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아오는 두려움
당신은 구속받지 않는 삶, 간섭받지 않는 선택, 스스로 결정하는 존재가 되기를 원한적이 있나요?
그러나 정작 당신이 원하는 그 자유가 눈앞에 놓이면, 자주 망설이게 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선택의 문 앞에서 발걸음을 늦추고, 책임의 그림자를 보며 뒤를 돌아보는 일. 자유는 이상처럼 말해지지만, 현실 속에서는 종종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것이지요. 완전히 자유로운 인물은 군중 속에서도 혼자가 되는 법이랍니다. 당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저 같은 존재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지요.
그날 밤, 캠프는 유난히 조용했습니다.
낮 동안 사람들의 발걸음과 종이 넘기는 소리로 가득했던 공간은, 해가 지자 마치 숨을 멈춘 것처럼 가라앉았습니다. 천막 사이를 스치는 바람 소리마저 조심스러웠습니다. 모두가 잠들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말은 여전히 위험한 것이었기 때문이었지요.
인간들의 말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 것이지요.
인간인 당신은 말을 순간의 소리라고 여기지만, 어떤 말은 기억이 되고, 태도가 되고, 결국 한 사람의 삶을 규정하는 것이 되기도 한답니다. 그래서 말은 지나가는 공기가 아니라, 누군가의 내면에 조용히 내려앉는 흔적에 가까운 것입니다. 말은 진실을 전하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진실을 가리는 장치이기도 하니까요. 전쟁이 남긴 두려움의 향기는 자유가 되지 못하고 있었답니다. 그것은 서서히 떨려오는 침묵 속에 자리한 두려움이라는 것이었지요.
르네는 침대에 누운 채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몸은 쉬고 있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낮에 본 이름들, 종이 위에 적혀 있던 문장들, 그리고 ‘미래’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자유가 주어졌다는 사실보다, 이제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 깊이 잠 못 들게 했습니다.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간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주소가 사라진 도시로, 사람 없는 이름으로.
그때, 그녀의 숨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습니다. 저는 르네의 그 변화를 느꼈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의 두려움은 언제나 숨부터 바뀌는 것이니까요.
밤이 깊어질수록, 캠프의 공기는 묘하게 가벼워졌습니다.
그러나 르네의 몸은 그 가벼움을 믿지 못했습니다. 너무 오래, 무게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었지요. 그녀는 천막 안에서 몸을 웅크린 채 누워 있었습니다. 이곳은 더 이상 부헨발트가 아니었고, 감시탑도, 확성기도, 번호를 부르는 소리도 없었습니다. 그 사실을 그녀는 낮 동안 수없이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밤이 되면, 확인은 효력을 잃어갔습니다.
“또 오네요.”
르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말을 걸 대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분명히 저를 향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밤이 되면 항상 그래요.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면.... 그게 다시 와요.”
저는 그녀의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의자는 없었고, 몸도 없었지만, 그녀는 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에 가장 정확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두려울 때는 더 그렇답니다.
“무엇이 온다는 거야?”
저는 물었습니다. 목소리는 없었지만, 질문은 분명히 전해졌습니다. 르네의 눈꺼풀이 아주 살짝 떨렸습니다.
“모르겠어요. 총소리도 아니고, 명령도 아니고... 그냥.... 다시 거기 있는 느낌이에요.”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어 말했습니다.
“눈을 감으면 아직도 철조망이 보여요. 이미 없다는 걸 아는데도요. 몸은 여기 있는데, 마음은 아직 그 안에 있어요.”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녀는 보지 못했지만, 그 고개 끄덕임은 필요했습니다.
“몸이 먼저 나왔을 뿐이잖아. 마음은 아직 이동 중이고.”
르네는 작게 웃었습니다. 웃음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짧고 얇은 소리였습니다.
“그럼 저는 아직 자유가 아닌 건가요?”
그 질문은 나를 향한 것이기도 했고,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르네. 자유는 상태가 아니라 과정일 뿐이야. 르네 이미 시작된 거고 다만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 뿐이야.””
저는 그렇게 답했습니다. 르네의 향기에서는 두려움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르네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습니다. 숨이 길어질수록 두려움은 조금씩 형태를 잃었습니다.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이름 붙일 수 없는 덩어리에서 말이 될 수 있는 감정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그레타가 떠오르면... 제가 살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이 말은 고백이었습니다.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던 말. 살아남은 자들이 가장 늦게 입 밖으로 내는 문장.
저는 잠시 말을 고르다, 천천히 답했습니다.
“르네가 살아 있는 한, 그레타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너의 선택 안에서, 너의 기억 안에서
그녀는 계속 함께 걷게 될 거야.”
르네의 눈가에 물기가 맺혔습니다. 그러나 울지는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울음 대신 그녀는 고개를 돌려 천막의 천장을 바라봤습니다.
“그럼..... 무서워해도 되겠죠?”
“르네 솔직해지렴 자신에게 그래도 된단다.”
저는 바로 말을 이어갔습니다.
“두려움은 되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이제야 따라잡는 것이야. 얼마든지 너의 감정에 솔직해도 된단다. 이제는 눈을 감고 조금이라도 자렴. ”
저의 말에 르네는 아주 천천히 눈을 감았습니다.
이번에는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머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녀의 숨은 조금 더 고르게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 르네의 향기에서는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몸 전체를 장악하던 두려움은, 가슴 한편에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언제든 다시 말을 걸 수 있는 거리에서. 르네가 스스로 자신의 두려움과 대화를 시작할 때까지, 저는 르네의 곁에 머물며 그녀가 눈을 감을 때까지 기다렸지만, 잠을 이루지 못하는 르네의 밤은 길었습니다. 그리고 르네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있었지요. 그녀의 다리를 관통한 총알의 자국은 쉽게 아물지 않고 있었습니다. 검은 꽃처럼 흐드러지게 번져가는 그녀의 다리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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