠했다.
나 또한 아기와의 하루에 지쳐
몸을 끌다시피 보낸 날들이 하루 이틀이 아니지 않았던가.
엄마의 외로움은 늘 아이의 행복보다
한 걸음 뒤에서 조용히 찾아 오는 법이니까.
그렇게 우린 유모차를 밀며
오랜 사이처럼 쉴 새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뭔가에 목이 마른 사람처럼 쉼 없이 말이다.
우린 금세 가까워졌다.
출산 전엔 나와 코드가 맞는 친구를 찾았다면
출산 후엔 아기 개월수가 맞으면 친구가 되었다.
지금도 그렇다.
아기라는 매개체 하나면 친구가 되기 충분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대충은 헤아릴 수 있으니 말이다.
비 오는 날이었다.
혼자 아기를 들쳐 안고
답답한 마음에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던 그 날.
그 날의 외로움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눈만 말똥거리던 아기는
뒤집고 버둥대고, 기고 앉으려고 했다.
손에 잡는 건 뭐든 입에 넣으려 했다.
하루 종일 아기와 씨름하며
“엄마. 맘마. 빠빠”
내가 내뱉는 단어는
입에 배고도 남았다.
사람의 말, 사람과의 대화가 그리워
우울함에 눈물이 떨어지던 순간.
띠리링─
전화벨이 울렸다.
새로 사귄 육아 동지였다.
그날, 우리 집에 온 그 친구와
한낮에 긴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숨통이 트였다.
서로의 집을 오가며,
혼자가 아닌 둘이서 같이 육아를 한다는 건
상상도 못 한 큰 위로였다.
우리가 서로의 하루를 주고 받는 순간,
숨이 겨우 돌아왔다.
아파트 옆동 친구는
턱까지 찬 물에서 간신히 숨을 쉬며 허우적대는 나에게, 구명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