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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이후, 르네의 말이 다시 몸이 될 때

절뚝이는 시대의 독백

by 구시안

르네는 혼잣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전쟁을 통과한 사람들은 말을 아낍니다. 말은 너무 자주 배신했으니까요. 연설은 사람을 살리지 않았고, 약속은 신체를 되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르네의 독백은 소리보다 먼저 몸에 나타났습니다. 숨의 속도, 시선의 각도, 멈칫하는 손끝. 그러나 어느 밤, 그녀는 마침내 말을 선택했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이 시대가 대신 말해버릴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날도 르네의 곁에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그녀의 생각이 언어로 변형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르네는 창밖을 보며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내 다리를 전쟁이라고 부르겠죠.”
잠시 멈춤을 선택한 사람처럼 르네는 그렇게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언제나 멀리 있었어요. 총을 쏜 사람도, 명령을 내린 사람도 아니었죠. 썩어간 건 내 다리였고, 잘려나간 것도 내 몸이었어요.”

그녀는 자신의 무릎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았습니다. 이미 시선은 그곳을 지나온 뒤였습니다. 독백은 과거를 설명하기보다, 현재를 고정시키는 도구니까요.


“검게 변한 다리를 보면서 생각했어요. 이건 나만의 일이 아니구나.”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단했습니다.
“이건 시대의 색이었어요. 사람들의 말이 썩어간 색, 선택이 미뤄진 색, 너무 늦게 도착한 정의의 색.”

나는 그녀의 말 속에서, 잘려나간 다리가 다시 언어로 자라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은유는 고통을 덜어주지 않지만, 고통을 혼자만의 것으로 두지 않게 합니다.


르네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재판 소리를 껐습니다.
히틀러의 이름, 공범들의 얼굴, 숫자로 환원된 죽음. 그녀를 괴롭혔던 마녀의 이름까지. 그녀는 그것들을 더 이상 듣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이것은 회피가 아니라 그녀가 선별이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에게는 무엇을 받아들이지 않을 권리도 필요합니다.


“그 사람들을 재판하는 동안,” 그녀가 말했습니다.
“내 다리는 이미 판결을 받았어요. 유죄도 무죄도 아닌, 제거. 다리 하나가 하늘로 갔어요.”
르네의 짧은 웃음. 웃음은 아니었고, 공기의 마찰에 가까웠습니다.


“신체는 언제나 정치보다 빨리 결론에 도달하네요.”

그녀의 독백은 점점 나를 향해 오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물론 그녀는 내가 있다는 걸 알지 못했지만, 인간의 말은 종종 보이지 않는 청자를 전제로 합니다. 특히 가장 솔직한 말일수록 말이죠.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기억할지도 알아요.”
르네는 천천히 말을 골랐습니다.
“강한 여성. 생존자. 상징. 그런 것으로 불리게 될까요? 아니면 전쟁의 고아 피해자 정도겠죠...”
그 단어들은 그녀의 입에서 힘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상징이 아니라, 아픈 몸이에요. 매일 균형을 다시 계산해야 하는 몸. 계단 앞에서 시간을 재야 하는 몸. 지금의 나의 몸이 너무 싫어요.”

이것이 르네의 진짜 분노였습니다.

전쟁이 아니라, 전쟁 이후의 서사. 모든 상실을 의미로 포장하려는 충동에 대한 거부. 저는 그 순간, 거리에서 본 사람들을 떠올렸습니다. 팔을 잃고도 침묵한 사람들, 다리를 잃고도 웃는 법을 강요받은 사람들. 그들의 독백은 대부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을 대신한 문장들이 역사에 남았습니다. 지나치게 깔끔한 문장들. 전쟁이 남긴 역사는 그런 늘 그런 것이었습니다.


르네는 말을 이어갔습니다.

“그래도요,”
이번에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습니다.
“내 다리가 잘려나간 날, 이상하게도 내가 아직 여기 있다는 게 분명해졌어요.”


그녀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습니다.
“숨이 있고, 생각이 있고, 선택이 남아 있었어요. 그게 전부였지만, 그걸로도 충분했어요.”


저는 그 말이 이 이야기의 중심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전쟁은 끝나지 않은 시대를 남기지만, 인간은 그 안에서 최소한의 충분함을 발견하려 애씁니다. 그것이 살아남은 사람의 기술이니까요.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에요.”
르네의 독백은 결론을 향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방향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슬프기만 한 일은 아니에요. 예전의 나는, 이런 선택을 할 줄 몰랐으니까.”

그녀는 휠체어의 바퀴를 살짝 움직였습니다. 작은 소리. 그러나 그 소리는 명확했습니다. 이동의 소리, 계속됨의 소리.


저는 그 곁에 서서 생각했습니다. 르네의 검은 다리는 사라졌지만, 그녀의 독백은 이 시대에 남을 것이라고. 팔과 다리를 잃은 수많은 사람들의 말하지 못한 문장을 대신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하나의 균열은 만들 것이라고.


역사는 늘 큰 소리만 기록합니다. 그러나 삶은 이렇게, 낮은 목소리로 방향을 바꿉니다. 그날 밤, 르네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독백은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말은 때로, 한 번이면 족합니다. 저는 여전히 르네의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야기가 또다시 상징으로 굳어지지 않도록. 르네의 다리가 은유로만 남지 않도록.

투명한 존재는 서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곁에 남아, 말해지지 않은 문장들이 사라지지 않게 할 뿐입니다.


이 전쟁 이후의 시대는 여전히 절뚝거립니다. 르네처럼 말이죠. 그러나 절뚝거림은 멈춤이 아니라, 다른 리듬입니다. 르네는 그 리듬을 배우고 있고, 나는 그것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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