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의민족 이승희 마케터
카카오임팩트에서 주최하고 브런치 작가가 진행한 글쓰기 클래스. 1주차는 배달의민족 이승희 마케터였다. 브런치 마케터가 아니라 브런치 작가 1인으로서 청강하려던 나는 사실 좀 망설였다. 그의 강연을 처음 듣는 게 아니었고, 책도 읽었고, 브런치 글도 읽고 있고, 매일 인스타로 소식을 접하고 있으니 '또 새로운 게 있을까?' 싶었다. 오산이었다.
시작하자마자 물개박수 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비슷한 나이에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 '더 잘 쓰고 싶다'는 욕구 실현의 과정을 이야기하니, 빠져들 수밖에 없었으리라. 내가 평소에 하는 생각이 그의 입을 통해 정확한 언어로 구사되어 나올 때마다 나는 물개가 되었다. 부유하던 영감들이 제 자리에 맞춰지는 동안 1부 강연이 끝나 버렸다. 롤러코스터 같은 전개였기에 '시간 배분을 잘못하셨나? 2부가 남은 줄 모르고 할 말을 다 해버린 거 아닐까?'하고 염려했으나 그 또한 오지랖. 2부까지 총 80분을 체감 세바시 속도로 순삭시킨 그는 강연이 끝나고도 에너지가 펄펄 넘쳤다. 40분을 더 맡겨도 거뜬히 해낼 기세였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귀갓길. 우연히 함께 지하철역을 향해 걸어가는데, 대화 중에 갑자기 그가 폰을 꺼내 뭔가를 메모했다. 나의 멘트에서 인사이트를 얻은 모양이었다. 걷다가도 생각의 단초를 붙잡아 두는 습관. 조금 전까지 강연에서 '많이 관찰하고, 관찰한 걸 기록하고, 실행에 옮기라' 강조하던 그였다. 그 사소한 행동에 80분짜리 강연이 함축되어 묵직하게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 대상: 주변에서 가장 트렌디한 사람
- 질문: 당신과 가장 닮은 브랜드는 무엇인가요?
'좋아하는'이 아니다. 내겐 너무 어려운 이 질문에 이승희 마케터, 숭님은 어떻게 답할지 궁금했다. 나의 생각을 누군가 대신 언어로 구사해주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숭님과 가장 닮은 브랜드는 뭘까요?
디앤디파트먼트(D&Department)
즉답.
와, 지금 거의 고민 없이 바로 얘기하신 거죠?
네. (웃음) 가장 닮고 싶은 브랜드였는데, 그 브랜드의 가치를 따라가다 보니 지금은 닮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디앤디파트먼트 철학이 long life design이에요. 물건이든 공간이든 사람이든 오랫동안 변함없는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느냐에 중점을 두고 있거든요.
마케터가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 있는데, 요즘엔 기존에 있던 것을 발견하고 재해석해서 얼마나 가치 있게 만드느냐가 중요한 자질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 인생에서도 long life design을 실천하려고 애쓰고 있고요.
200% 공감한다.
그즈음 디앤디 대표 나가오카 겐메이가 서울에서 워크숍을 진행했다. 안 그래도 숭님이 거기 참석했길래 또 어떤 인사이트를 얻었을까 궁금하던 참. 공감에 만족이 더해졌다.
이 질문한 저를 칭찬하고 싶네요. 조금 감격.
(웃음) 근데 사실 뻔하긴 하지만 제일 닮은 브랜드는 배민이죠. 근데 직원이라 패스했어요.
1. 배민 / 2. 디앤디네요?
(웃음) 네. 배민은 많이 닮은 것 같아요.
이유를 너무 알 것 같아서 스킵했다가 이 글을 정리하며 다시 물었다.
근데 배민은 어떤 점이 닮았어요?
(웃음) 위트..? 키치함..? 음식 좋아하는 거..?
정답일세.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지 말라"
사실은 약간만 달라도 괜찮을 텐데, 차별화를 시도하고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하면 어떻게 해서든 꼭 세상에 아직 없는 것을 만들어야지 하며 뭔가 엉뚱한 것을 생각하고 맙니다. 그런 까닭에 기발하지만 불필요한 것을 무리하게 만들어버려,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거나 팔리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깜짝 놀라게 하는 것에 구애받아선 안 됩니다.
마케팅 도서 <'팔다'에서 '팔리다'로>에 나오는 구절이다. 숭님은 이 사실을 이미 깨달은 거 아닐까?
흥미로운 건, Your self를 물었는데 Job이 돌아왔다는 점이다. 몇 해 전부터 서점가에 퇴사 홍수가 불었다. Work와 Life의 균형을 퇴사(또는 퇴근)에서 찾는 시대.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일잘러의 콘텐츠가 각광받는 현상을 무시할 수 없다. 정반대의 얘기처럼 보이지만 사실 초점은 '나'에 있는 것 같다. 죽어라 일만 하느라 나를 놓치고 있지 않나? 하는 인지가 '퇴사' 키워드를 키웠던 것처럼, 내가 즐거워하는 일이 무엇일까? 더 즐겁게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고찰이 자연스레 '프로페셔널'을 키워내는 것. 이승희 마케터가 공동 저자로 참여한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는 후자에 속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콘텐츠에 담긴 소신이 좋다. 자기 업에게 진지하게 질문하고 답해본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 장황하지 않아서 더 와 닿는 이야기들이.
2018년 11월 한 달, 1일 1인터뷰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인상 깊었던 인터뷰와 단상을 기록합니다.
(+) 글쓰기 클래스 후기
(+) 또 다른 브랜드 마케터의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