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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안 되죠

말의 무게

by 라디

"제가 사실… 잠을 거의 못 자서 정신과를 다녀요. 그래서 말을 좀 더듬을 수도 있어요." 이직했을 때 나의 선임이 아주 조심스럽게 꺼낸 말이었다. 그 말은 회의실 안의 공기 위로 살짝 떠올라 우리 둘 사이에 잠시 머물렀다. 첫 만남에 가까운 사람과 나누기엔 꽤나 깊고 사적인 이야기였다.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저도 다녀요." 입 안에서만 맴돌았다. 사실 나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나 역시 매일 불안이라는 짐을 들고 출근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 입은 항상 나를 먼저 검열한다. '괜히 상대를 걱정시키는 건 아닐까?' '관계를 불편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나도 그렇다고 말하면 이 사람 부담스러워하는 거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나보다 빨리 달려가 말문을 막아버렸다. 그렇다고 선임의 말이 실례라고 느낀 건 아니었다. 오히려 용기를 내준 그 마음이 고마웠다. 단지, 나는 나에게만 엄격한 검열관이었다.


선임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일도 꼼꼼하고 성격도 여유 있고 무엇보다 후임인 나에게도 늘 존댓말을 쓰는 사람이었다. 회사라는 공간에서 존중을 습관처럼 실천하는 사람을 나는 처음 봤다. 나이는 나보다 많았지만 직급으로 사람을 대하지 않았다. "이거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확인 부탁드려요." 그렇게 항상 정중했다. 시간이 지나며 깨달았다. 이게 그 사람의 방식이구나. 누구에게든 존중을 기본값으로 두는 사람이구나.


이직 직후라 적응하느라 정신없던 때, 나는 자주 실수했다. 문서를 잘못 올리고 회의 자료의 숫자를 하나 빼먹고 메일을 잘못된 사람에게 보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또 실수했네. 나 진짜 안 되는구나.' 그런데 선임은 한 번도 짜증을 내지 않았다. "괜찮아요. 처음엔 다 그래요." "다음엔 같이 한번 더 확인해봐요." 그 말투에는 '실수하는 사람'이 아니라 '익숙해지는 과정에 있는 사람'이라는 따뜻한 인식이 있었다. 선임은 가끔 내 말을 기다려주기도 했다. 내가 불안할 때 말이 자꾸 꼬였고, 문장 하나를 꺼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럴 때면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끝까지 말할 수 있도록 기다려줬다.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묘하게 안도감이 들었고, 그 안도는 말보다 깊었다.


어느 날이었다. 유난히 정신없이 바쁜 날. 직장인이라면 다 아는 그 느낌. 눈 떠보니 점심시간이고, 기지개 한 번 켰더니 3시, 눈 비비면 벌써 퇴근 시간이 다가오는 날. 오후 5시 무렵, 선임이 내 자리 앞을 지나며 말했다.

"오늘 바빠 보이네요?" 나는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 "아 오늘은 진짜 죽겠는데요?" 평소처럼 가볍게 던진 농담이었다. 그런데 이어진 선임의 말이 생각보다 크게 가슴에 박혔다. "에이, 죽으면 안 되죠." 가벼운 말투였지만 그 말 속에는 무게가 있었다. 가벼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오래 생각하게 되는 말이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얼마나 쉽게 '죽겠다'를 입에 올려왔는지 깨달았다. 더워 죽겠다. 추워 죽겠다. 심심해 죽겠다. 바빠 죽겠다. 우리는 '죽겠다'라는 말을 신호등 바뀌는 속도보다 가볍게 사용한다. 하지만 그 말을 진짜 의미에서 경험해본 사람에게 그 단어는 농담이 아니다. 나는 알고 있다. 잠들지 못하는 밤, 살아 있는 게 너무 무겁다고 느껴졌던 나날들. 그때 '죽음'은 농담이 아니었다. 새벽 3시, 침대에 누워 천장만 보던 날. '이러다 진짜 죽는 거 아닐까'하고 의심했던 날. 그때의 '죽겠다'는 과장이 아니라 진짜였다.


그 선임 또한 아마 알 것이다. 그 말투의 미세한 떨림. '죽으면 안 되죠.'라는 말에서 느껴진 경험자의 감각. 그는 나의 농담 속에서 내 진심의 조각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첫날 그가 조심스럽게 꺼냈던 말. "정신과를 다녀요." 그 말 속에도 무게가 있었다. 쉽게 꺼낼 수 없는 말을 용기 내서 꺼낸 거였다. 어쩌면 그날, 오후 5시에 건넨 그 한마디가 선임의 또 다른 방식의 연대였을지도 모른다. "죽으면 안 되죠." 그 말은 나에게 하는 말이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말의 무게를.


직장에서 아무렇지 않게 건네는 말들. "죽겠다." "미치겠다." "돌아버리겠다."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표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말 한 줄이 지난 날의 어둠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방아쇠가 되기도 한다. 그날 이후 나는 말을 조금 조심하게 되었다. 완벽하게 바뀌진 않았다. 가끔은 여전히 "죽겠다"를 입에 올린다. 하지만 그 말이 나올 때마다 선임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잠시 멈춘다. '나 지금 정말 죽을 만큼 힘든가?'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대부분의 경우 답은 '아니다'였다. 그냥 바쁘고, 피곤하고, 짜증나는 거였다. 죽을 만큼은 아니었다.


깨달았다. 말에는 언제나 무게가 있고, 그 무게를 어떻게 느끼는가는 각자의 상처의 깊이에 달려 있다는 것을. "죽으면 안 되죠." 그 말은 나에게 남아서 가끔 내가 나에게 건네는 말이 되었다. 힘들 때, 무너질 것 같을 때 "죽으면 안 되지" 하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리고 살아간다. 오늘도, 내일도. 나참, 말 한마디가 이렇게 오래 남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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