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카드, 소드 6번
"운명이란게 있을까?" 젊은 시절부터 내 인생의 화두가 된 주제이다. 젊은 시절에는 의도적으로 이 말을 싫어했다. 뭔가 도전 의식이 부족하거나 또는 실패에 대해 운명이나 우연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나약해 보이거나 비겁해 보였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내 자신의 노력과 의지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은 치기 어린 자신감 또는 오만함의 발로였다.
물론 나는 겁이 많아, 신의 존재를 무시할 만큼 용기백배 한 사람도 아닐뿐더러, 신실한 신앙인(불교) 집안에서 신앙심 깊은 부모님 덕분에 신의 존재를 일찌감치 느끼고 두려워하며 자랐다. 특히 아버지는 헌법에도 명시된 종교의 자유를 몸소 실천하신 분이라서, 타종교를 가진 사람들과도 친분이 두텁다. 술과 담배를 입에 대지 않는 아버지는 특히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친구분들과 여러 모임이나 여행이 잦을 정도로 불교와 기독교의 사해동포주의를 실천 하신다.
그 뿐만 아니라 친정 식구들은 부모님은 불교신자, 나는 기독교 인, 둘째 동생은 천주교 인, 셋째만 부모님 모시고 초파일에 절에 가서 등을 밝히는 효자 불교 신자이다. 아직 종교가 없는 막내 동생은 이슬람의 알라를 믿어야 하나 고민이라며, 그야말로 국제 다종교 집안이 되어 최후의 심판의 날에는 누군가는 구원받아 집안의 대를 잇지 않겠냐고 신소리를 한다.(^^ )
지금 60대 전후의 연령대, 젊은 노년층들은 종교 여부를 떠나 어린시절 교회에 가서 성탄절 선물 한번 못 받아 본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고, 교회에서 상영하는 영화 속 예수님의 고결한 희생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한 신의 선택에 대해 눈물을 흘리거나 감동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나는 특히 감성적인 사람이어서, 영화가 끝나고 밤 늦게 집에 와서도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멋진 예수님 때문에 나도 언젠가는 불교를 벗어나 미쿡 사람들이 많이 믿는 예수님을 믿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한 것 같다.
불교 집안에 태어나 제일 싫었던 것은 '제사', '전생', '업보', 와 같은 단어들로, 사람의 인생을 태어날 때부터 규정짓는 것이었다. 열심히 노력해서 부자가 되는 것도 그 사람의 노력이나 성실성이 아니라, 그럴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한다거나, 매일 남편에게 맞고 사는 어떤 여인네를 보고, 그 남편은 전생에 저 여인에게 많이 맞아서 이생에서 부인에게 똑 같이 하는 것이라, 저 여인이 남편에게 맞고 사는 거라고 한다면 우리가 노력해서 인생과 세상을 바꾸어야 할 의지가 사라지는 것 아닌가. 그래서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마태복음 21장 22절) 라고 말씀 하시는 확신에 찬 전능하신 하나님이, 긍정의 에너지와 강한 파워를 우리에게 주실것 같아 더 좋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살아보니, 나는 성경 속 '다니엘'도, '야베스'도, '욥'도, 가버나움의 '백부장' 같은 의인은 절대 될 수 없었고,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 받는다 했는데, 구원은 고사하고 점차 불평불만자가 되어갔다.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고 싶어 열심히 교회가서 기도했지만, 나이들수록 내 인생을 통제할 수 없었고, 예측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지치고 포기하고, 내 욕망을 내려 놓으면서 점차 운명론자가 되어갔다.
나는 내 운세가 좋지 않거나, 자꾸 힘든일이 생기면 행하는 루틴 같은 것이 몇가지 있다. 일단, 절대 일을 벌리지 않는다. 즉, 뭔가에 투자를 하거나, 중대 결정을 내리지 않고, 그냥 이 시간들이 지나가길 (조금은 체념하며) 기다린다.
그 기간 동안 하는 첫번째는 책을 열심히 읽거나 뭔가 배우며 몰두한다. (나의 취미인, 퀼트나 손뜨개도 그 중 하나다.) 물론 속이 시끄럽고 집중이 잘 안될 때도 있지만 어쩌랴, 가만히 있으면 우울증이 심해져서 자꾸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또 한가지는 봉사활동을 한다.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무료로 하는 재능기부이든, 밥 퍼주는 일이든,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을 한다. (우리 선조들의 표현으로는 음덕을 쌓는 일이라고 한다.)
마지막 하나는 장소를 바꿔본다. 이사 가기는 어려우니, 주로 안 가보던 곳으로 시장을 간다거나, 뭔가 장소를 바꾸는 일들을 만든다.
(이것들은 몇 십년전에 읽었던 어떤 책에서 우리의 선조들이 했던 방법이라고 해서 나도 실천하고 있는데, 의외로 효과가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해결되는 것들도 생기고, 가슴에 생긴 화(火) 도 사그라들고, 환경도 바뀌면서 나도 변해가는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나이를 먹고 살아지게 된다. 내 운명을 받아들인 건지, 아니면 믿고 구한 것의 기도 응답을 받은 것인지 아리송해 하면서....
며칠 전, 외부 기관에서 희망하는 직원들에게 두어시간 동안, 타로 심리상담을 했는데, 그 분들의 주된, 관심이, 직장에서의 업무, 자녀, 그리고 결혼 문제였다. 모두 열심히 살고, 책임감도 투철하신 분들이었다. 노력해도 안되는 일, 그리고 지치고 힘든일이 언제쯤 해결 될지, 또 어찌 해야 할 지 등에 관한 것들이 그들의 어깨를 무겁게 한 것이다.
나의 젊은 시절을 보는 듯해서 너무 깊이 감정이입 하지 않고 상담사로서의 객관성을 유지 하려고 애썼지만 감정적 소진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한편 그분들에게 공감하고 정서적 지지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유니버셜웨이트 마이너 소드 6번 카드
노를 저어 나아가는 저 남자의 지친 어깨, 비록, 상처와 내면의 고통를 제거하지 못했다 해도 그 혼란에서 벗어 나고자 강건너(목표)를 향해 내가 스스로 선택한 방향으로 최선을 다해 천천히 나아가는 모습이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까? 이렇듯 운명은 과거를 지운 채 시작되는 것이 아니고 아픈 과거 마저도 싣고 이동하는 것이 아닐까?
힘들어도 가족과 함께 하겠다는 의지와 자세로 삶의 무게를 견디며, 앞으로 맞이할 강 건너편의 평온, 그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안고서 기꺼이 새로운 삶의 변화를 받아 들인다면, 우린 이미 운명의 지도를 손에 쥔 것이다.
그대들이여, 과거의 상처에서 치유되어 긍정적 경험을 시작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맞게 되시기를!
저의 작은 손 하나 신께 드리는 기도에 조용히 얹습니다.