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미국엔 어떻게 갔을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첫 3일은 '불칠(佛七)'.
화려한 멜로디, 하루를 꽉 채우는 각종 정성스런 의식, 점점 빠르게 달려가는 아미토포(아미타불) 염불 등이 특징적이었다. 짧고 단조롭지만 웅장미있는 한국식 예불에 익숙한 나는 조금 어색했다.
저녁에는 영화스님의 법문이 있고, 법문이 끝나면 또 '대회향'이라는 어머어마하게 긴 예불이 시작됐다. (맙소사!) 특히 '예조(禮祖)'부분에서 유사이래 모든 조사께 일일이 절을 하는데,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렇게 긴 예조에 숨이 넘어가면서도 동시에 신뢰감이 생겼다는 점.
큰스님을 모시며 법회를 하는 다수의 단체, 또는 해외 유명 사찰을 보며 종종 느꼈던 점은, 당신들의 큰스님을 존경을 넘어서 신격화하는 듯한 모습. 그런데 여기는 영화스님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도리어 역대 조사들에 대한 예경이 지극해서 '여기는 대승의 뿌리가 깊구나'라고 생각했다.
이어 3일 '선칠(禪七)'.
이젠 예불은 아예 안하고, 한 시간 앉고 20분 걷기를 종일 반복했다. 모두 결가부좌로 앉았다. 불칠에 벌써 지쳐버린 나는 슬쩍 꾀가 나서 적당히 앉다 나오곤 했다. 결가부좌를 배우는 사람들의 비명소리는 늘 머물던 방 옆에서 BGM처럼 들려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여기까지 왔는데, 제대로 한 번 앉아보고 가야지 않나.'하는 생각이 번뜩 들어 비장한 마음으로 선방에 들어갔다.
작정하고 앉자니.. 주변의 풍광이 가히 볼만했다.
본인이 기대고 있는 기둥을 계속 머리로 쳐대는 사람, 그게 번뇌로워 벌떡 일어나 저~기로 가서 앉다 또 벌떡 일어나 다른 곳으로의 이동을 반복하는 사람, 그 난리 가운데 종처럼 앉아 있는 영화스님, 머리를 거의 땅에 박고 코를 고는 영화스님의 제자스님 등등...
이 정도면 내가 허리가 아프다고 대굴대굴 굴러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지 싶었다.
'(끙...) 나나 잘하자..'
눈을 질끈 감고 가부좌를 바짝 틀어 앉았다.
뭔가 힘이 응집되는 느낌? 다리가 아픈거 보니 40분쯤 됐으려나?
이런 생각을 몇 번 하고나니 벌써 한 시간이 됐다고 종이 울렸다.
(다음 편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