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나

by 이진무

그녀는 결혼하겠다고 한다.

나는 몸을 돌려 창문을 바라보았다.

어깨를 늘어뜨리고 우는 사내가 있다.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이다.


밝게 웃으며 축하해 줘야 할 나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왜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나를 드러내지 못하고

네, 네 고개만 끄덕이다 돌아섰을까!


그녀와 함께했던 추억을 따라

오랫동안 도시를 걸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흙 대신 아스팔트가 깔리고

나무 대신 콘크리트가

하늘 끝까지 치솟아 햇빛을 가린다.


나는 기가 꺾여 어깨를 늘어뜨리고

마냥 걷는다.

그러나 이 길을 끝까지 걸어본들

그녀를 다시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녀를 보내지 말아야 했다.

사랑한다고 한 마디의 말도 못 하고

일본 인형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나는 내가 아니다.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본다.

낯익은 남자가 나를 보고 있다.

핏기가 사라진 얼굴로 끝없이 탄식하고 있다.


나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

그에게 손가락질한다.


사랑을 빼앗긴 바보 같은 너는 도대체 누구냐?




연인 거리.png


쓸쓸한 사랑 얘기를 하나 하죠. 아주 소심해서 감정 표현을 잘 못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아, 감정 표현을 잘 못 하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네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정말 사랑했어요. 그런데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제 형편이 너무 좋지 않았거든요.


그녀는 제게 너무 고귀한 사람이었어요.

그런 그녀를 제 어려운 형편 속으로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게 사랑이라고, 그게 배려라고 착각했죠.

그렇게 머뭇거리고, 망설이고, 차일피일 미루다… 말없이 군대에 갔습니다.


제대하고 돌아왔을 때, 그녀는 이미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어있었습니다.

그제야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가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다 지난 일이 돼버린걸요.


얼마 후, 우연히 그녀를 다시 만났습니다. 저는 담담한 척, 웃으며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빨리 결혼했어?”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네가 아무 말도 없이 군대 가버려서… 배신감 느꼈어.”


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했습니다.

“만약 네가 그때 사랑한다고 말했으면, 나 받아들였을 거야.”


심장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는 서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헤어졌습니다.

환하게 웃으며, 잘 살라고, 행복하게 지내라고 인사했죠.

하지만 돌아서는 순간, 속이 타들어 갔습니다.


만약 또다시 기회가 온다면, 저는 일단 고백부터 하고 볼 겁니다.

집안 사정이 어떻든, 형편이 어떻든, 그건 제가 혼자 판단할 문제가 아니었어요.

그녀에게도 선택할 권리가 있었던 거죠.


저는 제 마음대로, 혼자서, 그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그녀의 선택권마저 빼앗아버린 겁니다.

그게 얼마나 오만한 일이었는지,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세상에는 이런 식으로 놓치는 사랑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말하지 못해서, 용기가 없어서, 때가 아니라고, 조건이 안 된다고, 아직은 이르다고 생각하다가,

그렇게 영영 놓쳐버리는 사랑들.


혹시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계신가요? 그런데 말하지 못하고 계신가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말하세요. 후회는 정말, 정말 쓰라립니다.


위 시는 아쉬운 마음에 써 보았습니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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