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건반 위에 내려앉은 빛은
하루의 마지막 숨처럼 가늘고,
손가락들은 그 빛을 더듬는다,
마치 기억이 아직 형태를 갖추기 전의
어떤 흐릿한 언어처럼.
장면을 듣는다.
보이지 않는 소리들이
검은 건반과 흰 건반 사이에서
서로를 밀어내고, 다시 끌어당기며
존재의 틈을 만든다.
그 틈 속에서,
한 사람의 손은 과거를 누르고
다른 손은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누른다.
두 시간은 동시에 울린다,
겹쳐진 채로,
어긋난 채로.
피아노는 하나의 몸이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침묵이 쌓여 만들어진
거대한 공동묘지이며,
건반 하나하나는
한 번도 끝까지 말해지지 못한 문장들이다.
손은 말이 없다.
하지만 손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
어떤 사랑이 있었는지,
어떤 포기가 더 깊었는지,
어떤 밤이 끝내 아침으로 이어지지 않았는지.
검은 그림자가 손등을 스치며
마치 또 다른 자아가
그 위에 앉아 있는 듯하다.
나는 그 그림자를 의심한다.
그것이 나인지,
아니면 나를 연주하는 또 다른 존재인지.
나는 도망치고 싶다.
이 건반들 사이로,
소리가 되기 이전의 진동 속으로.
나는 분열되고 싶다.
각 손가락마다 다른 이름을 부여하며
각 음마다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왼손은 말한다: “나는 과거다.”
오른손은 말한다: “나는 아직 없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 채로
계속해서 연주된다.
누군가 써내려간 음표안에서,
그 안의 세계는 끊임없이 무너진다.
빛은 흘러내리고,
손은 결국 멈출 것이고,
건반은 다시 침묵을 되찾겠지만
그 순간,
한 번 울렸던 음(音)은
우주 어딘가에서 아직 떨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떨림 속에 살고 싶다.
완전히 끝나지 않은 것들 속에,
완전히 시작되지 않은 것들 속에.
그래서 다시,
아무도 듣지 않는 음악을 위해
손을 올린다.
그리고 누른다.
존재하지 않는 나를.
앙드레 가뇽의 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