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

여여(餘與) - 남고 또 남음, 다 사라진 뒤에도 남아 있는 것

by 휘령 박하설

그 아이



2024년 1월.
위암 4기라는 말을 듣고 세 달 만에 떠난 친구의 기일에 파주 그곳에 나는 오늘 다녀왔다.

사람은 그렇게 빨리 사라질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아니, 알고는 있었지만 믿지 않고 살았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기대는 늘 큰 소리로 시작되지 않는다. 아침 창가에 내려앉은 빛처럼, 소리 없이 스며든다.

무언가를 바라면서도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상태, 희망이라고 부르기엔 조심스러운 마음의 온도 같은 것.

우리는 함께 늙을 거라고, 다음 계절에도 안부를 물을 거라고, 말하지 않은 기대를 서로에게 건네며 살았다.

기대는 시계를 보지 않는 기다림이다.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며 문을 조금 열어 두는 일이다.


그 아이는 오지 않았다. 그 사실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 마음의 모양을 보았다. 이건 상처가 아니라 흔적이라는 것을, 아프게 남은 것이 아니라 지나온 방향이라는 것을 기일에 와서야 알게 됐다.


그 아이는 결혼도 하지 못했고, 아이도 없었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찐사랑’이라는 것도 끝내 가져보지 못한 채 떠났다.

그래서 한때는 그 아이에게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장례식 사흘 동안 나는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았다.

조건 없이 자리를 지킨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 이유도 묻지 않고,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은 채

처음부터 끝까지 그 곁을 지켜준 착한 친구들이 있었다.

그 아이는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이어 놓고 떠난 아이였다.

혈연도, 가족도 아닌 사람들이 하나의 장례 안에서 서로를 바라보게 되었고,
그 아이를 통해 사람이 사람에게 남는 순간을 함께 건넜다.

사랑을 소유하지는 못했지만 사람을 남겼고, 가정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연결을 남겼다.

그것이면 인생이 비어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


붙잡지 않기로, 설명하지 않기로. 그 물러섬은 성찰이 되었고, 성찰은 아무것도 붙잡지 않는 태도가 되었다. 언제나 나는 누군가와 손을 놓을 때마다, 포기라 부르기엔 너무 많은 온기가 남아 있었고,

놓음이라 부르기엔 사람이 너무 선명했다.


이제 기대는 기대라기보다 기다려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다.

사랑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사람에게로 옮겨오고, 사람은 사람 안에서 계속 살아간다.

그래서 그 아이의 기일인 파주 그곳으로부터 오늘 나는 사랑을 안고 돌아온다.

그리고 그 아이가 연결해 준 친구들인 사람을 데리고 돌아온다.


모두를 조용히 품으며...


아름다운 친구의 기일을 추모하며 다음 글에는 여여 (餘與) - 그 아이가 남긴 온기와 사람들 사이의 여운을

노래로 남기려 합니다. 마음결 방끗 박하설 올림.



이전 04화호호 好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