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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키미 Jan 15. 2019

안 친한 사이

아빠


전화가 왔다. 아빠다.

'오늘은 아빠를 인터뷰해야지' 마음먹었는데 먼저 연락이 온 것이다, 신기하게도. 한 달만에 통화였다.


- 대상: 함께 살아본 사람
- 질문: 열 살 무렵 꿈이 무엇이었나요?




안녕?

안녕? 잘 지냈어?


아빠와의 통화는 항상 '안녕?'으로 시작된다. 가능한 경쾌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안 친하다는 증거.


아빠는 열 살 때 꿈이 뭐였어?

꿈? 그런 거 가져야 되는지도 몰랐어.


꿈이 '그런 거'라니. 가져야 되는지도 몰랐다니. 예상치 못한 답변에 휘청했지만 침착하자.


그럼... 초등학교 때 좋아했던 과목은 뭐야?

국민학교~ 나는 자연하고 산수 시간을 좋아했어.


오, 이과형이구나? 그래서 나 고 1 때 공통수학 27.8 받은 거 두고두고 놀렸구나?

(웃음) 너는 국어 잘하잖아. 엄마 닮았지.


꿈같은 거 가져도 된다는 건 언제 알았어?

다 커서 알았어. 그때부턴 부자가 되고 싶었어. 우리나라 돈 다 쓸어 담는 부자.


그 꿈은 현재도 유효하다. 도통 이뤄질 기미가 안 보이는데도 환갑을 넘긴 아빠는 지치지 않는다. 부자는 못 돼도 백세장수는 할 것 같은 아빠에게 또 물었다.


30년 뒤에는 뭘 하고 싶어?

난 전 세계를 여행하고 싶어. 그래서 돈 버는 거야. 돈이 많이 필요해. 


여행은 지금 해도 되는데 왜?

너처럼 배낭여행하는 거 말고, 크루즈 타고 다닐 거라니까? 그래서 요즘 일본어랑 영어 공부하는데 이게 쉽지가 않네.


... 

눈물이 나는 바람에 서둘러 인터뷰를 마쳤다.





추석 연휴. 일주일 간 교토 여행을 다녀왔다. 비행기가 한국 땅에 닿자마자 폰이 드릉드릉, 고장 났나 싶을 정도로 끊이지 않는 진동이 울렸다. 수십 통의 캐치콜 문자가 밀려들어온 것. 발신자는 아빠. 


'일 났다'


이번 추석엔 혼자 여행 좀 하고 오겠습니다, 하는 통보 없이 떠났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인지했다. 우리집 문화가 워낙 제도나 규율에서 빗겨 난 데다 어릴 때부터 자주적으로 커왔...다는 핑계를 댈 순 없다. 아무리 그래도 명절 아닌가. 게다가 다음 날이 내 생일이었다. 추석 겸 생일 겸 아빠는 안부 전화를 했을 것이다. 일주일이나 전원이 꺼져있는 폰에. 

로밍? 안 했다.


"혜민이야???? 너 어디야!!!!"


아빠는 불 같이 화를 냈다. 귀가 다 뜨거웠다. 고함지르는 목소리에 떨림이 느껴졌다.


"다리가 후들거리네..."


말뿐이 아니라 아빠는 정말로 바닥에 주저앉은 것 같았다. 이러저러했다, 미안하다, 나는 괜찮다, 아빠야말로 괜찮은 거냐는 말에 아빠는 울었다. 나지막하게 신음하듯 "으이씨"라는 소리를 흘렸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는 것 같았다. 며칠 째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잤단다. 경찰서에 가려고 했다고, 실종 신고를 하려고 했다고, 회사에 전화했는데도 모른다 그러더라고. 일주일 동안 아빠는 세상을 다 잃어버렸던 것 같다. 그런 줄도 모르고 교토에서 나는... 미안해 죽겠는데 어쩐지 행복했다. 교토에서보다 더. 


"카톡을 하지..."


내가 멀쩡히 살아있음을 확인한 아빠는 점점 말이 많아졌다. 평소처럼 자기 얘기하기에 바쁘다.


"아빠 이제 괜찮나 봐?"

"어? 아니야 아유 다리가..."


아닌데. 분명 괜찮아졌는데.


"교토 좋더라 아빠"

"나는 홋카이도에 한 번 가 보고 싶어"


"가자, 나랑"

"좋지, 나야"


이제는 아빠랑 좀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물론 나는 아빠와의 홋카이도가 아닌 나와의 어딘가행 티켓을 찾는 중이고, 또 출국 통보하지 않을 확률이 98% 예상되지만 2% 가능성에 내 인성을 맡겨본다. 아빠도 구순에 말고 지금 행복하면 좋겠다. 돈은 대 드릴게. 같이 가는 건 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







2018년 11월 한 달, 1일 1인터뷰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인상 깊었던 인터뷰와 단상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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