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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키미 Dec 26. 2018

나의 변수 중에는 나 밖에 없었으니까

기혼자였던 U언니


지난 일요일 <SBS 스페셜> '결혼은 사양할게요' 편을 보는데 속이 다 후련했다. 방송에 나온 인터뷰이들이 내 마음을 대신 말해주는 게 아닌가! 모르긴 해도 이제야 감정에 언어를 찾은 비혼자가 한둘은 아닐 거다.


비혼인 채 서른 중반이 되어보니 결혼 소식보다 반가운 게 이혼 소식이다. 연애 소식보단 이별 소식이고. 헤어지라는 기원은 아니고 "나랑 놀자" 정도? 나 또한 한 사람에게 정착하고 긴 연애를 했지만 결국에는 스르르 시드는 동안 세상은 S/S 시즌으로 물들었다. 봄처럼 파릇파릇하거나 여름처럼 녹음 짙은 연인만 보였다. 그럴 나이였다. 모두가 '그래야 할 때'라고 말할 때 그러지 않는 사람이 느끼는 박탈감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당혹스러웠다. 가족들의 결혼 압박도 귀여운 수준이고 세상이 정한 부류에 끼지 못해 안달인 성격이 아님에도 거지 같은 기분과 싸워야 했다. 그때 알았다. 이래서들 결혼하는구나. 이러느니 안정적인 제도권에 들어가는 게 속편하겠구나. 내 옆에 '나쁘지 않은 누군가'가 있었다면 결혼해 버렸을지도 모를 시기를 무사히 통과한 게 어찌나 다행인지.


그래서 인터뷰 주제가 오픈됐을 때 나는 청개구리가 되고 싶었다.

- 대상: 기혼자
- 질문: 결혼을 결심한 순간은?


'미혼' 또는 '기혼'

결혼 여부를 물을 때 이혼자는 어디에 체크해야 할까? 사전적 정의상 기혼은 '이미 결혼함', 미혼은 '아직 결혼하지 않음'인데. '이미 결혼했다가 결별한' 이혼자 U언니를 인터뷰했다.




이 질문이 좀 빡칠 수도 있는데, 언니가 해주면 의미가 남다를 것 같아서

빡치지 않고 찬찬히 생각해볼게


다행이다. 용기 내어 질문했다.


결혼을 결심했던 순간이 언제인가요?

만나는 사람 2명에 1명이 결혼은 언제 해?라고 물었을 때- 는 얼른 든 생각이고

1. 나이가 많고 남자 친구 있는 건 아는데 소식이 없고 하니까 묻는 사람들에게 '오지랖은 거기까지'라고 생각하다가 그게 아무렇지도 않게 된 순간 (밥 먹었냐? 와 비슷하게 느껴짐)

2. 직장생활도 어지간히 정리되는 것 같고 나의 30대 목표 중에 결혼이 있었고 당시 남자 친구도 있었고 지구 상에 존재하는 한 명과 결혼해야 한다면... 등등 합리화를 시켜가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부모님이 나보다 더 열심히 이것저것 찾아보며 백화점 등등을 가자고 하실 때였던 것 같아


이런 질문, 청첩장 돌릴 시기에도 많이 받았죠?

그때도 똑같이 말했어. 사실 결혼을 결심할 때는 상대에게서 이유를 찾았어야 했어. '이 사람이랑 평생을 살아도 되겠구나' 이렇게. 근데 나의 이유는 나였기 때문에 이혼을 생각하게 된 것 같아.

예를 들면 '넌 가만히 있어도 빛나는 사람이야' 이런 순간...


얼마 전 결혼한 우리의 지인 커플 얘기다. 식장에서 신부가 신랑에게 프러포즈 편지를 낭독했다. 한창 자존감 낮아져서 예민하게 굴던 신부에게 신랑이 'ㅇㅇ아, 넌 가만히 있어도 빛나는 사람이야'라고 말했을 때 결혼을 결심했다는 뭐 이런 낭만적인 이야기... 마지막엔 "나랑 결혼해 줄래?" 뭐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


상대의 어떤 점에 꽂혀서가 아니라 나의 필요에 의해 이유를 찾았기 때문이라는 건가요?

하... 이건 술이 한 잔 들어가야 하는데...

보통 결혼 생활 중에 상대방이 너무 싫은 순간에 '그래도 이 사람은 이게 좋으니까'라고 위안하며 넘긴다고들 해. 그런데 나는 너무 싫은 것만 생각나는 거야. 그러면서 생각했어. '지금 나한테 제일 잘하는 사람이니까 선택' 이게 너무 자만이었어. 그땐 자신 있었거든, 내 결혼 생활에. 나의 변수 중에는 나 밖에 없었으니까. 변수에 남편, 시댁, 시누이 등등이 생기니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 같아.


'나의 변수 중에는 나 밖에 없었으니까' 이 말에 꽂히네요.

내가 원래 좀 지르고 나서 수습하는 캐릭이잖아 ㅎㅎ 근데 그건 수습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지.


살면서 또 한 번 크게 저지를 일이 생길까요?

생기겠지?


다시 한번 결혼하는 것?

결혼뿐 아니라, 이제 또 뭐가 무섭겠어. 죽도록 힘들었지만 지금은 행복한 걸 캬캬캬캬


뭐지, 저 '캬캬캬캬'는?

최근 술자리에서 U언니가 남친과 다툰 얘기를 실컷 했더랬다. 곧 헤어질 것 같았다.


아 잠깐. 화해했어요?

남친이랑? 화해라기보단 협의를 한 것 같아


진중한 대화를 나눴나 봐요?

응, 근데 모르지. 사람은 안 변하니까




이혼 사유 열에 아홉이 결혼 사유와 일맥상통한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충격이었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남자답고 터프해서 반했엉 꺅" 이랬는데 결혼해보니 가정폭력범. U언니에게도 결혼 사유를 물었는데, 동시에 이혼 사유가 돌아왔다. '음, 역시' 하는데 언니가 덧붙였다. "죽고 못 살게 사랑해서 결혼해도 죽네 사네 하면서 하는 게 이혼이라더라"


음, 역시다.

그래도 언니가 지금 행복하다니 다행이다.

어차피 헤어지겠지만.







2018년 11월 한 달, 1일 1인터뷰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인상 깊었던 인터뷰와 단상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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