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처럼 자는 사람
갤럭시 워치에는 수면을 분석하는 기능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수많은 기능들 중 내가 꾸준히 쓰는 건 이것뿐이다. 남들은 운동량을 체크하고, 심박수를 재고, 하루 걸음 수를 자랑스럽게 인증한다지만, 나에게 워치는 이미 운동용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이제는 그저 내 잠의 깊이와 리듬을 들여다보는 작은 관찰자가 되어 있다.
나는 펭귄형이다.
수면 중 3분 이상 깬 시간이 전체의 7%를 차지한다는 결과를 보고, 처음엔 단순히 불면증이 심한 줄 알았다. 그런데 들여다볼수록 이건 불면이 아니라 ‘성향’에 가까웠다. 매일 11시 전에 잠자리에 들고, 새벽 6시가 되면 자연스레 눈을 뜨지만, 그 사이 나는 여러 번 깨서 가족들의 기척을 살핀다.
아이가 이불을 걷어차지 않았는지, 남편이 코를 더 세게 고는 건 아닌지,
혹시라도 창문이 덜 닫혀 바람이 스며들진 않는지.
나도 모르게 집 안을 한 바퀴 순찰이라도 도는 셈이다.
워치가 알려준 동물 수면유형표를 보면, ‘펭귄형’은 충분히 잠을 자지만 밤새 자주 깬다고 되어 있다.
호기심에 논문을 찾아보니, 실제 펭귄들도 하루에 수만 번이나 몇 초씩 짧게 잠드는 ‘미세수면’을 반복한다고 했다. 포식자에게 새끼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완전히 깊은 잠에 들지 못한 채 하루 종일 깜빡이며 눈을 붙이는 것이다. 그 짧은 잠들이 모여 11시간의 수면이 된다고 한다.
그걸 읽는 순간, 괜히 마음이 뭉클했다.
나는 단지 잠을 잘 못 자는 사람이 아니라, 아마도 평생 누군가를 지키며 자야 하는 체질로 태어난 건 아닐까 싶었다.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잠귀가 밝았다. 앞선 글에서도 썼지만, 카페인에도 약하고, 술은 말할 것도 없고,
콜라 한 모금에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그래서인지 깊이 잠들기란 늘 어려웠다. 집안의 작은 소리에도 금세 눈이 떠진다.
남편이 화장실 문을 여는 소리, 냉장고 모터가 도는 소리,
무소음이라던 시계의 초침이 스윽 움직이는 그 미세한 소리까지.
세상은 늘 나를 완전히 잠들게 내버려 두질 않았다. 아이가 어릴 적엔 그 예민함이 조금은 쓸모 있었다.
밤마다 뒤척이며 불편함을 호소하던 아이를,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아이 방으로 달려가, 아이를 안아 변기에 앉히고, 다시 침대에 눕히곤 했다. 잠결에 아이는 내 품에 몸을 맡기고, 나는 그 작은 등을 다독이며 속으로 ‘괜찮아, 괜찮아’ 되뇌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극성맞았던 엄마였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정말로 그게 나의 의무라고 믿었다.
결혼 후 몇 년이 지나면서, 나는 자발적으로 거실로 잠자리를 옮겼다. 코골이가 심한 남편 덕분이었다. 처음엔 참다 참다 매일 새벽에 도망가 소파에 누웠는데, 나중에는 아예 처음부터 그곳에서 잠자리를 시작했다.
의외로 마음이 편했다. 누군가의 코 고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밤이 이렇게 고요할 수 있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고요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깨어 있었다.
벽시계의 ‘똑, 똑, 똑’ 소리가 귀에 박혀서, 시댁에 가면 제일 먼저 시계 건전지부터 뺀다.
다들 대체 무슨 소리가 들리냐며 웃지만, 나로선 그 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게 고문이다.
학생 때도 마찬가지였다. 쉬는 시간마다 책상에 엎드려 자는 친구들이 무진장 부러웠다. 나는 늘 피곤했지만, 단 한 번도 교실에서 잠든 적이 없다. 잠이 오지 않았다. 그땐 내가 유난히 긴장한 성격이라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때부터 나는 늘 ‘깨어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워치가 나를 펭귄이라고 부를 때, 나는 조금 웃었고, 조금은 위로받았다.
깊게 잠들지 못하는 나를 탓하던 오랜 시간들이, 한순간에 의미를 얻은 기분이었다.
이제는 누군가의 발소리에 깨어나는 나를 속상해하지 않는다.
그건 내 불면이 아니라, 나의 사랑의 방식이니까.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언제라도 눈을 뜰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