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와 지속 사이에서 기록
고귀한 언어를 얻은 대신 방과 음식을 구할 돈이 필요했다. 반쪽짜리 신 같은 존재들이 되지 못했기에, 한때 영광스러운 꿈을 접어야만 하는 현실을 원망하기도 했다. 여유롭게 글만 쓰면서 살 수 있었다면 행복했을까. 과연 그럴 수 있을까를 오랫동안 생각했다. 지금은 해산되어 늪과 진흑탕 사이를 오가며 살면서 길을 잃어버린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위대한 업적에 대한 갈망보다는 무엇을 이루었는지 모른다는 허망함이 남아 있을 뿐이다.
타이틀을 하나 얻으면 끝날 줄 알았으나, 문학의 세계도 만만치가 않은 곳이라 현실의 고뇌를 오가며 결정해야 하는 것들은 의외로 빵부스러기를 선택하는 것으로 쉽게 끝을 맺었다. 시인(詩人)이 되면, 스스로 이뤄낸 승리를 축하하며 마음껏 두 가지를 전부 얻어낼 줄 알았지만, 쉽지가 않은 삶에 그리워진 밤은 여전히 많다.
수많은 글들은 빛을 보지 못하고, 서랍장 안에서 빛 바래져 가는 시간을 지켜보면서도 나는 원망하진 않았다.
오히려 빛을 못보고 오랫동안 뭍혀있는 내가 써내려간 글들을 읽어보는 시간이 소중한 밤도 깊을 때가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글을 쓰는 걸 잊어버려 얼룩진 식탁보를 갈아대는 것에 익숙해져 갈 무렵, 세심하게 청소하지 않은 가구 틈새를 먼지가 채우듯이, 문학이라는 이름이 말라있던 심장을 다시 채우기 시작했다. 손톱으로 살짝 긁어도 떨어져 나가던 문학이었다. 그렇게 단순하게 포기라는 것을 하면서도 밤이면 의자에 앉아 있는 회색벌레 같아 보이는 나를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내 삶에 꿈을 꾸는 가엾은 자아를 달래주기 위해 다시 열 손가락을 움직여 보면서도, 꿈에 대해 쓴 것들이 지난 기억과 경험들이 시(詩)가 되기도 하겠지만, 살아갈 능력을 검증하는 비밀스러운 선험적 시험을 통과해야만 하는 순간들은 여전히 찾아들고 있다.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하기 싫은 것을 해야만 하는 삶이라는 굴레에 감히 저항하지 못하는 유혹자처럼. 그늘에서 이루어진 말들을 주워 담아 밤이면 글을 쓰게 된다. 그 이야기를 정말로 믿고, 어쩌면 믿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것처럼. 서로 엉켜 위아래로 기어 돌아다니지만, 결코 밖으로는 나오지 않는 것들이 내 가슴 안에 자리하고 있다. 일부는 더 자주 언급되기도 하고 내가 쓰는 산문에 주제가 되기도 한다.
나에게 행복하다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부끄러움은 창피한 것이 아니기에
솔직한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기에
단절의 표현처럼 들릴 수도 있는
경멸의 표현으로 읽힐지도 모르는
예술이라는 이름에 속하기 위해
나는 글을 선택했을 뿐이다.
타락이 빚어낸 도깨비불은 밤이면 나타나
암흑을 밝히는 최소한의 빛이 되었다.
경험해 보니, 불행이라는 것이 높은 곳으로 사람을 끌어올리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불행 안에서 더 많은 것들이 결정지어지고 매듭지어진 다는 사실을 감사하게 여기며 보내는 시간도 길었다. 내 마음속에 다 그려려지지 않은 몸짓들을, 내 입술에 올릴 생각조차 못했던 말들과 단어들을 끝까지 꿈꾸지 못하고 잊어버렸던 꿈들을 주워 담는데 시간을 쓰고 있다.
마치 건물을 짓는 도중에
무엇을 지으려 했는지
생각하다가 지쳐버려
폐허가 된 것처럼.
그 건물의 폐허 처럼.
고통스러운 간주곡이 흐르는 밤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조용히 앉아 생각한 모든 것을 기록한다. 단지 즐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는 부족한, 이것으로 행복해질 거라는 믿음도 없이, 가짜 경멸을 구별하고, 허약한 증오를 없애기 위해, 거칠고 흙이 묻어 더럽혀지는 밤의 진흙탕에 두 손을 담근다.
자신의 삶을 어느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는 자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나는 그것을 위해
달리거나
걷거나
주저앉았다가
다시 무릎에 손을 짚고 일어나
서 있다.
나 자신이 다른 모든 사물과 드물어 혼란스럽고 희미한 풍경 같다. 구름의 움직임처럼, 내 몸의 한 감각에서
다른 감각으로 넘어가는 순간들이 많아지면서, 나는 여기저기를 여전히 뒤지고 있지만, 무엇을 찾고 있는지 모르고,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처럼 자리할 뿐이다.
혼자 숨바꼭질을 한다.
세상을 초월하는 속임수를 넘어선
마치
내가 쓰는 글에 담긴 초라한 시간들을
작은 위안과 환상들
목적지로 가는 길을 잃은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던 희망을 담았던
비눗방울이 터진다.
닫힌 방 같은 상처.
깊은 기포가 느껴지는 밤도
허영으로 채울 때가 있다.
그 허영심의 몇 장의 종이를 채우고 나면, 몇 구절의 글 혹은 몇 가지의 의구심이 찾아든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이미 쓰는 글 안에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자리한 것처럼 느껴지는 날도 있다. 비록 불완전한 내 글을 보며 누군가는 생각에 빠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이룰 수도 있었을 완벽한 삶이 아니라, 지금의 삶이어서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완벽은 구현되지 않는 세상에 살아가며, 늘 침묵하는 신들의 행패에 놀아나며, 사랑할 수 있지만, 그것도 사치라며 멀어지게 만든 출입불가의 구역을 스스로 만들어 놓았다.
독(毒).
근심.
불안을 아무도 모르게 가만히 풀어놓는다.
만성적인 무기력에도 비뚤어지게 만드는 일이 목표가 된 것처럼. 나의 언어로 누군가를 움직이는 게 아닌
그 시작은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뿐이다.
모르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이미 알고 있는 개념을 빌려오고 싶지 않다.
어떠한 추측도 하고 싶지 않다.
외부의 영향 때문에
떨어지는 과일이 되고 싶지는 않다.
카페에 앉아 여유 있고
무신경한 태도로
나는 지금 그것을 기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한 카페인이 스며든 두 잔의 커피를
그리고 그것을 희석해 줄 두 잔의 물을 마셨다.
어떤 미묘한 빛의 효과인지 모호한
소리와 향기에
어쩌면
음악소리에 마음을 뺏기며 살고 있는 것이다.
습기가 살짝 깔린 이 공간에
슬프지만 위협적이지 않은
음악에 이유 없이 지루해지는 것을 보면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 때문에
마음이 아프고,
주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논리는
점점 결핍되고
아무거나 말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뭐든 해석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하얀 종이에 툭툭 던져 쓰는
글을 써가는 중이다.
내가 글쓰기를 멈추므로
내가 스스로를 멈췄던 것처럼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날에
피아노의 선율이
표현 불가능성의 의성어처럼
펼쳐진 불가사의에
인식하지만 잡을 수 없는
무한을 느낀다.
한숨 속에
나 자신을 방부 처리할 생각을
가져보지만
들려오는 음악에는 저항할 방법이 없다.
음악이
행복으로 상처받은
영혼들의 피난처라면
시간의 감촉을 느끼게
하지 못하면
음악이라고 할 수 없듯이
난센스 같은 철학이 나를 떠나갔듯이
현실과 본질 그 자체만 남아 있는 듯
어쩌면 오래전에
나는
이성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