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내면 곤충을 직면하는 용기
프란츠 카프카는 두 세계 사이에 서 있던 사람이었다.
독일어를 쓰는 유대인으로 태어났고
사무직 회사원으로 일하면서도
밤이면 누구보다 깊은 고독 속에서 글을 썼다.
그의 삶은 조용했지만 내면은 언제나 격렬했다.
그런 고독과 격렬함은
<변신>이라는 기이한 이야기로 세상에 남았다.
하루아침에 곤충이 되어버린 그레고르 잠자.
카프카는 아무 설명 없이 그 장면을 꺼내놓는다.
이유도, 경고도, 마법의 조건도 없다.
그냥, 그는 변해버린다.
그리고 그 사실을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은
‘회사에 지각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었다.
그것이 카프카가 본 인간의 얼굴이다.
비극이 닥쳐도
인간은 여전히 일상과 책임을 떠올린다.
절망 속에서도
우리는 습관처럼 삶을 유지하려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레고르는 진짜 문제와 마주한다.
사랑했던 가족들이
그를 서서히 ‘짐’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방 밖으로 나올수록
가족의 불안과 혐오는 커지고
그는 점점 더 깊은 고립 속으로 들어간다.
곤충이 된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었을지 모른다.
카프카의 세계에서 변신은
마법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우리가 너무 피곤하고
너무 지치고
누군가에게 이해받지 못할 때
우리도 변신을 겪는다.
모습은 그대로지만
내면의 나는 점점 작아지고
말하지 못한 감정은 굳어
몸보다 더 무거운 껍질이 된다.
카프카는 그런 껍질을 “곤충”으로 그려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오래 질문하게 된다.
나는 어떤 순간에 ‘내가 아닌 존재’가 되는가?
나는 누군가를 곤충처럼 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변신>은 우리에게
잔인함을 묻지 않고
정답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저 인간의 무력함과 슬픔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런 사실이 우리를 조금 더 인간답게 만든다.
카프카는 평생 자기 안의 두려움과 고립을
문장으로 끌어올렸고
그의 짧고 건조한 언어는
오히려 누구보다 선명한 인간 이해로 이어졌다.
그레고르가 끝내 자신을 잃어가는 동안
우리는 문득 깨닫는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이해받지 못한 우리를
끝까지 붙들어주는 단 한 사람,
혹은 단 하나의 믿음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카프카의 소설은 잔인하지만
잔인함은 현실을 닮아 있다.
우리는 모두
어떤 날은 곤충처럼 버겁고
어떤 날은 벽에 부딪히며 살아가지만
그 속에서도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순간
변신은 비극이 아니라
자기를 회복하는 시작이 된다.
Hen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