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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키미 Jan 16. 2019

낭만을 먹으러 다니는 사람

프로여행러 J


교토에서 연락이 왔다.


"타케시가 키미를 기억해요! 쇼트 헤어. 작은 사람. 3주 전에 왔었죠? 라고"


J가 전해준 사진 속 타케시는 번역 어플을 들이밀고 있었는데, 그 안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외국인에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말할 수 없어서 미안했어요'



타케시는 교토의 이자카야 셰프다. 여행자의 발길이 뜸한 작은 마을. 기찻길 옆 모퉁이 가게에 홀린 듯이 들어섰을 때, 그와 그의 노모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영어 메뉴판은커녕 간단한 영단어도 통하지 않는 그곳에서 당황스럽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렵게 주문을 하고 번역 어플에 의지해 겨우겨우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타케시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가고 있었고, 그의 노모는 남편 옆을 지켰던 것처럼 아들 옆을 지키고 있었다. 선한 미소를 짓던 두 사람. 다찌에 앉아 대화 나누는 손님들도 다 그 마을에서 나고 자란 이웃사촌 같았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간이 좋아 나마비루 한 잔을 일부러 천천히 비웠다.


J가 교토에 간다기에 기회 되면 들러보라 추천했는데, 화답이 온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왔다', '서점에 간다고 했다', '외국인 혼자 오기 쉽지 않은데 와줘서 더 얘기 나누고 싶었다'는 말을 전해 들으며 가슴이 뭉클했다. 내 이름을 묻기에 '키미'라고 했더니 한국식 성과 이름까지 가르쳐달라고 해서 곤란했다며 그날의 추억을 얘기하는 J는 소녀 같았다.


프로여행러인 J가 어딘가를 추천할 때면 '스토리'에 빠져든다. 작은 것에도 한껏 감동하고 맛있게 말하는 스토리텔러. 초일류의 맛, 극강의 비주얼, 최상의 서비스도 스토리를 이기진 못한다. 그런 그이기에 구태어 타케시의 가게를 추천한 거였다. 낭만을 먹으러 다니는 사람이니까.


- 대상: 지난주에 함께 밥 먹은 사람
- 질문: 당신의 인생 맛집은 어디인가요?

그러니 그의 인생 맛집이 궁금해질 수밖에.





J의 인생 맛집은 어디인가요? 스토리가 있어야 완성되는 J의 맛집 선정에 최애 원픽이 궁금해요.

인생 맛집이라니 너무 어렵지만! 듣자마자 생각난 곳은 바르셀로나의 작은 타파스바 퀴멧퀴멧(Quimet & Quimet). 지금은 뉴욕타임스에도 나오고 우리나라 여행객도 많이 가는 유명한 곳이에요.


아니 이렇게 고민 없이 바로 답하다니.


바르셀로나에 여행 갔을 때, <스페인은 맛있다>라는 책을 쓴 김문정 작가 집에서 지냈어요. 그때 언니가 추천해준 집이에요. 지도에 그 집을 쓰면서(로밍 폰으로 문자 쓰던 시절) "아, 이 집 그냥 최고야! 타파스도 최곤데 꿀맥주도 최고야!"라고 말하더라고요. 그 집을 친구랑 둘이 찾아갔어요. 3평짜리 진짜 작은 공간인데, 와인이 천장까지 끝도 없이 쌓여 있고 테이블은 한 3개. 당연 앉을 수 없어요. 스탠딩. 조리하는 공간에 부부로 보이는 아저씨와 아줌마가 있는데 생긴 게 스페인계가 아니라 독일인 같은 거예요. 아저씨는 키가 크고 흰 얼굴에 노란 머리에, 음식 안 만들게 생긴 지적인 안경까지 딱 쓰고요!


'음식 안 만들게 생긴'. 후후. 스토리텔러의 스토리텔링을 그저 경청했다.


우리는 언니가 추천해준 대로 제일 맛있다는 연어, 새우, 대구 순으로 타파스를 시켰어요. 그리고 꿀맛 난다는 맥주도요. 연어 타파스를 첫 입 무는데, 태어나서 처음 먹는 맛. 연어의 달콤함에 요거트 맛도 나고요. 그리고 맥주를 마셨거든요. 친구가 말했어요. "야, 진짜 꿀맛이 나. 맛있다 꿀맛 말고 진짜 꿀"

동네 사람이 바글바글했는데, 당시에는 동양인이 저희밖에 없었어요. 대학생 같은 아이 둘이 오니까 동네 사람들이 자리 내주고 이리 오라 해주고 오구구구 느낌으로 먹었죠. 친구 떠나고 저 혼자 또 갔어요. 재료를 구경하니까 아저씨가 '밤'을 들면서 이건 한국어로 뭐냐고 물어요. "밤"이라고 말해줬더니 입 모양을 보면서 "바아암" 하고 따라 했어요. 바르셀로나를 떠나는 날 또 찾아갔어요. 아저씨가 딱 셔터를 올리고 있더라고요. 눈이 마주쳤는데 찡긋 웃어줘요. "오늘이 내 여행 마지막 날이야" 그랬는데 아저씨가 주문도 안 받고 연어 타파스를 만드는 거예요. 그러더니 "네가 제일 좋아하는 거 이거 맞지? 오늘은 돈 내지 말고 먹어"라고. (눈물)


이쯤 되니 기억난다. J의 여행기에서 퀴멧퀴멧이 언급된 부분을 찾아 보냈다.



찾았다!

맞아요 맞아요 (또 눈물)


(웃음) 진짜 요리 안 하게 생기셨어..

그쵸. 희고 크고 멀끔해요. 이지적인데 웃으면서 "올라". 잘 웃지도 않아. 여하튼 저 아저씨 보고 싶어요. 바르셀로나의 타케시. 난 아저씨를 좋아하나 봐요. (웃음) 친구들이 바르셀로나 갈 때마다 이 집을 추천하니까 사진을 찍어 보내줘요. 근데 아저씨가 똑같은 거예요. 가게도 똑같아요. 여전히 작고, 여전히 요리 안 하게 생겼고, 여전히 엄청 맛있을 거고, 그런 곳. 내 마음속 3평. 비좁고 좌석도 없고 모두 서서 먹어야 하지만 바르셀로나에 가면 딱 저 연어 타파스 한 손에 들고 꿀맥주를 마시고 싶어요. 너무 인기 장소가 돼버려서 사람 바글바글하겠지만! 포기할 수 없어요.


키미, 사진 좀 보세요. 진짜 안 맛있을 수가. 아 깨물고 싶다. (또 눈물)



아, 깨물고 싶다.

스페인행 티켓을 검색하는 나를 발견하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다음 날, 다시 교토에서 연락이 왔다.


"키미짱! 힌트 구다사이!"


내가 교토여행을 계획할 적, J는 보물찾기를 제안했다. 프로여행러들의 모임에서 교토 사랑은 바다와 같아서 조만간 또 누군가 가게 될 테니 먼저 가는 나더러 교토에 보물을 숨겨 놓으라는 말이었다. 나는 사명감을 가지고 미션을 수행했다. 교토 북앤베드(Book And Bed Tokyo-Kyoto) 안에 있는 수많은 책 사이에 1,000엔을 숨긴 것. 북앤베드에 도착하면 힌트를 주기로 했고, 단톡방에서 실시간으로 현지 상황이 중계됐다.



공짜 돈 1,000엔으로 사 먹은 술이 그렇게 맛있었단다. 꿀맛이었길 바란다. 진짜 꿀은 아니어도 맛있다 꿀맛에 그 꿀.







2018년 11월 한 달, 1일 1인터뷰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인상 깊었던 인터뷰와 단상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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