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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기획자의 책상 위에서 시작된 하루

전략기획 팀장 일기 1편

by 초연

아침 일곱 시, 아직 회사의 전등도 켜지지 않은 시간에 책상 앞에 앉았다.

모니터를 켜면 어제의 수십 개 메시지가 다시 살아난다.

차명 파일, 교정된 결재서류, 재무 시뮬레이션이 담긴 엑셀, 해외 법인의 긴급 보고.

전략기획자의 하루는 보통 ‘오늘 할 일’을 적는 것보다 ‘어제 밀린 내일’을 정리하는 일로 시작된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환율 차트를 띄워본다.

“3원만 더 오르면 베트남 법인 원가 모델 다시 계산해야겠네…”

나는 늘 숫자와 감정 사이에서 움직인다.

숫자는 명확하고 잔인하지만, 숫자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전략기획은 그 둘 사이의 미묘한 거리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출근 후 첫 회의는 해외법인 리스크 회의였다.

보고서 첫 줄에는 항상 같은 말이 적혀 있다.

“예상과 다르게 움직였습니다.”

경영이라는 세계는 이렇게 단순한 문장으로도 하루가 뒤집힌다.

법인 담당자는 목소리가 조금 잠겨 있었고, 나는 한 문장의 뉘앙스를 읽기 위해 그의 눈을 오래 보았다.

전략기획팀장이 해야 하는 일의 절반은, ‘문장 뒤의 표정’을 읽는 일인지도 모른다.

회의가 끝나면 CEO 보고 초안을 만든다.

언제 봐도 익숙한 단어들.

“리스크 완화”, “원가 절감”, “풍선효과”, “다변화 전략”, “시나리오 B안.”

하지만 숫자를 붙이는 순간 이 단어들은 무게를 갖는다.

CEO에게 보내기 위해 단 10줄로 압축된 이 문장들의 뒤에는,

우리 팀이 며칠 동안 정리한 50장짜리 보고서와 밤 10시를 지나도록 꺼지지 않던 사무실이 있다.

점심 무렵, 팀원이 슬며시 자리로 와 말했다.

“팀장님, 아까 B안에 넣은 가정 좀 설명해주실 수 있어요?”

나는 잠시 손을 멈추고 그의 화면을 들여다본다.

전략이라는 건 결국 ‘가정’으로 쌓는 탑이다.

어떤 수치에는 근거가 있고, 어떤 수치는 경험이, 또 어떤 수치는 감각이 만든다.

그리고 전략기획팀장은 그 감각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다.

오후에는 해외 파트너와의 화상 미팅이 이어졌다.

말은 서로 예의를 지키지만, 숫자는 솔직하다.

입가의 미소와 달리 표정 뒤에 가려진 계산이 느껴질 때,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전략기획팀장이란,

말과 숫자 사이에 앉아 있는 사람이다.”

업무가 끝난 뒤 문을 나서기 전,

나는 항상 책상 위의 메모를 다시 확인한다.

- “리스크 재정의”

- “베트남 VAT 일정 재점검”

- “CB 발행 준비 타임라인”

- “신규 투자검토 A사 자료 취합”

- “팀원 성과 리뷰”

이 짧은 메모들은 내일의 폭풍을 예고하는 신호 같기도 하고,

단지 회사가 굴러가기 위해 매일 반복되는 하나의 페이지 같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은 생각이 조금 달랐다.

전략기획팀장이라는 자리는 정답을 찾는 자리라기보다,

버틸 수 있는 내일을 만드는 자리 아닐까.

누군가는 화려한 전략을 말하지만,

실제로 회사를 움직이는 건 매일 조금씩 방향을 바로잡는 손의 감각이다.

저녁, 사무실 불이 드문드문 꺼지는 시간을 지나 홀로 남아 있는 순간,

나는 오늘의 결정을 다시 떠올린다.

“이 판단이 끝까지 가도 괜찮을까?”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회사를 무너지게 하진 않을까?”

전략기획자는 늘 불완전함 속에서 일한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을 두려워하기보다, 그 안에서 지속 가능한 방향을 찾는 사람이다.

나는 오늘도 그 방향을 찾기 위해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내일, 다시 새벽의 사무실에서 모니터를 켜며

똑같은 말을 속으로 할 것이다.

“오늘도, 회사를 조금 더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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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