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층, 703호 이웃

어색함의 정적

by 민시

같은 층 703호 이웃과 처음으로 마주쳤다. 그를 보자마자 큰 키에 다부진 몸과 까만 피부가 꼭 유명 축구 선수를 연상케 했다. 물론 마주칠 때마다 방금 자고 일어난 듯 더벅머리에 운동복 차림이었다. 슬리퍼를 끌고 나오는 모습은 마치, 나이 많은 백수쯤으로 보이기도 했다. 언뜻 보기엔 인상이 매우 날카로웠다.


그 뒤로 703호의 막내딸과 엄마도 여러 번 마주쳤다. 아이는 어쩜 그렇게 작고 귀엽던지, 다섯 살쯤 되어 보였다. 부끄러운 눈웃음이 인사였다. 우리 아이와 똑같이 엄마 곁에 찰싹 붙어서는, 한없이 무해하고 또 무해한 아이였다. 엄마는 전에 봤던 아저씨 못지않게 키도 몸집도 커 보였다. 그녀는 가까운 이웃임에도 불구하고 내 인사는 받지 않았다. 무표정으로 엘리베이터 층수를 향해 시선을 올려볼 뿐이었다. 개의치 않았다.


‘아이는 굉장히 뽀얗던데 아저씨랑은 전혀 안 닮았네. 엄마 닮았나? 엄마 얼굴이 뽀얀 것 같기도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환경에 적응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사 후, 어쩐 일인지 오를 거라 예상했던 집값은 반대로 조금씩,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순간, 703호에서 이전 남자와는 다른 남자가 나왔다. 짧은 머리에 뽀얀 피부, 눈이 유독 선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스치기만 해도 공기가 숨을 멈추게 하듯 옷에 담배 냄새로 가득 찌들어 있던 게 반전이었다.


‘저 아저씨가 703호 막내딸 아빠인가? 그렇다면 지난번 그 날카롭게 생긴 남자는 누구지?’


40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703호의 두 남자를 자주 마주쳤다. 하루에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때도, 주차하고 올라올 때도, 편의점을 다녀올 때도. 늘 두 사람을 번갈아 마주치는 경우는 매번 새로웠다. 솔직히 드문 경우는 아니지 싶었다. 서로가 닮지도 않았다. 네 집, 내 집 하듯이 바둑판 위의 흑돌과 백돌 같았다고 해야 할까? 현관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는 손끝도 거침없고, 옷차림새나 맨발의 슬리퍼는 단순히 며칠 머무는 사람들 같지 않았다.


낯설고 또 낯설었다. 눈을 마주치면 어색하게 인사하는 내게, 그들은 눈치 보듯 힐끗 쳐다만 볼 뿐이었다. 이사오기 직전의 1층이 떠올랐다. 늘 경비원 아저씨와 인사하며 지나치는 공동 현관, 이웃들의 웃음소리와 눈인사는 당연했으니까.


조금 더 친절해 보이기로 마음먹었다. 마주할 때마다 입꼬리는 올리고 고개는 더 정중하게 숙이고. 내향인답게 기어들어 가던 중저음의 목소리는 한 톤 더 올리며 인사했다. 나름 상냥해 보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여전히 무표정, 그들의 키와 몸이 커서일까? 건들거리는 몸짓에 퍼지는 옷자락에 베인 담배 냄새와 성의 없이 까딱이는 고개만이 그들의 인사였다.


일방적인 내 목소리와 애씀이 얹힌 듯 부담됐다. 결국, 나도 한두 달 노력하던 상냥함은 사라졌다. 무표정으로 낮은 톤의 건조한 인사만이 복도를 채웠다. 703호 이웃들은 시선조차 엘리베이터 층수만 바라보며 끔벅일 뿐이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은 길게 느껴졌다. 정적이 흐르는 복도는 그들의 숨소리, 버릇처럼 킁킁거리는 콧소리뿐이었다. 하필, 엘리베이터 호출 버튼조차 고장이 나 번거롭게 기다려야만 했다. 어느 날은 핸드폰과 엘리베이터 층수를 확인하는 나의 반복적인 고갯짓과 눈동자 굴리는 의미 없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공기마저 무심했다.


어색한 이웃, 어색한 정적. 낯선 그들과 낯선 담배 냄새. 괜히 찜찜한 기운, 당연하게도 내 기분 탓이겠거니 싶었다. 이전의 환경과 지금의 환경이 다르듯 괜한 긴장감은 마음이 겉돌았다. 이사 온 이후로 편해야 할 집이 이상하리만치 편하지 않았다. 이웃인데, 왜들 그렇게 경계해야만 할까? 떳떳해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목소리마저 나오지 않았다. 눈을 마주치면 고개만 까딱이며 인사를 대신했다. 그들의 헛기침에 눈동자를 몇 번이고 굴려댔다. 담배 냄새는 숨을 멈추게 하며 고개를 돌리게 했고, 샴푸 냄새는 공기를 바꿔 놓은 듯 방향제 같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카디건을 걸치고, 손가락이 빗인 양 머리를 쓸어 넘기거나 올려 묶었다. 가방에서 이어폰을 찾아 꺼냈다. 귀에 꽂으며 핸드폰을 바라보고 엄지손가락은 음악을 위해 터치했다. 엘리베이터에 탄 순간부터는 올라가고 내려가는 내내 핸드폰만 바라봤다. 스크롤을 올리고 또 올렸다.


밝게 웃으며 하는 인사도 배려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존중했다. 최대한 무심한 듯 사람도 시간도 흘려보내기로 했다. 어느 날은 돌아서서 립스틱을 바르거나 쪼그려 앉아서 운동화 끈을 고쳐 묶었다. 그 정도의 움직임만으로 어색함을 적응해 나가는 게 나만의 방법이었다.


다만, 숨소리조차 편하지 않았다. 그저 채광만 밝을 뿐, 공기는 밝지 않았으니까. 내가 그 정도로 예민한 감각을 가졌으리라고는 생각하며 살지 않았기도 했다. 가까운 이웃조차 마주침이 매번 부담됐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차락, 소리와 함께 이웃집 현관문이 먼저 열렸다. 소리 없는 고갯짓은 무슨 의미일까, 최소한의 매너일까? 그마저도 누구는 맞춰 주고, 누구는 시선을 돌렸다.


어느 날은 차락,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에 맞춰 고개를 돌렸다. 문이 활짝 열렸다가 다시 닫히는 듯 좁아진 현관문 틈새로 욕설이 들려왔다. 여자 목소리였다. 문을 닫는 손목만 보였을 뿐 여자의 모습은 보지 못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이 엄마였을까, 불쾌함보다 의문이 먼저였다.














* 처음 써보는 소설입니다. 허술한 점이 있더라도 많은 양해부탁드립니다.



#미스터리 #심리 스릴러 #층간 소음 #이웃갈등 #이사 #착한 콤플렉스 #현실밀착형 #생활밀착형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