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다원성

하나의 정답은 존재하는가

by Henri

우리는 언제나 어딘가에 두 발을 딛고 서서 세계를 바라본다.

그렇다면 진리는 서 있는 자의 소유인가, 아니면 서 있는 그 자리의 풍경인가.

이 묵직한 질문은 단지 인식론과 존재론의 근간을 뒤흔드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타인과 맺는 윤리와 언어의 철학적 심연을 스치고 지나간다.


철학의 기나긴 역사는 결국 이 질문에 대한 처절한 응답의 기록이다.

누군가는 단 하나의 진리를 맹신했고,

누군가는 복수의 진리를 외쳤으며,

또 누군가는 진리라는 개념 자체를 산산이 해체해 버렸다.


나는, 이 모든 철학적 여정의 출발점을 '불확신'에 둔다.

플라톤에게 진리란 단연코 하나였다.

눈앞에 펼쳐지는 감각의 세계는 일렁이는 그림자에 불과하며,

현상 너머에는 완전하고도 영원한 이데아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오직 이성의 날카로운 칼날만이 그 영원한 것에 도달할 수 있다.

그의 '태양의 비유'는 우리 삶에 굳건한 안정감을 부여하지만,

문제는 언제나 불완전한 인간의 손끝에서 발생한다.

동굴 밖의 태양을 보고 온 철인조차도,

어둠 속에 남겨진 이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인식의 주체와 대상이 맺는 관계는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통해 완전히 뒤집힌다.

대상이 우리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이 대상을 구성한다.

우리가 감각하는 세계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범주라는 인간 고유의 틀을 통과하여 빚어진 현상일 뿐이다.

이제 진리는 주체와의 끈끈한 관계 속에서만 그 의미를 획득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니체는 진리를 가리켜 "이동하는 은유들의 군대"라 조롱하며 관점주의를 선언했다.

특정한 관점을 배제한 순수한 인식이란 허구이며,

절대적 진리라는 텅 빈 제단 위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더 많은 관점을 교차시킬 때 비로소 세계를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으며,

결국 해석과 진리의 경계는 아스라이 희미해진다. 그렇다면 "모든 주장이 다 옳다"는 것인가.


이러한 극단적 상대주의는 스스로의 논리를 파괴하는 자기 반박의 늪에 빠지고 만다.

진리의 복수성을 인정하는 일이 곧 모든 주장이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뜻은 아니다.

맥락의 무게감은 다르고, 촘촘히 엮인 논리의 설득력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서로 다른 언어와 사유가 번역되고 이해될 수 있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파편화된 섬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공유 지평' 위에 서 있다는 강력한 증거다.


혹자는 묻는다.

중력의 법칙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같은 과학적 진리조차 관점의 문제인가.

토머스 쿤은 과학의 발전이 진리를 향해 차곡차곡 쌓이는 진보가 아니라,

패러다임의 단절적인 전환이라고 꼬집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로,

뉴턴의 역학이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으로 도약했듯,

과학 역시 다분히 역사적이고 잠정적인 산물이다.


과학의 위대함은 절대불변의 정답을 움켜쥐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기존의 패러다임이 무너질 수 있음을 인정하는 열린 태도에 있다.


가다머에게 진리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끝없이 일어나는 '사건'이다.

우리는 각자의 선이해(편견)를 끌어안고 세계로 다가가며,

타자와 만나 부딪히는 과정에서 '지평의 융합'을 이뤄낸다.

대화를 통해 양쪽 모두가 변화의 물결을 맞이하고,

마침내 새롭게 태어난 이해의 지평이 열린다.


진리란 곧 세계에 참여하고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숭고한 과정이다.

우리는 단일한 진리가 주는 매혹을 영영 버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세계는 굳건한 구조를 지닌 듯 보이고,

너와 나 사이의 차이는 너무나 선명하게 실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리가 관점과 언어,

그리고 기나긴 역사를 경유하여 도달하는 곳이라면,

그 조건과 한계를 뼈저리게 인정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깊이를 향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진리가 단수인지 복수인지 우리는 영원히 확정 지을 수 없다.

하지만 답 없는 질문을 끈질기게 붙들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가장 인간다운 실존의 방식이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면서도 끝끝내 질문을 남겼듯,

진리는 목적지가 아니라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우리는 탐구와 대화, 그리고 지독한 긴장 속에 머무르며,

그저 묵묵히 밤하늘의 별을 향해 걸어갈 뿐이다.


Hen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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