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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웃었습니다

— 이유 없는 웃음에 대하여

by 박세신

1. 웃음의 이유를 잃은 날들


요즘 나는 언제 웃는지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웃기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웃습니다.
누가 재밌는 말을 해서도 아니고,
행복해서 웃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그게 제 표정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힘든 말을 들을 때도, 마음이 복잡할 때도,
습관처럼 웃고 있습니다.


어쩌면 오래 버티다 보니
그렇게 웃는 게 몸에 밴 것 같습니다.

혼자 있을 때는 무표정입니다.
표정이 차분하다 못해 조금은 비어 있는 얼굴인것 같은데,
누군가를 마주하면 자연스레 웃습니다.
억지로 짓는 것도 아닌데,
그 순간만큼은 웃는 게 더 자연스럽습니다.


2. 웃는다는 건, 나를 지키는 일


예전에는 그런 내가 이상했습니다.
‘왜 저 사람의 말에 그냥 웃고 있지?’
‘나답게 반응한다는 게 뭘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죠.


그런데 이제는 알겠습니다.

그 웃음은 타인을 위한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방어이자 평화의 표현이었다는 걸요.


내가 그 상황을 통제할 수 없을 때,
감정이 복잡하게 얽힐 때,
저는 그냥 웃습니다.
그 웃음이 나를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그건 ‘괜찮은 척’이 아니라,

‘이 상황에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겠다’는 마음의 습관이었습니다.

웃음은 포장이 아니라 중심을 지키는 표정이었습니다.


3. 웃음은 나의 평온한 자세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그거 가식 아니야?”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인생은 웃을 일보다 웃지 못할 일이 훨씬 많은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웃을 일이 없어도 웃는 쪽을 선택합니다.


누군가를 안심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표정이 내 마음을 덜 무겁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웃음 덕분에 하루를 조금 더 가볍게 넘깁니다.
그 표정 하나가 내 일상을 부드럽게 바꿉니다.

웃는다는 건 결국 세상을 대하는 나의 자세입니다.
웃음은 사건이 아니라 태도고,
상황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나의 고요한 선택입니다.


4. 그럼에도 웃었습니다


어쩌면 나는 웃음으로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웃는 게 나답다고 믿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이 기대하는 ‘밝음’이 아니라,
내가 나를 지키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으로서의 웃음.

그건 ‘참는 얼굴’이 아니라 ‘살아가는 얼굴’입니다.


저는 오늘도 그럼에도 웃었습니다.
삶이 나를 흔들어도,
그 흔들림 속에서도 나로 남기 위해.


웃는다는 건, 상황에 진 게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은 표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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