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60 서울대를 위한 마음가짐 마인드셋 1. 용서-가족편
참 많이도 미워한 것 같다.
참 많이 미워했다.
그럼에도 동시에 사랑했다.
그래서 더 미웠다.
마인드셋 1. 용서- 가족 편
우리 집은 고요한 총구 앞에 놓여있었다.
항상 그랬던 것 같다.
참 다정한 사람들, 그리고 동시에 참 미운 사람들.
나에게 가족이란 가장 안정적인 동시에 가장 미워하는 대상이니까.
다른 가족들도 이럴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이게 표준인데, 내가 그냥 너무 예민한 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적어도 나에게 가족이란,
애정하는 한편에 무기력한 그런 존재리라.
나의 일기장이 아직도 당신에게 받은 상처들로 빼곡하다는 걸 알면 당신은 어떤 기분이 들까.
그리고 당신을 참 사랑한다 말하면서 뒤로는 내 상처를 써 내려가는 나는 어떤 기분일까.
언젠가 당신들이 이 글을 본다면 나는 그런 당신에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나는 잘 모르겠다.
부모에게 받은 상처가 남에게 뻗어나가고, 내 안에서 갈무리되지 못하는 것을 여러 번 겪었다.
그렇게 파국이 난 것도 많았고, 저지른 일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그리고 그럼에도 그들을 사랑하고,
또 나를 사랑하기 위해 나는 내 가장 큰 서러움을 용서하기로 했다.
우리 집은 좀 학업에 대한 관심이 높은 집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걸 안 건 1년이 좀 안 되었다.
물론, 엄마랑 아빠가 이것저것 해준 것도 맞고, 주변에서 나의 학업에 대한 관심이 많던 것도 맞지만
나에게 뭔가를 기대하고 있다는 걸 안 건 정말 얼마 안 되었다.
(솔직히 엄마랑 아빠가 나한테 뭔가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해서, 뭔가 바뀐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좀 놀랍긴 했다)
참 놀랐다.
그런 건 다 부신 줄 알았는데.
아마 이 글을 보면 우리 부모님은 놀랄 것이다.
아마 이러지 않을까?
'쟤가?'
여기서 처음으로 밝혀보자면, 엄마랑 아빠가 나한테 뭔가 기대를 할 어린 시절의 나는 그걸 반대로 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그렇게 해도, 당신들이 날 사랑해 준다는 확신을 받고 싶었으니까.
(나도 그 이유를 지금에서야 알았다. 내가 불안한 이유를 찾다 보니 그렇게 됐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런 것 따위는 못 받았다.
무언가 어렴풋이 알기는 했다. 당신들이 날 사랑한다는 걸,
그렇지만 난 여전히 모른다. 당신들이 날 사랑한다는 걸.
그들은 말이 없었고, 칭찬받을 만한 것이 아닌 일에 돌아올 칭찬은 없었으니까.
옳지 못한 행동에 대한 치죄에 대한 서러움이 아니다.
집안이 풍족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원하는 것을 막아섰던 것도 아니고, 못해준 것도 아니고.
그저 서러움이다.
무조건적인 애정에 대한 서러움.
그리고 그런 믿음과, 신뢰, 그런 관계에 대한 부러움.
참 배가 불렀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누군가는 누리지도 못할 삶과, 지원을 받으면서도,
그렇게 무책임하게 도망쳤다고, 피하냐고. 부모님이 불쌍하지도 않냐고.
나도 생각한다.
난 참 배가 불렀다. 뻔뻔하고, 무책임하고, 좋은 인간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그냥, 그렇게 해도 날 사랑해 줄 수 있기를 무의식적으로라도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부족한 애정은 비죽비죽 새어나갔다.
밖에서까지 상처받고 싶지 않았고, 미움받고 싶지 않았으니까.
결론적으로 나는 안과 밖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밖에서 보이는 이미지와 안에서 보이는 이미지가 얼마나 다른지, 우리 부모님은 가끔씩 깜짝깜짝 놀라시곤 한다.
'우리 애가 그렇게 성실하다고요?'
그렇겠지. 집에서는 한 번도 성실하게 살려고 해 본 적 없었으니까.
성실하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믿음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냥 존재하는 나를 사랑해 주기를 바랐다.
당신이 처음으로 '사랑해'를 입밖에 낸 그날에,
물론 다른 사람에게 받은 조언으로 그 순간에 장난스레 뱉은 한마디였음에도,
그때 내 입꼬리는 그렇게 히죽거렸다.
아는데, 진짜 어색하게 나오는 그 한마디인 거 아는데,
근데 그래도 그렇게 좋더라.
참 신기했다.
강아진가?
꼬리가 있었으면 분명 헬리콥터처럼 붕붕 흔들어 재꼈을 것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조금 더 내밀한 사정을 알게 되었다.
당신들의 인생에도 참 드러나지 않는 굴곡이 많겠더라.
그리고 왜 당신들이 내게 그렇게 했는지 이제는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그러고 싶지 않았더라도 그렇게 드러났겠지.
당신들도 부모가 처음인걸.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상처받은 내 마음을 위로해주지는 않았다.
조용히, 반감된 행동으로 쌓아온 그 이미지와,
직접 부숴버린 신뢰가 쉽게 돌아오겠는가.
솔직히 별로 돌리고 싶지 않은 것도 있었다.
그것이 나였는데,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당신들이니까.
일기장은 빼곡하게 서러움으로 들어찼고,
그 중간중간은 미처 이해하지도 못하는 그 서러움이 채웠다.
나는 그렇게 기억력이 좋은 사람은 아니라서(서러운 걸 다 기록해놓지도 않는다. 한 3일 정도 지속되면 그만 잊으려고 그 일을 적었다) 그냥 묻었다. 왜 서러운지 이해가 되는 것도 아니었고, 해결이 될 것도 아닐 테니까.
그리고 그 감정이 극단적으로 분화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예견되는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가족에 대한 내 감정이 반으로 갈라졌다.
어쩔 때에는 너무 좋고,
또 어쩔 때에는 너무 미워서.
나는 당신들과의 기억 한 번으로 순식간에 기분이 달라지고는 했다.
싸운 기억, 그 분위기, 그 공간.
그걸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렇게 그 하루를 망쳤다.
그렇게 한바탕 우울한 공상에 빠졌다가, 미친 듯이 울었다가, 또 아침에 일어나서 아무렇지도 않게 새 하루를 시작할 때쯤에,
나는 정말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아 어제 아무것도 안 했네'라는 자책감은 좀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또 하루를 살아냈으니까.
그렇게 보낸 과거에 대한 미련은 없으리라.
그렇게 나는 살아냈으니까.
당신들을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오래전부터였다.
누가 사랑하고 싶지 않겠나,
나를 그렇게 생각해 주는 사람들을.
그렇지만 당신들을 사랑하지는 못했다.
그것은 내가 받은 서러움에 대해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이기도 했고,
내가 나를 사랑해 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또 당신과, 나 우리들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정말로 공부에 대해서도 이걸 필요할 생각이 들었는데,
그 이유가 힘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나는 화목하지만 화목하지 않은 가족에서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다.
미워하고, 또 사랑하고, 또 미워하고.. 그 악순환을 반복하니 진이 빠지는 건 나도 그랬고, 날 상대하는 당신들도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진을 빼는 게 위에 말했듯 나에겐 생각보다 많은 지분을 차지했는데, 그건 공부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학교에서 검사를 하면 항상 불안과 예민함이 극도 수준으로 나왔다. 위험 수준(97에서 99가 일상으로 나왔다)이었지만, 그냥 선천적으로 좀 우울한 기질 때문이라 넘겨온 것이다. 학교에서 어쩌다 보니 심리 상담도 한 번 불려 간 적 있는데, 너무 불편하고, 뭘 말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어디까지 뭘 말해야 하는지도 뒤죽박죽이었다. 그래서, 그냥 보통의 친구가 할 만한 말을 하고 빠져나왔다.
'그냥 그때 기분이 좀 안 좋아서 그랬나 봐요.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게 내가 기력을 소모하고, 그 기력 회복을 위해 반사적으로 인터넷에 더 빠진 거라는 걸 그때 해소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그때 해소하지 못한 버릇은 악순환에 빠질 뿐이었다. 인터넷에 빠지면 그렇게 5시간 6시간을 연달아했다.(평일에 학원을 맨날 다녔는데도 이 정도. 주말에는 10시간은 기본, 15시간도 허다한 것 같다.) 나는 웹툰을 참 좋아했고, 유튜브도 좋아했고, 넷플릭스도 좋고... 하여튼 할 게 많았다. 그걸로 무한 스크롤을 하면 내 세계는 빠지는 시간 없이 돌아갔다. 아주 바쁘게, 그리고 그렇게 지쳐서 허무하게 잠들고 다시 일어나서 정상적인 학교 생활. 그리고 그렇게, 중독. 나는 분명 끊으라 하면 끊을 수 있었다.(실제로 쓰지 말라 하면 지랄 발광을 떨었지만, 금단 증상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냥 그 허무함을 끊임없이 채워주는 게 좋았을 뿐이다)
그냥, 끊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걸 끊고 나간 세계는 분명 사랑받지 못하는 모지리를 맞이해야 하지 않는가.
그리고 지금 2026년의 고3,
어딘가에 정신이 잘 팔리는 나로서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또 지쳐버릴 테니까.
그래서 나는 그냥 마주하고 놓아버리기로 했다.
사랑받고 싶은 그 마음도 버리고, 미워하고 싶은 그 미움도 버리기로.
내 어린 시절의 서러움도 너무 크고, 너무 아팠지만,,
그래도 내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마음껏 사랑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 같았다.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을 버린다고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 자체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그게 되었으면 난 진작에 해탈에 이르렀다) 무조건적으로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 하에 저질렀던 만행을 버리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되게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 불안한 나를 마주하는 것부터, 이 욕망을 내려놓기까지, 나는 1년이 걸렸다고 자부한다. )
오랜 시간 동안 사랑에 대해서 고민을 해왔는데, 결국은 가족에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말로 돌아왔다.
단순히 내가 떼를 써서 무조건적으로 받을 수 있는 사랑은 없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그냥 좀 편해지기로 한 것과 다름없지 않을까?
맞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당신들에게 두었던 가장 큰 문제를 내려두었다.
효과가 있냐고 묻는다면
글쎄..
나는 아직 그대로다. 드러나는 것으로는 변한 게 없고, 당신들과의 친하지만 분명히 어색한 그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나는 조금 편안해졌다. (물론 당신들이 나를 사랑한다는 말을 조금 더, 아주 조금 더 믿어보겠다고 세뇌하다시피 행동하는 것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당신들은 나를 사랑할 것이고, 나도 그런 당신들을 사랑할 테니까.
조금씩 조금씩, 당신들을 사랑할 수 있기를.
또 그런 와중에 내가 너무 슬퍼하지 않기를.
언젠가는 내가 마음껏 당신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설령 입시에 실패하더라도, 그 마음은 변치 않을 테니까.
그 다짐은 여기에 적어두고 가겠다.
마인드셋 1. 용서-가족 편 나는 그들을 용서하기로 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