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강산아 안녕 그리고 따뜻한 출발
2008년,
나는 녹록지 않은 직장살이에 신음과 만성염증을 느끼며 어렵사리 입사했던 회사를 떠났다.
한 번의 퇴사는 끝이 아니라, 마음속에 오래 남는 균열의 시작이었다. 전 직장 동료였고, 같은 대학
1년 후배였던 그녀가 그날 아침, 내가 몸담고 있는 서울 소재 직장으로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왔다.
“선배, 선배 보러 지금 가도 돼요?” 실례가 아니냐며 예쁘게 묻는 그 말이 바쁜 업무 중에도 전혀
실례로 느껴지지 않았다. 후배는 직장인으로서는 2025년말 올해 몇 개 남지 않았을 소중한 반휴를 사용해,
그날 오후 내게로 왔을 것이다.
자그마치 18년 만의 재회였다.
여자로, 엄마로, 자식으로, 직장인으로, 늘 여유롭고 평온하지만은 않았을 18년간의 세상살이 이야기는
보따리가 끝이 나지 않게 이어졌다. 그 시절, 나 역시 직장생활과 오지랖 넓은 인간관계 속에서 뒤통수와
만성 염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12년 만에 퇴사했다.
나는 한 직장에서 진득하게 정년을 완주하지 못한 패배자라 여기며 스스로에게 페널티를 주듯 고개를
숙이고, 숨죽여 살아왔던 것 같았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요즘 같이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 세상 속에서...
스스로의 오지랖으로 나를 학대하며 지하 15층 방에 나를 숨겨두고 꺼내주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내게, 후배는 나를 늘 착하고, 여유 있고, 똑똑한 선배로 기억해 주었다.
그 시절 누가 나를 뜯고 물어도 그건 선배가 어린 나이에 잘 나가서 그런 거였다고, 나를 위로해 주었었다.
어떤 위로도 전혀 도움 되지 않던 그 시절의 상처는 내 마음 깊은 심부 저편에서 살아 숨 쉬는 검은
생명체처럼 남아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나 자신을 실금이 간 채 모양새만 겨우 유지하고 있는 ‘흰 달걀’이라 여기며 살아왔던 것 같았다.
미끌미끌한 점액질이 흘러나오기 직전, 계란판 한가운데 억지로 서 있는 나약한 존재처럼...
그런데 반대편 강 건너 18년 거리의 끝에서 나를 바라보던 그녀는 나를 멋진 여자 선배로 기억하고 있었다.
내면의 지하 세계를 품고 있던 못난 내게 그녀의 힘든 마음을 기대어 보여주고 싶어 반휴를 내어 한달음에
달려온 것이었다.
그렇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해가고 있었다.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깊은 상처와 충격은 내 마음 방 한편에서 여전히 나를 조용히 갉아먹고 있었다.
그런데 지방에서 한달음에 달려온 고운 후배는 나를 어느새 멋진 커리어우먼으로 변신시켜 주고 말았다.
빈말이어도 참 좋았다. 뜨거운 눈물이 후배 앞에서 나도 모르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후배도 울었다.
그녀 역시 지하 15층에 방을 얻어 두었고, 나 역시 아직 그 방을 빼지 못한 채였다.
사람은 사람으로 상처받지만, 사람은 또 사람으로 치유됨을, 18년 만에 몸소 느끼는 순간이었다.
자그마치 18년 동안 지하방 세 살이를 하고 있었다. 이제는 자그마한 평수라도 양지바른 곳에 밝은 마음의
아파트를 분양받아 마음 편히 살아보려 한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 고운 후배의 삶에 고민 상담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저 내 두 귀를 활짝 열고,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마주쳐 줄 뿐이었다.
되레 그 후배는 나를 실금 없는 오뚝 선 하얀 달걀로 만들어 주었다.
내 삶에 다시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스승임을 자각하는 순간이었다.
다음번 글은 내게 온기를 불어넣어 준 그 고운 후배를 위해 글을 써 보고 싶다. 습작이어도 좋다.
단어 선택이 적절치 못하다 평을 받아도 좋다.
이미 내 마음은 고운 후배 덕분에 햇살과 온기가 가득한 남향의 지상 15층 작은 아파트로 이사와 버렸으니..
힘겨웠던 나의 두 번의 강산들아, 이제 안녕. 그리고 2025년 너도 안녕.
다음번은 글이 아닌 노래로 따뜻하고 편안함 시와 노래 온온 溫穩 "고운 후배""로 지어 올려야겠다.
마음결 방끗^^ 박하설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