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2_#17. 지옥철에 엉덩이를 구겨 넣으며

무질서의 정렬

by 골골


해가 완전히 떠오르기 전, 아파트 벽 너머에서 모터 소리가 동시에 켜진다. 웅— 하는 드라이기 진동이 층층이 번진다. 누군가는 늦잠을 잤을 것이고, 누군가는 이미 세 번이나 알람을 끄고 일어났을 터. 각자의 아침은 제각각인데, 소리는 묘하게 겹친다. 물이 흐르고, 현관문이 닫히고, 띠리링 소리와 함께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눈을 뜬다. 오늘도 도시가 시동을 거는 순간을.


그 순간을 관찰하는 것은 나의 몇 안 되는 재미다. 일상이 세상이 되고, 세상이 다시 일상이 되는 장면. 흩어져 있던 하루들이 어느 순간 한 줄로 맞춰지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웬만한 영화보다 흥미진진하다.


저마다의 아침이 시작됨과 동시에 도로는 붉게 물든다. 신호를 기다리는 자동차의 브레이크등이 가지런히 줄을 선다. 초록불이 켜지면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밀려 나간다. 지하철은 정해진 간격으로 도착하고, 거대한 빌딩들은 정해진 시간에 사람을 삼켰다가 저녁이면 다시 길 위로 토해낸다.


처음 상경해 마주했던 대도시의 지하철역은 실로 놀라웠다. 마치 거대한 공장이 무수히 많은 사람을 찍어내고 있는 듯한 풍경이었다. 지금의 나는 지옥철에 자연스럽게 엉덩이를 비틀며 빈틈 속에 몸을 싣곤 한다.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우성이다. 늦는 사람, 엉키는 일정, 미뤄진 약속, 덜 마른 머리카락. 누군가는 커피를 흘리고, 누군가는 이어폰 줄을 풀다 다시 엉킨다. 이 모든 소란을 뒤로하고 멀리서 보면 도시는 기이할 정도로 질서 정연하다. 신호는 정확히 바뀌고, 포털 화면은 일정한 속도로 이야기를 갈아치운다. 개별의 하루는 무질서하게 흩어지지만, 한 발 물러서면 그 무질서조차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정렬된다.


처음 이 도시에 왔을 때, 나는 그 질서 정연함이 좋았다. 내가 흔들려도 이곳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안심이 되었다. 기준이 있다는 느낌, 예측할 수 있다는 감각. 그 안에 서 있으면 적어도 길을 잃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흠, 글쎄.

도시가 나를 붙들어주는 건지, 아니면 내가 도시의 리듬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애쓰는 건지.


잠시 도시의 풍경에 눈이 팔려 내려야 할 역을 놓칠 뻔했다.

그저 오늘도 열심히 지하철에 엉덩이를 구겨 넣고, 칼같이 오는 버스를 타기 위해 뛰고, 스마트오더로 주문해 둔 커피를 테이크아웃하며 '5분이나 줄였다'는 사실에 안심하며 살아갈 뿐이다.


나의 일상이 모여 세상이 되고, 세상의 흐름이 나의 일상이 된다. 여전히, 여기서, 이 도시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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