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보다 과정을 보는 법
포춘쿠키: 안을 깨면 작은 쪽지가 들어 있고, 그 안에 짤막한 운세나 격언 같은 게 적혀 있는 쿠키.
말하자면 인생의 랜덤박스 같은 것. 오늘은 그 포춘쿠키가 제법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 오늘은 오랜만에 가족들과 외식을 했다. 특별한 날은 아니었다. 그냥 오늘 하루가 조금 길었고, 다들 피곤해 보여서 "외식할까?" 했더니 다들 좋다고 했다. 코스 요릿집을 예약했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데 돈 쓰는 게 맞나? 집에서 먹으면 되는데...' 하고 생각했겠지만 요즘은 조금 달라졌다. 가끔은 이런 것도 필요하다고 나를 그리고 가족을 위로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약을 먹은 지 1년쯤 되니 이런 것도 달라진다.
애피타이저, 메인, 디저트. 천천히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직장은 어떤지 별거 아닌 일상 이야기들. 평소엔 바빠서 이런 대화도 잘 못 했는데, 오늘은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했다. 아무것도 특별하지 않은데 그냥 이렇게 함께 밥 먹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됐다. 디저트까지 다 먹었을 때, 셔프가 포춘쿠키를 하나씩 건넸다. "새해와 관련된 운세가 있을 겁니다. 마음에 안 드시면 휴지통에 버리세요!" 그 말에 다들 웃었다. '마음에 안 들면 버려도 된다'는 말이 묘하게 마음에 들었다.
불안장애 약을 먹은 지 어느새 1년. 눈에 띄게 뭔가 달라진 건 아니다. 하지만 작은 것들이 조금씩 변했다. 예전 같았으면 작은 불행(동료의 무심한 한마디 등)에도 하루 종일 휘청거렸는데 요즘은 흔들리긴 해도 금방 일어선다. 넘어지는 횟수는 비슷한데 일어서는 속도가 빨라진 느낌이랄까. 그게 약 덕분인지 시간 덕분인지는 모르겠다. 아마 둘 다일 것이다.
포춘쿠키를 조심스럽게 부쉈다. 바삭한 소리와 함께 작은 종이쪽지가 나왔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결과에 뜻을 두는 사람은 행복해지기 어렵습니다. 결과는 마지막 순간에 나오며 그 지속 시간은 짧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정이 의미이고 즐거움이면 내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순간 웃음이 났다. "이거 나 보고 하는 말 같은데?" 옆에서 가족이 물었다. "뭐래?" 쪽지를 보여줬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대." "오, 좋은데? 너한테 딱 필요한 말이네." 맞다. 딱 필요한 말이었다.
나는 결과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결과에 목을 매는 사람이다. 강의를 몇 달 준비해도, 끝나고 받는 평가지만 본다. 과정은 기억 안 나고 결과만 기억난다. 결과가 좋으면 그제야 숨을 쉬고 결과가 나쁘면 며칠을 곱씹는다. 공모전도 그랬다. 5년 동안 다섯 번 도전했지만 최우수상은 못 받았다. 그 5년의 과정은 분명 의미 있었는데 결과만 보면 실패다. 그래서 늘 아쉬웠다. 그렇게 살아오면서 나 자신을 얼마나 몰아붙였는지 모른다.
'과정이 의미라면 행복할 수 있다.' 그 문장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 이제는 결과만 보지 말고 과정도 봐야겠구나." 단순하지만 필요한 깨달음이었다. 생각해 보니 최근에 과정을 즐긴 적이 있었다. 오늘 이 식사도 그랬다. 가족과 함께 천천히 식사하며 이야기 나눈 이 시간 자체가 의미 있었다. 불안장애 치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완치라는 결과만 기다리면 지금은 의미 없는 시간이 된다. 하지만 매일 약 먹고, 조금씩 나아지고,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발견하는 이 과정 자체가 의미라면? 나는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거다.
쿠키는 먹어서 사라졌지만 쪽지는 지갑에 넣어뒀다. 가끔 꺼내 볼 생각이다. 결과에 집착할 때마다, "과정도 봐" 하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려고. 집에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그 쪽지를 한 번 더 펼쳐봤다. '과정이 의미이고 즐거움이면 내내 행복할 수 있습니다.' 나참, 쿠키 하나가 이렇게 의미심장할 줄이야. 하지만 고맙다. 오늘 필요한 말을 해줘서. 나는 아직 결과에 목매지만, 이제는 과정도 조금씩 보려고 한다. 완벽하게 바뀌진 않겠지만 천천히 연습 중이다. 오늘도 나는 과정 속에 있다.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라 여행 방식이다." - 로이 굿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