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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된 가출

상식이 가라사대

by 최국환

1) 드디어 가출.

분명 이런 길이 아니었다. 내가 꿈꿔왔던 길은 이렇지가 않았다. 푸른 새싹이 적당한 높이로 자라 있고, 살짝 내린 이슬에 목도 축여가며 간간히 풀 여치 몇 놈이 간식으로 놀고 있어야 할 그곳엔 마치 미치광이 머리 풀어 내린 듯 한참 동안 묵힌 길들 만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눈을 뒤집어 여기저기를 살폈지만 달빛마저 도움을 주지 않을 작정인지 절반쯤 잘려나간 얼굴을 구름 속에 숨기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주인의 머리맡에서 단잠을 자고 있었을 시간이다. 사랑도 받았을 것이고 꼬리를 시작으로 머리끝까지 보살핌의 손길로 달콤한 단장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오늘따라 바람마저 엉망으로 불어온다. 감각을 지우는 바람, 우선 방향부터 맘에 들지 않았다. 수평은 고사하고 수직으로 내리꽂는 심산에 모든 것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평소 마음으로 수십 번을 상상을 해온 길이였다. 길섶 갈대를 심하게 울리는 바람 덕에 신경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이미 사지에 전해오는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몇 시간을 헤매고 다녔던가. 아니 그보다 얼마나 굶었던가. 식탁 모서리에 가지런히 놓여있을 밥상이 그리웠다. 원하면 언제든 먹고 마실 수 있었다. 적당한 제스처에 인상 한번 쓰고 나면 차려지는 생선간식들, 아니 그보다 그리운 건 주인의 다정다감한 손길이었다. 집을 떠난 지 열 시간 만에 닥친 나의 아픈 현실이었다.

“상식아 방정맞게 돌아다니지 말고 근처에서만 놀아.”

“그것이 네 신상에 좋을 것이다.”

주인 부부의 비아냥거리는 말에 울컥해서 집을 뛰쳐나왔지만 실상은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일이었다.

일상을 벗어나 일탈을 맛보고 싶었기에, 2년이라는 세월 동안 변함없는 방구석은 너무 지루한 모습만 내게 보여줬기에, 아니 그보단 간혹 눈에 띄는 바깥세상 고양이들의 삶이 궁금해서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처음 그 길에는 그저 평상시 꿈꿔오던 그림들이 펼쳐져 있었다. 잠자리가 ‘나 잡아 잡숴 봐’하는 모양으로 낮은 자세로 날고 있고 공짜로 얻은 풀벌레의 간간한 맛도 그만이었다. 그런 행복도 잠시, 사방에서 들려오는 경운기를 비롯한 익숙하지 못한 기계음에 그만 혼란이 일어 그만 정신 줄을 놓고 헤매다 도착한 이곳, 설상가상 마치 줄 끊긴 연이 바람에 날리 듯 정신없이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는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그간 마음속에 간직했던 화려한 소풍은 고사하고 걱정 담긴 주인 부부의 말을 따르지 않은 결과가 이리 처참한지는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었다.

꼼짝 않고 눈을 부릅떠가며 한참을 보내고 나서야 겨우 바람이 잔잔해지고 달빛이 얼굴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늘 중간에 걸친 달을 보니 이제 새벽 야식을 먹을 시간쯤 된 것 같았다. 조금씩 동이 트기 시작했고 바람에 거침없이 갈라진 길들도 점차 자리를 정돈하는 것 같았다. 집들이 하나둘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천만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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