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키미 Dec 25. 2018

너 따위의 그딴 이야기도

프롤로그


회사 벽에 7개의 포스터가 줄지어 붙은 적 있다. 새로 생긴 '문답소' 게시판 홍보였는데, 포스터 안에는 카카오 크루들의 인터뷰가 담겨 있었다. 일하다가 생긴 사소한 궁금증이 너무 사소한 거라 누구한테 물어보지도 못하고 혼자 끙끙대다가 시간 낭비해본 경험이 주제인 듯했다. '이럴 때 문답소를 이용하세요'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홍보였다. 특히 기획자, 에디터, 마케터, MD, 제휴 담당자와 같이 '기타 등등'의 업무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직군이 그 대상이었다.


10년 차 기획자의 이런 코멘트가 있는가 하면,

"업무 중에 혼자 해결하기 힘든 문제에 부딪힐 때는 주변에 물어보기가 쉽지 않아요. 10년 차가 그것도 몰라? 라고 생각할까 봐 위축되더라고요. 사소한 문제일수록 더 그렇죠. 처음이면 모르는 게 당연한데 말이에요."


병아리 기획자의 이런 코멘트도 있었다.

"물어보고 해야 되는 일과 알아서 판단해도 되는 일의 경계가 여전히 어려워요. 그래도 여러 사람의 피드백을 듣는 건 언제나 도움되더라고요. 다른 의견이면- 그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구나! 하고, 같은 의견이면- 내가 틀리지 않았구나! 하고 힘을 얻어요. 의견을 나누는 데 정답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성과 반영도 안 될 사내 프로젝트에 이렇게 공 들일 일인가, 싶으면서도 누군가는 해줬으면 싶은 일이기도 했다. 그 어려운 걸 해낸 친구, K를 만났다.




어쩌다가 이런 프로젝트를 하게 된 거야?

재밌을 것 같아서 자원했어. 문답소를 만들자고 결정이 된 후에 어떻게 알리면 좋을까 고민해 봤거든. 아무리 생각해도 삐까뻔쩍한 마케팅은 아닌 것 같은 거야. 크루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가려면 크루들의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러다 한 크루랑 티타임 중에, 사람들이 '십 년 차가 그것도 몰라?' 라고 생각할까 봐 위축된다고 하는 말에 아이디어를 얻었지. 이런 타이틀 몇 개만 전달해도 성공이겠다, 싶었어. 


7명의 인터뷰가 7개의 타이틀이 된 거네?

그렇지. 누굴 인터뷰해본 경험이 없어서 조심스러웠는데, 취지를 설명하니까 다들 흔쾌히 수락해주시더라고. 연차, 직무, 부서 고려해서 골고루 섭외하느라 대부분 모르는 분이었든. 근데 대화하면 할수록 너무 재밌는 거야. 기본적으로 자기 일에 프로의식을 갖고 있는 분들이라 더 즐거웠던 것 같아. 타이틀은 인터뷰 중에 번뜩 떠오르기도 하고, 글로 옮긴 후에 건져 올리기도 했어.


그렇게 재밌는 얘기가 많았으면 더 길게 담고 싶다는 아쉬움은 없었어?

인터뷰 전에 포스터 디자인을 정해뒀어. 어쨌든 홍보 목적이니까 컨셉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짧더라도 굵은 코멘트가 필요했거든. 빼기, 빼기, 빼기, 어떻게 더 뺄까 꿈에 나올 정도로 빼기에만 몰두하느라 버려지는 대화를 아쉬워할 겨를이 없었어. 그렇게 빼고도 디자인하면서 열댓 번을 더 뺐으니까.


아이디어 발제, 인터뷰이 섭외, 인터뷰, 글쓰기, 디자인까지 다 직접 했잖아. 뭘 할 때 제일 즐거웠어?

인터뷰. 


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답하네?

내가 가끔 사진을 찍잖아. 결혼식이나 돌잔치 같은 거.


응, 지인들이 종종 너한테 부탁한다며. 인터뷰 얘기하다가 사진은 왜?

전문가용 카메라 둘러메고 가면 일일 포토그래퍼가 되는 거야. 하지만 나는 전문가가 아니니까, 내 역량껏 할 수 있는 걸 찾은 게 그런 거야. 가령 결혼식 스냅이면 하객들 한 명 한 명의 표정을 담아. 결혼하는 당사자들은 정작 보지 못하는 모습이잖아. 그거라도 선물해주고 싶더라고. 몰카범처럼 천천히 샅샅이 살피면서 찍다 보면 꼭 누군가 프레임 안으로 뛰어든다? 누구네 조카 꼬맹이들이나 한복 곱게 차려입으신 어머님들, 신부 동기들, 신랑 친지들이 찍어달라면서 브이를 해. 그럴 때 찍은 사진은 하나같이 행복해. 세상 천진하고 난만한 얼굴들. 사실 처음엔 살짝 당황했었어. '이 분들, 내가 누군 줄 알고?'


그러게, 네가 누군 줄 알고?

카메라가 매개였던 거야. 인터뷰라는 포맷도 딱 그렇더라고. 평상시에 나눌 법한 대화여도 인터뷰라는 포맷 안에 들어서면 마음가짐이 달라지나 봐. '이 사람이 나를 선택했다'는 은근한 우월감도 생기는 것 같고 동시에 기대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책임감도 작용하는 것 같고. 어쨌든 사람과 사람이 나누는 대화인데도 다르더라고, 인터뷰는.


듣고 보니 그렇네. 그래서 처음 만난 사이여도 즐거울 수 있었나 봐.

내가 원체 호기심이 많잖아. 그래도 혹시나 실례되진 않을까 해서 평상시에는 삼키는 질문들, 인터뷰어일 때는 용기가 난다? 말을 고르고 골라서 조심스럽게 운을 떼는데 어느새 엄청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거야. 소주 한 잔 앞에 두고 있는 마냥. 더 신기한 건 뭔 줄 알아?


뭔데? 

나 따위의 이딴 얘기를 누가 궁금해하겠어? 하면서도 사람들은 이미 대답할 준비가 돼 있다는 거야. 인터뷰라는 게 일반인에겐 익숙하지 않은 포맷이니까 경험하지 못했을 뿐, 모두가 자기 인생의 철학자더라고. 그래서 생각했지. 기회가 된다면 내가 그걸 궁금해해주고 싶다고.


그래서 30일 인터뷰 프로젝트에 참여한 거구나?

너무 멋진 기회잖아. 한 달 동안 1일 1인터뷰라니! 내가 좋은 인터뷰어가 될 수 있을지 실험해 보고 싶었어. 룰도 재밌는 게, 함께하는 멤버가 스무 명인데 돌아가면서 일일 매니저를 해. 매니저가 그 날의 인터뷰 대상자와 질문을 정해주면 멤버들은 각자 주변 인물을 인터뷰하고 정해진 시간 안에 공유하기. 그게 땡이야. 

첫 번째 주제는 이거였어.

- 대상: 나
- 질문: 30일 인터뷰 참여 결심 계기는?




눈치채셨는지? 

K는 '나', 킴프로입니다. 


이토록 자기애 강한 인터뷰를 프롤로그로 내놓다니 부끄럽지만, 11월 한 달 동안 하루에 한 명씩, 30회의 인터뷰를 하게 된 사연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싶었어요. 이 글은 30개의 이야기 중 1번입니다. 남은 29개의 이야기를 무사히 담아낼 수 있을까요? 


To be continued.







30일 인터뷰 프로젝트를 자세히 알고 싶다면, 여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