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 사이로 스며든 빛이 천천히 방 안을 물들였다.
먼지 입자들이 공중에서 떠다니며 그 빛을 반사했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아침이었다.
그는 눈을 떴다.
천장의 균열 자국이 한 줄기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한참을 그대로 바라보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침대 위엔 베개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그의 머리 밑에, 다른 하나는 손끝이 닿지 않는 자리에 있었다.
그는 그 베개를 바라보다 손으로 다가가 살짝 눌렀다.
오래전에 빠져나간 온기의 자리를, 여전히 기억하듯이.
창문을 열자 찬 공기가 밀려들었다.
커튼이 흔들리고, 창틀 사이로 먼지가 날렸다.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공기의 냄새가 조금 달랐다.
겨울이 시작되는 냄새였다.
그녀는 이 냄새를 싫어했다.
이불속에 파묻히며 “아직 이른 겨울은 차갑다”라고 말하던 목소리가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렸다.
그는 부엌으로 걸었다.
싱크대 위엔 유리컵 두 개가 있었다.
그중 하나에는 미세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녀가 즐겨 마시던 커피의 흔적이었다.
그는 그 컵을 들어 물을 채웠다.
빛이 유리 표면을 통과하며,
그녀의 손끝처럼 투명한 그림자가 바닥에 드리워졌다.
식탁 위에 오래된 식탁보가 놓여 있었다.
그녀가 고집스럽게 깔던 그 무늬였다.
세탁 후에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 하나가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그 얼룩을 천천히 문질렀다.
그 질감은 섬세했고, 이상할 만큼 따뜻했다.
“좋은 아침이야.”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무 짧고, 너무 명확했다.
그는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컵을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소리가 울렸다.
그 여운 속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는 의자에 앉아 아무 말 없이 커피를 마셨다.
입안에 퍼지는 쓴맛이 유난히 깊게 느껴졌다.
그녀가 좋아하던 로스팅이었다.
향이 코끝을 스칠 때마다,
그의 눈썹 사이가 미세하게 떨렸다.
빛은 점점 강해지고, 방 안의 그림자가 짧아졌다.
그는 천천히 컵을 내려놓았다.
컵의 가장자리에 남은 커피 자국이
그녀의 입술 자국과 겹쳐졌다.
그는 그 흔적을 닦지 않았다.
햇살이 건물 외벽에 부딪혀 방 안으로 번졌다.
그는 외투를 걸치고 문을 열었다.
현관 앞 신발장엔 두 켤레의 신발이 나란히 있었다.
그녀의 것은 반쯤 먼지가 쌓여 있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그 신발을 피해서 지나갔다.
거리엔 냄새가 가득했다.
구운 빵, 담배, 낡은 나무 벤치, 먼지.
그녀가 좋아하던 냄새와 싫어하던 냄새가 뒤섞였다.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햇빛은 눈부셨고, 그는 잠시 눈을 찡그렸다.
그녀와 자주 걸었던 골목이었다.
가로수 가지에는 남은 잎이 몇 장뿐이었다.
그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잎 하나가 떨어졌다.
그녀는 이 소리를 좋아했다.
낙엽이 떨어질 때마다 “소리가 마음을 닦아준다”라고 했다.
그는 오래된 빵집 앞에 멈췄다.
진열대엔 갓 구운 식빵이 쌓여 있었다.
문을 열자 구수한 향이 밀려왔다.
그는 하나를 샀다.
포장지를 감싸던 김이 손끝을 적셨다.
그 온도는 낯설 정도로 따뜻했다.
그는 골목 끝 벤치에 앉았다.
한 입 베어 물자, 속살의 온기가 입안에서 퍼졌다.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녀가 웃으며 빵을 뜯던 모습이 떠올랐다.
햇살 속에서 머리카락이 반투명하게 빛나던 장면.
그녀는 언제나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빵이 이렇게 따뜻하면, 마음도 같이 녹을 거야.”
그의 손끝이 떨렸다.
포장지 위에 작은 부스러기들이 떨어졌다.
그는 그것들을 모으지 않았다.
그저 바람이 가져가도록 두었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그녀의 웃음이 아주 희미하게 남았다.
해가 기울자 방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그는 창문을 닫았다.
불을 켜지 않은 거실엔 붉은 그림자들이 겹쳐 있었다.
그는 조용히 식탁에 앉았다.
테이블 위엔 그릇 하나와 수저 하나가 놓여 있었다.
다른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녀가 남긴 마지막 요리는 김치찜이었다.
그 냄새는 오래도록 부엌을 떠돌았다.
그는 식사를 준비하지 않았다.
식탁에 앉아, 부엌 쪽을 바라봤다.
조리대 위의 조그마한 도마,
그녀가 쓰던 칼,
반쯤 닳은 행주.
빛이 서서히 꺼져가며, 모든 것이 형태를 잃었다.
그는 가만히 손을 들어 공기를 쓸었다.
그녀가 있던 자리를 향해.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공기의 밀도는 확실히 달랐다.
마치 누군가 그 자리를 통과한 것처럼.
그는 LP플레이어를 켰다.
스크래치 소리와 함께 오래된 재즈가 흘러나왔다.
그녀가 좋아하던 곡이었다.
음악이 방 안을 채우자,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바람이 창문을 스쳤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녁엔, 불을 켜야 해요.
안 그러면 방이 너무 쓸쓸하잖아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불을 켜지 않은 방은 여전히 어두웠다.
음악의 진동이 식탁 위 컵을 미세하게 흔들었다.
그는 그 진동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컵 속의 물결이 그녀의 이름처럼 번져갔다.
밤이 깊었다.
그는 불을 끄지 않은 채 소파에 앉아 있었다.
시계 초침이 규칙적으로 움직였다.
시간은 지나가고 있었지만,
하루는 끝나지 않았다.
벽에 걸린 그녀의 사진이 희미한 빛에 비쳤다.
웃는 얼굴이었다.
그는 사진을 바라보다 천천히 일어났다.
책장 위에서 낡은 향초 하나를 꺼냈다.
그녀가 생전에 좋아하던 향이었다.
불을 붙이자,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연기 속에,
그녀의 손끝이 스치듯 흔들렸다.
창밖에는 새벽안개가 깔려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그 안에서 부유했다.
세상 전체가 흐릿해졌다.
그는 창가에 서서 바깥을 바라봤다.
그녀와 함께 보던 밤하늘이었다.
그녀는 별을 볼 때마다
“저건 다 죽은 별의 빛 이래.”
라고 말하곤 했다.
“죽었는데도 아직 보인다는 게,
너무 멋지지 않아요?”
그 말이 새벽 공기 속에 다시 울렸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수천 개의 빛이 있었지만,
그녀의 눈동자 색만큼 선명한 건 없었다.
바람이 불었다.
커튼이 흔들렸다.
촛불이 미세하게 떨리며,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괜찮아요.
지금은 이대로 충분하니까요.’
그의 시야가 흐려졌다.
눈물이 고였지만,
그는 닦지 않았다.
눈물은 빛을 머금고
촛불의 불빛을 반사했다.
그 빛은 마치 살아 있는 듯,
벽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시간이 지나자, 향초는 점점 짧아졌다.
불이 마지막 남은 심지를 태우며 작게 깜빡였다.
그리고 완전히 꺼졌다.
어둠이 방 안을 채웠다.
그는 그대로 창가에 섰다.
멀리 새벽의 첫 기척이 들렸다.
새의 울음이 희미하게 공기를 흔들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창문을 닫았다.
차가운 유리에 이마를 댔다.
그녀의 이름이 입술 사이로 흘러나올 듯했지만,
그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대신 아주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 숨이 공기를 흔들었다.
그 흔들림 속에,
그녀의 웃음이 아주 미약하게 되살아났다.
빛도, 소리도, 향도 사라졌지만
그녀의 존재는 여전히 그 안에 있었다.
그는 느꼈다.
죽은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랑은 존재의 잔향으로 남는다.
그녀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의 감각 속에서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은 그녀가 지나간 자리의 냄새를 품고 있었다.
새벽은 그렇게 밝아왔다.
어둠이 걷히며 방 안의 윤곽이 되살아났다.
침대, 식탁, 컵, 향초, 사진, 그리고 빛.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었고,
단 한 사람만 없었다.
그럼에도,
세상은 여전히 그녀의 온도를 닮아 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숨을 내쉬었다.
공기 속에서,
그녀의 이름이 부서지듯 흩어졌다.
그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분명 존재했다.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형태였다.
존재의 잔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