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이 온다.
그의 등허리에 풀잎이 벌러덩 드러눕는다.
꽃잎이 짓밟힌다.
벌건 대낮, 어둡지만 분명 밤은 아니다.
슬퍼하는 사람은 하늘을 보지 않는다.
기억은 발바닥에 달라붙은 그림자처럼
검은 그늘이 된다.
고인은 잠든 밤 찾아온 침묵에 눌려
영문도 모른 채 땅에 누웠다.
모여든 사람들은 평안한 죽음이라고 말하지만
입을 벌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잘 다져진 묘지를 쓰다듬으며
으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처럼
한바탕 통곡을 했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 내 입을 막았다.
침묵은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며
나지막하게 “쉿!” 하고 속삭였다.
그 소리는 내 목구멍에 박혀
성대를 자근자근 저민다.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침묵은
피처럼 빨간 입술로 내 입을 틀어막았다.
나는 반항하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는 조용히 잊힌 사람이 되었다.
이 시는 침묵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둘 중 무엇이 먼저인지, 나는 아직 확신하지 못합니다.
죽음이 침묵을 낳는 것인지, 아니면 침묵이 결국 죽음을 불러오는 것인지.
여기서 말하는 죽음은 꼭 육체의 소멸만은 아닙니다.
사람일 수도 있고, 한때 믿었던 신념이나 정의, 끝까지 붙들고 싶었던 꿈과 이상일 수도 있습니다.
그 어떤 것도 침묵과는 상극이란 생각이 듭니다.
살다 보면 말하지 않는 것.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참고, 삼키고, 미루다 보면 그 말들은 가슴속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입니다.
그것들이 오래 쌓이면 부패하고 썩은 내를 풍깁니다.
어느 순간 주변 사람들이 코를 막고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침묵하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요.
날카로운 말이 돌아올까, 두려워서일까요?
끝을 알 수 없는 고독이 무서워서일까요.
아니면 사람들 사이를 흐르는 차갑고 설명할 수 없는 냉기 때문일까요?
분명한 건 침묵은 결국 죽음으로, 그리고 망각으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가끔은 정말, 아무 계산 없이 속 시원하게 말하고 싶어집니다.
말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질지라도,
침묵 속에서 서서히 썩어가는 것보다는 나을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