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기획 팀장 일기 2편
전략이라는 말은 종종 멋있게 들리지만, 그 안에는 늘 어떤 희미한 두려움이 숨어 있다.
어떤 날은 그 두려움이 결재선 위에서 나타나고, 어떤 날은 팀원의 질문 속에서 불쑥 고개를 든다.
그리고 오늘은, CEO의 단 한 문장에서 시작되었다.
“이 안으로 가면 회사가 버틸 수 있을까요?”
나는 그 문장 한 줄 앞에서 잠시 말을 잃었다.
숫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머리를 스쳤다.
베트남 공장의 원가 구조, 동남아 파트너의 불안정한 일정, CB 발행에 얽힌 금융기관의 속도,
그리고 팀원들 얼굴 하나하나.
전략기획팀장은 숫자만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다.
결정의 무게를 대신 견디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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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숫자가 충돌하는 순간
회의가 길어질수록 표정들이 무거워졌다.
재무팀장은 리스크를 강조했고, 영업팀은 “이제 못 미루는 결정”이라고 말했다.
나는 두 쪽 모두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어려웠다.
전략기획팀장은 종종 판사처럼 느껴진다.
누가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자리가 아니라,
각자 맞는 말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회사가 “오늘 선택해야 할 길”을 고르는 자리.
나는 자료를 다시 띄웠다.
엑셀 시트의 수많은 가정들.
환율 +3원, 리드타임 2주 지연, 신규 장비 도입 시점 변동,
그리고 가장 중요한 단어: 만약(If).
전략은 결국 If로 가득 찬 지도다.
그 지도 위에서 회사는 어디론가 떠야 하고, 나는 그 방향을 그리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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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 정말 이게 최선일까요?”
회의가 끝난 뒤, 한 팀원이 내 자리로 왔다.
그의 목소리는 근심을 감추려 애쓰는 사람 특유의 떨림이 있었다.
“팀장님… 오늘 결정이 좀 무거워요. 정말 이게 최선일까요?”
나는 잠시 그를 바라봤다.
그의 질문에는 두 가지 의미가 섞여 있었다.
결정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내가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는 바람.
나는 천천히 말했다.
“최선이라는 건 결과가 정해주는 게 아니야.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를 고려했고,
그중 ‘회사와 우리 모두가 버틸 수 있는 길’을 택했다면
그게 오늘의 최선이야.”
그러자 그는 작은 숨을 내쉬었다.
아마도 안심 같았고, 조금은 체념 같았다.
전략기획자는 종종 팀원에게 심리적 방파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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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보고는 언제나 단 10줄
오후가 되자 CEO 보고를 준비했다.
회의에서 나온 논쟁, 각자의 근심, 우리가 만든 시나리오들은
모두 삭제되거나 요약되어 딱 10줄의 문장이 된다.
10줄.
하루 중 가장 짧지만 가장 무거운 10줄.
CEO는 내 문장을 읽고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그 결정은 수백 명의 일과 삶을 바꾼다.
나는 보고서를 저장하기 전 항상 한 번 더 읽는다.
“이 문장이 사람을 다치게 하지는 않을까.”
“이 선택이 조직을 지치게 만들지는 않을까.”
문장은 단순할수록 더 많은 것을 품는다.
그래서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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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사무실에서
업무가 끝나고 팀원들이 하나둘 퇴근한 뒤에야
나는 오늘의 결정을 다시 떠올린다.
전략기획팀장의 하루는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회사가 무너지지 않을 방향을 정하는 일’에 더 가깝다.
가끔은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고,
가끔은 미래를 보지 못한 채 앞으로 가야 한다.
그 불확실성이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매일 생각한다.
“전략이란 완벽해야 하는 게 아니라,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오늘의 우리는 그 견딜 수 있는 선을 찾기 위해
하루를 통째로 사용했다.
모니터 불이 마지막으로 꺼질 때,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래도 오늘은, 회사를 앞으로 조금은 더 밀었다.”
그리고 내일,
또 다른 선택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의 한 줄
오늘의 전략은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이 아니라,
지금 버틸 수 있는 내일을 만드는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